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15 20:24
수정 : 2017.03.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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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천부리 해안의 삼선암. 옛 울릉도 지도엔 형제암으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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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변화무쌍한 자연을 배우는 ‘섬다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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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천부리 해안의 삼선암. 옛 울릉도 지도엔 형제암으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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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울릉도가 있었지!”
4일 강릉항을 출발한 울릉도행 여객선에서 만난 50대 부부(서울)의 말이다. “여행지를 고민하다 문득 울릉도가 떠올라 ‘그래, 여기다’ 하고 바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렇다. 울릉도가 있다. 이젠 ‘그 흔한 여행지 중 하나’가 된 제주도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겐 더더욱 절실한 울릉도다. 가보고 싶었지만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머나먼 섬, 뾰족한 산봉우리들과 절벽 경관으로 서남해안 섬들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안겨주는 섬이다. 여러 차례 여행했던 이라도, 에메랄드빛 물빛과 해안 절경을 떠올리며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는 섬이 울릉도다.
3일부터 강릉~저동 여객선이 매일 운항을 시작했다. 울릉도는 아무 때나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수시로 바뀌는 바다 날씨 탓이다. 가기도 어렵고, 돌아오기 또한 어려운 ‘섬다운 섬’이다. 포항이나 강릉 등으로 이동해 다시 배 타고 3시간 울렁거려야 닿는다. 닿았다 해도, 기상 악화로 며칠씩 섬에 갇히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한겨울엔 거센 풍랑에 여객선 운항이 통제되기 일쑤다. 많은 주민들이 육지로 나가 겨울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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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항의 동백이 눈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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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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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도동항 거리, 한 식당 아주머니가 말했다. “겨울인데 머 볼 기 있다꼬 벌써 왔능교. 4~5월은 돼야 분위기가 살지예.” 아주머니 말마따나, 겉보기에 울릉도는 아직 겨울 속에 있었다. 성인봉 산자락과 나리분지 일대는 눈 세상이다. 때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눈발은 코앞의 송곳산(추산)도 코끼리바위(공암)도 시야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섬 구석구석 두 발로 걷고, 마을버스로 이동하며 둘러본 울릉도는 이미 봄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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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읍 사동의 산비탈에서 전호·달래·쑥을 채취하는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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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채취한 달래와 쑥을 들어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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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산기슭에선 부지깽이(섬쑥부쟁이)·명이(산마늘) 나물이 지천으로 솟아나고, 눈 뒤집어쓴 채로 동백꽃·매화는 또렷이 봄빛을 내뿜는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 산비탈에선 할머니들이 두 발 단단히 버티고 서서 달래·전호 등 봄나물을 캐고, 할아버지들은 모노레일 타고 올라 고로쇠물을 받는다. 봄은 포구에서도 느껴진다. 어민들은 ‘물커피’(연한 커피) 배달시켜 마시며 그물 손질에 한창이고, 도동·저동 골목 노래방들도 하나둘 문을 열어젖히는 모습이다. ‘부킹 100%, 울릉도 유일의 카바레’ 펼침막도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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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항 한 다방의 물커피 배달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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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올해부터 울릉도 관광 바람이 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태풍과 폭우로 관광객이 3년 내리 급감한 뒤 맞는 새봄이기 때문이다. “일주도로 개통되고, 새 부두 완공되고, 공항까지 들어서뿌리모 여기도 살 만할 기라.” 여기저기서 섬 순환도로 확장 및 터널 굴착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내년엔 일주도로 마지막 구간인 섬목~내수전 도로가 개통돼,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던 도동~관음도 노선이 단 10분으로 단축된다. 사동 항만공사는 2020년, 50인승 경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한 사동 앞바다 해상 활주로는 2022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울릉도 여행 방식은 훨씬 다채로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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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도의 독수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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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하나. 이번 울릉도 탐방길에 기상 악화로 잠시 섬에 갇혀 있었다. 갇힌 첫날, 도동항에서 만난 70대 어르신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자, 이래 보이께네 한 사나흘 배 몬 뜨겠네. 포기하소.” 그의 말은 적중했다. 사흘간 묶여 있다 나왔다. 울릉도 문화관광해설사 김이환씨의 말이 떠오른다. “울릉도의 겨울은 순응하고 길들여지고 견디며 자연을 배우는 기간이죠.” 그는 “순응이야말로 개척기부터 명이나물죽으로 연명하며 버텨온 주민들의 일상”이라고 했다. 동해 먼바다 외딴섬, 울릉도를 여행한다는 것도 어쩌면 변화무쌍한 자연을 배우며 길들여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울릉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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