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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30 11:46 수정 : 2017.03.30 11:53

이정국 기자가 20일 서울 한남동 '최병철 펜싱클럽'에서 기본 공격 자세인 '팡트'를 배우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SC] 커버스토리 최병철 감독 찾아간 이정국 기자의 ‘펜싱 체험기’

이정국 기자가 20일 서울 한남동 '최병철 펜싱클럽'에서 기본 공격 자세인 '팡트'를 배우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싸늘하다. 매서운 눈빛이 오고 간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눈보다 손을 봐야 한다. 상대방의 손이 움직인다. 공격이다. 재빨리 고개를 숙인다. 이때다. 투셰(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 칼끝이 상대방의 몸통을 찌른다. 내가 이겼다. 마스크를 벗어 던진다. 자리에 주저앉아 환호를 지른다.

펜싱을 체험하기로 결심했을 때, 기자는 이런 경험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2시간 동안 얻은 건 허벅다리 경련이었다.

전진·후진 스텝 배우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상태
기본 기마자세 힘들지만
유·무산소 운동 동시에 ‘매력’

기본자세가 가장 중요

20일 서울 한남동의 ‘최병철 펜싱클럽’을 찾았다. 현재 <한국방송> 펜싱 해설위원이기도 한 최병철 감독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딴 한국 펜싱의 간판스타다. 그가 올 1월, 트렌드의 중심 한남동에 연 펜싱클럽은 ‘트렌드세터’ 사이에서 금세 화제가 됐다. 지난해 박상영 선수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면서 펜싱이라는 운동에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대한펜싱협회 쪽은 “동호인을 대상으로 한 회장배 대회를 매년 여는데 500~60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다. 전국 동호인이 2000~3000명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펜싱클럽은 운동을 하는 체육관인지 ‘셀카’ 찍기 좋은 카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최 감독은 “한남동이란 지역 특색에 맞게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마침 스포츠 의류 업체인 룰루레몬 직원 4명이 레슨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함께 이런저런 운동을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펜싱을 접하고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벌써 두 달째다.

기자도 무리 사이에 껴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은 인사. 최 감독과 마주 보고 “살뤼”라고 외치며 서로에게 경례를 했다. 손에 든 건 비록 연습용 플라스틱 칼이지만, 왠지 내 자신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귀족들의 스포츠라는 말이 실감났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자세다. 펜싱도 마찬가지다. 준비자세인 ‘앙가르드’가 교육 첫 단계다. 칼을 드는 오른팔을 약간 굽혀, 몸통에 달걀 1개 정도 공간을 두고 붙인다. 왼팔은 주먹을 살짝 쥔 채 어깨높이 정도로 편안하게 올린다. 오른발 끝과 왼발 끝은 서로 직각으로 만든 뒤 어깨너비로 벌린다. 그리고 무릎을 살짝 굽힌다.

이 자세로 ‘마르셰’(전진), ‘롱프르’(후퇴)를 한다. 단순히 앞뒤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상대의 허점을 찾는 가장 중요한 동작이다. 복싱에서 스텝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원칙도 있다. 전진할 땐 앞발이 먼저 나가야 하고, 후퇴할 땐 뒷발이 먼저 물러나야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계속하다 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상태가 된다. 최 감독의 구령에 맞춰 계속 전진을 하다가 갑자기 “롱프르” 소리를 들으면, 앞발이 먼저 뒤로 물러났다. 그 뒤로도 스텝은 계속 꼬였다. 게다가 기마자세로 움직이다 보니 허벅지가 터질 듯 땅기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최 감독은 “펜싱의 좋은 점이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배, 엉덩이, 허벅지 같은 코어 근육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계속 걷는 유산소 운동에, 순간적으로 찌르는 동작 같은 무산소 운동이 결합된 게 펜싱이라고 했다.

스텝 연습만 30여분. 그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기본 공격자세인 ‘팡트’를 배웠다. 앙가르드에서 오른발과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며 상대방을 찌르는 자세다. 몸이 낮아지니 당연히 허벅지에 하중이 많이 걸리게 된다. 팡트 자세로 30초만 있어도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온다. 클럽 안이 “마르셰”, “롱프르”, “팡트” 소리로 꽉 찼다. 그렇게 또 30분을 더 하니 허벅지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아마 내일 일어나면 계단 내려가기 힘들 겁니다.” 최 감독이 씩 웃었다.

정신적 쾌감이 더 커

펜싱복 안엔 보디코드라고 하는 센서가 부착돼있어 칼에 맞았을 경우 자동으로 채점이 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기본자세는 5번 정도 교육을 받으면 얼추 잡힌다고 한다. 강습시간은 50분이고, 클럽마다 차이는 있지만 1주일에 2~3번 받는 게 보통이다. 2주 정도 강습을 받으면 ‘진짜 칼’을 쥘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취미일 경우다. 전문적으로 하려면 자세 교육만 몇 달을 받는다.

위험하진 않을까? 사람이 서로 대결하는 운동 가운데 부상이 가장 적은 게 펜싱이다. 자기가 삐끗해서 다치는 경우는 있어도 공격을 당해 다치는 경우는 드물다. 기자도 복장을 착용한 뒤 시험 삼아 몇 번 칼에 찔려봤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옷 안에 플라스틱으로 된 보호대를 착용해서다. 옷 자체도 방탄복보다 더 촘촘하게 짜인 천으로 만든다.

경련이 난 다리를 푸는 사이, 룰루레몬 직원들의 경기가 진행됐다. 준비자세와 달리 엄청난 박력이 느껴졌다. “챙챙” 칼이 부딪히는 소리, “우당탕” 서로 바쁘게 피스트(선수들이 서 있는 코트)를 오고 가는 소리가 클럽 안을 울렸다. 펜싱복에는 압력센서가 부착돼 있어, 칼에 찔리면 곧바로 램프에 불이 들어오면서 점수가 계산된다. 과거에는 찔린 사람이 먼저 “투셰”를 외치면서 공격당했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한바탕 경기를 즐긴 남자 직원 박인호(27)씨는 “예전에 복싱을 한 적이 있는데, 많이 다쳤다. 그런데 펜싱은 다칠 일이 없다. 서로 대결하는 동안 아드레날린이 솟는 게 느껴진다. 상대방을 속이는 등 다른 운동보다 머리도 많이 써야 한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실제 펜싱에선 상대방을 속이는 거짓 동작인 ‘팽트’가 정식 기술 가운데 하나다. 여자 직원 박정인(35)씨는 “부서 사람들끼리 여러 운동을 같이 해봤는데 펜싱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운동량도 많은데다가, 서로 대결을 하는 동안 집중하면서 오는 쾌감이 다른 운동보다 크다”고 했다.

최병철 감독(왼쪽)과 조석동 코치(오른쪽)가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펜싱은 몸으로 하는 체스라고 부를 정도로 집중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좋아야 한다”는 최 감독은 “오래 하다 보면 성격도 바뀐다”고 했다. 보통 초보자들은 공격할 때 역습을 피하려고 자기도 모르게 몸을 미리 피하면서 찌른다고 한다. 하지만 “찌를 때는 주저하지 말라”가 펜싱의 기본. 정확한 판단 뒤 과감하게 찌르는 동작을 오랫동안 반복하다 보면, 소극적이던 사람도 적극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최 감독은 “소극적인 성격으로 고민하던 수강생이 몇 달 하더니 성격이 바뀌었다며 감사 인사를 해오기도 했다”며 웃었다.

다음날이 되니, 최 감독의 말처럼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허벅지에 통증이 심했다. 그런데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대결을 하면서 잡념이 사라질 생각을 하니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우와, 너 펜싱해?”라는 반응도 은근히 기대가 됐다.

펜싱을 배우려면 일단 펜싱클럽에 문의하면 된다. 대한펜싱협회는 전국에 펜싱클럽이 20여곳가량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비용은 지역과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펜싱복, 마스크, 장갑, 칼 같은 장비는 대부분 대여가 되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개인 펜싱화 정도만 챙기면 되는데 일반 운동화 가격대다. 다른 장비도 저렴하게 하면 30여만원이면 다 갖출 수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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