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7 19:48
수정 : 2017.05.17 19:59
|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잎이 휘날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
[ESC 10돌 기념호]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잎이 휘날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말이 안 되는 제목이다. 숨기고 싶으면 그냥 숨기면 되는데 그걸 굳이 쓰는 이유는 뭔가? 숨기고 싶은지 아닌지 자기도 모르는 거다.
2008년 이 칼럼에 온갖 삽질을 고백하고 3년 뒤 기자를 그만뒀다. 그때는, 하루도 견디기가 힘들었던 거 같기도 하다. 통장에 월급 꽂혔다 사라지는 그 찰나에 저당 잡혀 노동을 계속하는 게 목을 졸리는 느낌이었던 것도 같다. 뭘 하고 사는 건지, 왜 살아야 하는 건지 뜬금없는 질문들을 해댔던 걸 보면, 그때 나는 정말 일을 개판 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래도 잘리지 않고 그만두게 해준 <한겨레>에 고맙다. 그때를 돌아보며 쓴 모든 문장은 ‘~한 거 같다’로 끝날 듯하다.
한순간을 건너기도 숨찼는데 지금 돌아보면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뭘 원했던 건지, 뭘 좇다 놓쳐버린 건지, 잘 모르겠다. 백수로 지내다 보면 점심시간에 목에 명찰 차고 떼로 몰려나오는 직장인들이 부럽다. 직장인일 때는 그게 목줄 같다. 다 때려치우고 배낭 하나에 살림살이 넣고 떠돌고 싶다가 어떤 때는 애 둘 딸린 친구가 갚아야 할 대출과 시댁 욕을 하면 부러워지기도 한다. 닻의 무게에서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그 무게를 못 견디게 열망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자신이 꽤 이성적인 인간인 줄 착각했던 거 같다. 이성이란 게 감정 앞에선 한탄강에 휩쓸려가는 쓰레빠같이 부질없다는 걸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감정이 분탕질한 선택들을 뒷감당하는 내 인생이 난봉꾼 남편 빚 평생 갚는 마누라 같기도 하다. 내 감정인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온통 회오리, 강력한 파괴력은 알겠는데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바람에 통나무집은 날아가버리는데 서쪽 나라로 이끌어줄 노란 길 따위는 씨도 안 보인다.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끝나고 9년이 지난 지금도 문장 대부분, ~한 것 같다 말고는 끝낼 길이 없는 거 같다. 40여년 끌어안고 살았는데도 내가 일면부지 남 같을 때가 많다. ‘여기자 K’가 끝나고 9년이 지난 지금도 떨쳐버리고 싶은데 떨쳐버리고 싶지 않고, 같이 있고 싶은데 같이 있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은데 숨기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도 그때도, ~한 것 같다로 끝나지 않을 문장들, 끝날 수 없는 문장들도 있다. 나는 알람을 맞추고 잔다. 아침 7시쯤 알람이 울리면 더듬어 두 번 끈다. 눌은밥에 김으로 아침을 먹고 마을버스를 탄다. 출근길에 아카시아 향이 조금 난다. 밥벌이를 한다.
‘~한 것 같다’로 끝나지 않을 마지막 문장도 있다. 나는 여전히 염치없게도, 바란다.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빨강이 한 독백을 언젠가는, ‘나’라는 이방인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때 여기자 K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