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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5 20:26 수정 : 2017.04.21 22:04

다방 ‘언니’가 배달 나갈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있다.

[ESC] 커버스토리
울릉도 명물 맛보기

다방 ‘언니’가 배달 나갈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있다.
도동의 마을버스 운전기사 최종석(48)씨가 말했다. “저번에 서울 가가 호텔 다방에 앉았는데, 커피 종류가 억수로 많은 기라. 그래가 ‘그냥 물커피 하나 주소’ 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울릉도 촌놈 티 낸다꼬.”

물커피. 울릉도에서만 통용되는 커피다. ‘울릉도의 명동’이라는 도동항 선착장 앞, 30년 넘었다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물하고 블랙이 있는데 뭘로 드릴까예.” “물이요.” “언니, 여기 물 하나~.” 가만히 보니, ‘언니’는 커피 내린 원액을 머그잔에 반쯤 붓고 뜨거운 물을 부어 섞었다. 가져온 걸 보니 머그잔에 담긴 연한 아메리카노다. 이게 울릉도 물커피, 물 탄 커피다. ‘언니’가 말했다. “요즘 말로 물블랙이지예.” 울릉도 다방의 물커피 값은 보통 2500원. 전망 좋은 다방에선 4000원을 받는다.

이 단순 밍밍한 커피가 왜 울릉도 커피의 대명사가 됐을까. 운전기사 최씨는 “울릉도에선 배달 커피가 대세여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원두커피를 진하게 배달시켜가 그걸 여럿이 나눠 마시는 기라. 하마 몇 잔이고 만들어내뿐다.” 어떻게 만들어낼까.

물커피 배달세트. 기본 석잔에 7000원이다. 파란 보온병엔 뜨거운 물이 담겼다.

천부항의 울릉다방. 도동에 2곳, 저동엔 8곳의 다방이 있다.

“막내야, 배달 가그라.” 기본이 석 잔인 배달커피 값은 7000원. ‘언니’와 ‘막내’는 경차를 몰고 “어느 구석이든” 물커피를 배달해준다. ‘언니’가 보자기에 싸고 있는 배달커피 세트를 살펴봤다. 보온병이 둘, 커피잔 셋과 설탕·프림통이 들었다. 빨간 보온병엔 커피가, 파란 보온병엔 뜨거운 물이 들었다. 그런데 종이컵이 대여섯개나 포개져 있다. 바로 이 종이컵에 물커피의 기원이 숨어 있다.

저동 선착장에서 그물 손질을 하다 커피를 주문한 어민들을 만났다. 벌써 네댓 명이 마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나도 한잔 주그라.”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하니, “물커피나 한잔 하소” 한다. ‘막내’는 즉시 종이컵에 물커피를 ‘제조’해 건넨다. 뜨겁고 부드럽고 순한 물커피 맛. 바닷바람 쐬며 마시는 물커피의 연한 향이 생각보다 괜찮다. 그랬다. 이건 다방에 앉아 마시는 게 아니다. 일터에서 휴식하며 물 타고 또 타서 너도나도 한잔씩 후루룩 나누는 그 맛이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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