등록 : 2017.03.15 20:24
수정 : 2017.03.15 20:53
[ESC] 커버스토리
5대 이으며 울릉도 사는 홍연하·윤순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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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리 선창마을의 홍연하·윤순님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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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살던 증조께서 식솔을 데리고 이 마을에 두번째로 들어왔다 쿠데요.”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4리 선창마을의 홍연하(91)씨. 울릉도 개척 시기부터 대를 이어 한곳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홍씨와 부인 윤순님(88)씨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여 보로산과 석포에 왜놈 군인들 주둔할 땐 곡식 수탈도 마이 당했지.” 홍씨는 힘겨웠던 일제강점기 시절까지 소상히 기억하는, 몇 안 남은 울릉도의 산 역사다.
홍씨는 “땅이 비탈져노이 우리 아버지 장가갈 때까진 쓰러진 나무 엮어가 나무에따 걸어가 흙 발라가, 그래 지은 집에 온 가족이 살았다”고 했다. 태하에서 열다섯에 시집왔다는 윤씨는 “왜정 때 전쟁에 끌려간다 캐가, 우리 어매가 빨리 치아뿐다꼬 내를 이 집으로 보내삣다”고 했다. 부부는 이 집에서 7남매를 키워 6남매를 육지로 내보냈다.
윤씨는 젊었을 때 생각하면, 지금도 살기 싫어질 정도라며 고개를 저었다. “밭농사 할라 카모 보리고 콩이고, 깍새하고 까마구가 다 파묵고 읍는 기라.” 깍새는, 지금은 개체수가 크게 줄어든 슴새를 말한다. 40~50년 전까지도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밤에 마당에 불 피와노모 수십마리가 불 보고 날아와 죽자고 달려드는 기라.” 그때 빗자루나 막대기를 휘둘러 때려잡았다.
부부는 깍새로 연명하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끄실러 가 삶아도 묵고 구버도 묵고 국 끼리 묵고, 맛도 차암 좋다카이.” “노린내가 쫌 나도 맛은 최고라. 꿩고기는 택도 읍다.” 홍씨는 산에 나무하러 갈 때 삶은 깍새를 “궁디에 차고” 올라가 명이나물 곁들여 점심으로 먹었다고 말했다.
해산물은 풍성했다. “이 양반이 오징어잡이 선수라카이.” 윤씨는 남편이 20~30대 때 오징어잡이를 나가면 언제나 배를 가득 채워왔다고 자랑했다. “밤에 이래 노 저어 오는 배를 보이, 무거버가 자부락하게 내리앉은 기라. 엄청났다.” 홍씨는 하룻밤에 혼자 스무마리씩 100꼬치(2000마리)를 잡은 적도 있다고 기억했다.
인사하고 집을 나서자, 홍씨가 집 옆 아름드리 후박나무를 가리켰다. 주변 가파른 산기슭엔 거대한 후박나무들이 즐비하다. “우리 할머니 말씀이, 시집올 때 굵은 막대기만 했는데 이렇게 컸다 쿠데.” 비탈길을 따라 바닷가 쪽으로 내려갈 때 싸락눈이 쏟아졌다. 싸락눈이 내려앉는 소리가, 그늘 깊은 후박나무숲을, 자욱하게 감쌌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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