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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06 09:31 수정 : 2017.04.06 09:35

‘퇴출 위기’ 즉석카메라 ‘2030’ 사이에서 인기 되살아나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여성 직장인들이 즉석카메라 사진을 고르며 웃고 있다. 이정국 기자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좋다.” “늘 약간 흐릿해서 좋다.” “쉽게 구겨지지 않는다.” “한 장밖에 없어서 좋다.”

1997년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 전도연과 한석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이하 즉석카메라)의 좋은 점을 이렇게 얘기한다. 영화가 인기를 끌자 당시 즉석카메라 열풍이 불었다. 즉각성과 불명확성, 한정성이란 키워드가 젊은이의 감성을 파고든 것이다. 당시에 즉석카메라 한 대당 10만원, 필름은 10장에 1만2000원으로 비싼 편이었지만, 90년대 트렌드 세터들에게 즉석카메라는 필수품이었다.

‘원조’ 폴라로이드 생산 중단했지만
필름 작아지면서 디자인 다양화
플래시 활용·거리 고려해 찍고
비싼 제품보단 용도 맞게 골라야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의 공습으로 필름카메라가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으면서 즉석카메라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급기야 1948년 즉석카메라와 필름을 최초로 개발한 폴라로이드가 2008년 생산 중단을 선언하면서 즉석카메라는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직장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가 살아날 조짐이 보인다. 가장 ‘핫’한 아이돌 스타인 설현(22)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즉석카메라로 찍은 셀카를 올리기도 했다.

경량화 다양화로 환골탈태

아이돌 스타 설현 인스타그램 갈무리.
폴라로이드의 생산 중단 선언 뒤로 지금까지 일본의 후지필름이 즉석카메라뿐만 아니라 필름까지 생산을 해오고 있다. 이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아닌 ‘후지 카메라’라고 불러야 할 상황이 된 셈이다. 별로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즉석카메라 시장에서 후지필름은 경량화와 디자인 다양화로 시장 변화를 견인했다. 기존 즉석카메라 필름보다 작은 ‘미니 필름’을 만들어 내서 젊은층을 공략한 것이다. 미니 필름은 기존 크기(세로 8.6㎝, 가로 10.8㎝)와 비교하면 세로는 같지만 가로가 5.4㎝여서 절반에 불과하다. 명함 크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필름 사이즈가 줄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일단 디에스엘아르(DSLR) 크기와 비슷하던 카메라 크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작은 핸드백 안에 넣어 다닐 정도가 된 것이다. 디자인도 과거 투박한 모양이 아닌 각종 캐릭터 브랜드와 협업 제품이 나오는 등 다양해지고 있다. 후지필름이 헬로키티와 협업한 한정판은 일본에 가서 ‘직구’를 해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과거 블랙과 실버 중심의 우중충했던 즉석카메라 색깔도 빨강, 파랑, 노랑 등 생생한 색깔의 제품이 많이 출시되는 상황이다. 최근 후지필름에선 빨간색 즉석카메라인 ‘인스탁스 미니70 레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인기도 올라가는 중이다. 오픈마켓 옥션 자료에 따르면 2015~2016년 사이 즉석카메라 판매는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독일의 명품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가 ‘소포트’라는 즉석카메라를 발매하기도 했다. 수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생산 중단을 밝혔던 폴라로이드마저 사진을 찍어 이를 즉석카메라 인화지에 프린팅하는 디지털카메라를 판매중이다. 이밖에도 과거 비네팅(사진 외곽이 어두워지는 현상) 효과로 유명했던 로모에서도 즉석카메라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광진구 커먼그라운드 토이리퍼블릭에서 열린 즉석카메라 사진 전시회 ‘브릴리언트 모멘트’. 후지필름 제공

“손에 잡히는 물성 큰 매력”

여기에 지갑에 쏙 들어가는 명함 크기의 필름은 젊은층 사이에서 스티커 사진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직장인 이하은(24)씨는 “디지털 사진은 볼 수만 있는데 즉석카메라는 일단 눈앞에서 바로 인화해 만질 수 있는 게 좋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스티커 사진을 함께 찍어 나눠 갖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즉석카메라 필름 테두리에 글씨를 쓸 공간이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현상액이 흘러나와야 하는 필름의 특성상 부득이하게 생긴 공간이지만 여기에 각종 메시지를 적어 친구, 연인과 교환하는 것이다. 직장인 박보경(24)씨는 “친구, 연인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 준 뒤 날짜와 메시지를 적어 교환하는 게 인기다. 책상에 붙여놓으면 인테리어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누가 즉석카메라를 사는 것일까. 이씨처럼 현재 주고객은 2030 직장 여성으로 보인다. 후지필름 관계자는 “정확한 판매 현황은 밝힐 수 없지만 최근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 구매층은 20~30대 여성”이라고 말했다.

즉석카메라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즉석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전시회도 열렸다. 지난 1월 서울 광진구 복합문화공간 커먼그라운드 토이리퍼블릭 전시장에서 열린 ‘브릴리언트 모멘트’(Brilliant Moment) 전시회엔 열흘 동안 1만6000여명이 다녀갔다. 젊은 사진작가 7명의 즉석카메라 사진이 전시됐다. 전시회에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사진을 출품한 김슬기 사진작가는 “즉석카메라의 가장 큰 매력은 물성이다. 디지털 이미지가 아무리 발전해도 손에 잡히는 물성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여기에 즉석 필름 특유의 흐릿함이 주는 이미지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라이카 ‘소포트’. 라이카 제공

후지 ‘인스탁스 미니70 레드’. 후지필름 제공

흔들지 마세요

즉석카메라는 과거보다 오히려 가격이 더 싸졌다. 오픈마켓에서 검색하면 1만원대부터 시작한다. 비싼 것은 수십만원대도 있다. 필름은 10장이 한 세트인데 보통 1만원 안팎이다.

수많은 즉석카메라 가운데 어떤 제품을 골라야 할까. 전문가들은 “본인 용도를 먼저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김슬기 사진작가는 “특별한 날에 어쩌다가 쓸 것이라면 굳이 비싼 카메라를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용도다. 친구와 연인의 얼굴을 찍어줄 용도라면 미니 필름이 적절하고, 풍경을 찍고 싶다면 와이드 필름이 맞는 식이다. 여기에 다중 촬영이나 매크로(접사) 같은 특수 기능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맞춰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로모그래피 ‘로모 다이아나 에프(F)+’. 옥션 제공
로모 ‘인스턴트 오토맷’. 지마켓 제공.

촬영 팁도 중요하다. 무턱대고 누르면 초점이 나가거나 어두워서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김 작가는 즉석카메라 촬영 원칙으로 △플래시 활용 △촬영 거리 확보 △촬영 대상 선정을 꼽았다. 즉석카메라는 일반 카메라보다 조리개가 어둡기 때문에 빛이 없으면 대부분 흔들려서 나온다. 빛이 적은 공간이라면 고민하지 말고 플래시를 터뜨려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초점거리가 길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 찍으면 사람 얼굴이 아닌 뒷벽에 초점이 맞게 된다. 최소 1m는 떨어져서 찍어야 안정적이다. 또 필름이 비싸기 때문에 디카처럼 무턱대고 찍으면 곤란하다. 찍고 싶은 것을 선별해서 찍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 더. 과거 즉석카메라 필름을 받고 나서 현상액이 빨리 퍼지게 하기 위해 흔들었던 기억 때문에 필름을 흔드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에는 기술 발달로 인해 필름을 흔들지 않아도 된단다. 오히려 흔들면 사진이 번질 수 있으니 그냥 90초 동안 보고 기다리면 된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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