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4.05 20:17 수정 : 2017.04.05 20:33

권용득

[ESC] 권용득의 살림

권용득
세월호가 돌아왔다. 2014년 4월15일 오후 9시, 인천항을 떠난 후 1081일 만이라고 한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던 날, 많은 사람들이 애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국회의원 도종환은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고 표현했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날 하늘의 구름이 ‘노란 리본’ 모양이라며 박근혜의 몰락과 세월호의 인양을 신의 섭리처럼 얘기하기도 했다. 또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한 날 새벽, 공교롭게도 박근혜는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동화 속에서나 보던 ‘권선징악’이 드디어 실현된 걸까. 그런데 왜 조금도 후련하지 않은 걸까.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우리 사회의 ‘적폐’를 꼽았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 적폐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고 약속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적폐의 상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박근혜의 적폐 청산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뺀 나머지 여집합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솎아 내는 일이었으니까.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처럼 아첨꾼 같은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박근혜는, 자신의 파국을 추호도 예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진상규명에 관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가정이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은, 그 자체가 바로 우리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는 지름길이었다. 박근혜는 차마 자기 자신을 도려내지 못했다. 아첨꾼 같은 신하들을 솎아내지 못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할 때마다 경제가 위기라고 했고, 남북관계가 위기라고 했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날려버렸다. 반면, 정유라의 국가대표 선발이나 미르재단과 케이(K)스포츠재단의 기업 모금은 살뜰히 챙겼다.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남용했고, 우리 사회의 민주질서를 한계까지 시험했다.

얼마 전에 나는 대장에 생긴 용종을 제거하기 위해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다인실에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2인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옆자리의 아저씨는 암환자였다. 아저씨는 백혈구 수치가 갑자기 떨어져서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다행히 입원해 있는 동안 백혈구 수치가 회복됐고, 아저씨는 내가 입원한 다음날 퇴원할 수 있었다. 한 간호사는 퇴원을 앞둔 아저씨에게 앞으로 시작될 항암치료에 관해 꼼꼼히 알려줬다. 항암치료제의 종류와 특징은 물론, 항암치료의 여러 부작용에 관한 설명도 빼먹지 않았다. 빠진 머리카락은 금방 다시 자랄 거지만, 머리카락보다 음식을 잘 가려 드시면서 체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간호사의 설명은 아저씨의 주의를 사로잡으며 1시간이 넘게 계속됐다. 간호사의 설명이 얼마나 정성스러웠으면 화장실을 가려던 내 발목까지 붙잡았을까. 나는 커튼 뒤로 조곤조곤 새어 나오던 간호사의 설명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간호사가 아저씨의 병을 고칠 수는 없다. 간호사는 병원 안의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그 덕분에 아저씨는 자신의 병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됐을 뿐이다. 행여 아저씨의 병세가 깊어지더라도 그건 간호사의 잘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의 침몰은 박근혜 탓이 아니었고, 또 진상규명은 박근혜 혼자만의 몫이 아니었다. 각종 퇴적물까지 포함하면 1만톤에 육박하는 세월호를 하루아침에 인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만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의 직분을 다해주길 바랐다. 아니, 대통령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공정하길 바랐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훼방은 놓지 말았어야 했다.

내 몸속의 용종을 제거했던 의사는 말했다. 용종은 유전적인 요인도 있지만, 담배를 계속 피우면 용종이 다시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자면 용종은 나의 적폐였던 셈이다. 아니, 용종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진짜 적폐는 나의 생활 습관이었다. 마침 박근혜는 구속됐고, 세월호는 돌아왔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도 용종을 뗀 나도, 가까스로 출발점에 다시 섰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나를 바꿀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장담은 못 하겠다. 이 글을 용케 끝까지 읽은 당신은, 부디 나처럼 부끄럽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권용득 만화가·<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 지은이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권용득의 살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