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창간 10돌 기념호]
ESC 추억의 연재 ‘너 어제 그거 봤어?’로 돌아본 방송 10년 총결산
사회고발드라마 및 영화 등장 봇물
‘신비한 티브이 서프라이즈’ 넘사벽
최고의 엠시는 신동엽…더욱 기대
주말드라마·지상파 예능, 분발 좀!
설마, 설마….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등골이 오싹했다. 제이티비시(JTBC) <밀회>와 싱크로율 100%. 드라마 속 이야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다니! 예술대학 부정입학생 정유라, 이를 통해 한몫 챙기려는 속물 교수들. 에스비에스(SBS)의 <추적자>는 또 어땠나. 평범한 형사에게 닥친 딸의 죽음, 그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유력 대선후보의 비리와 정치·경제·사법·언론 등의 추악한 커넥션. 현실 세계의 실사판이다.
지난 10년간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계에서 가장 큰 변화는 ‘사회 고발형’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잡았다는 것. 영화 <변호사>, <내부자들>과 드라마 <황금의 제국>, <미생>, <김과장>, <귓속말>까지. ESC 10돌을 앞두고 <안녕, 프란체스카>와 <소울메이트>의 작가 조진국과 방송칼럼니스트인 정석희가 지난 10년, ‘최고의 방송’ 선정을 위해 지난 9일 마주앉았다. “투표했냐?”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냐?”로 시작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성지 드라마’가 된 <밀회>와 <추적자>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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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티비시 드라마 <밀회> 한 장면. 제이티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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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드라마 ‘밀회’와 ‘추적자’
정석희(이하 정) <밀회>와 <추적자>가 사회고발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뜬금없는 작품들이 많은데, 이 드라마들은 예외다. 많이 나와야 한다. 10년 동안, 최고의 드라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조진국(이하 조) <추적자>는 1회만 보고 못 봤다. 여학생을 죽이는 신이 나왔는데, 너무 참혹해서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박경수 작가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정 제이티비시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도 참 좋았다. 다시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한 회, 한 회 버릴 것이 없다. <~ 하이킥> 시리즈보다 재밌다. 올해 방송된 드라마 중에서는 시청률은 낮았지만 <청춘시대>가 괜찮았다. 권하고 싶다. 박연선 작가가 드라마를 정말 잘 썼다.
조 잘 쓴 드라마라고 해서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안타깝다. 오히려 허술하고 빈틈이 많은 드라마들이 사랑받기도 한다.
정 먼 훗날까지 기억될 만한 훌륭한 작품을 또 꼽는다면, <나인>을 들고 싶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지를 잘 버무렸다. 어색하지 않다.
조 <오 나의 귀신님>도 괜찮은 드라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양희승·양서윤 작가가 잘 썼다. 주인공과 빙의된 처녀귀신의 접점을 잘 찾았다. 박보영 연기가 특히 훌륭했고, 김슬기 연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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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엔 드라마 <도깨비> 한 장면.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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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드라마는? 김은숙 ‘도깨비’ 최고
정 10년이면 세상이 엄청 변하는데, 주말드라마는 항상 똑같다. 요즘 3, 4대가 함께 사는 집이 어딨나.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도 그렇다! 그리고 왜 맨날 아침·저녁을 같이 먹어? 우리 가족만 해도 일주일에 같이 먹는 날이 손에 꼽힌다. 판타지도 아니고, 현실과 너무 심하게 다르다.
조 그에 반해 박지은 작가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참신하고 좋았던 드라마다. 횟수가 많은 주말드라마보다 전개가 빠른 미니시리즈적인 기법을 도입했다. 캐릭터들이 상투적이지 않다. 순종적인 며느리가 아니다.
정 <넝쿨당> 못지않게 <아이가 다섯>도 참신했다. 반면 요즘 방영되는 <아버지가 이상해>는 좀 이상해. 훈훈한 가족애를 다루는데, 오만가지 이상한 에피소드를 넣는 느낌이야. 얼마 전엔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동거가 탄로나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내용이 나왔어. 솔직히 30대 후반의 동거가 저렇게 난리칠 일인가.
조 30대 후반이면 동거할 수 있지 않나.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고, 할 수 있는 거지.
정 부러울 뿐이지.
조 하하하.
정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 거야> 참패 원인도 현실을 외면해서다. 아버지는 가부장의 전형이고, 어머니는 희생의 아이콘이다. 매번 대가족이 등장하고, 식사를 꼭 함께 하냐고!
조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족 형태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는 어땠어? 1회만 보고 못 봤는데, 주위에서 꼭 보라고 하도 권해서 말이야.
정 <도깨비> 정말 잘 썼다. 비극과 코믹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김은숙 작가를 별로 안 좋아했던 분들도, 하나같이 <도깨비>는 칭찬했다. <태양의 후예>는 솔직히 별로였는데, <도깨비>는 최고다.
조 <태양의 후예> 끝나고 <도깨비>가 방송되기까지 기간도 짧았는데,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썼다니 확실히 대단한 작가다.
■ 최고의 예능은 ‘썰전’
조 요즘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은 <썰전>이다. 정치를 저렇게 재밌게, 관심을 갖게끔 할 수 있을까.
정 정치 공부도 할 수 있고, 자기주장만 하고 싸움만 하는 다른 정치 토크쇼와는 확실히 차별된다.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든 견인차는 김구라다. 모를 때 가만히 있는 자세가 맘에 든다.
조 김구라가 똑똑하게 잘 진행한다. <라디오스타>에서와 느낌이 너무 다르다. 말을 자르지도, 막말을 하지도 않는다.
정 지난 10년, 예능 중에서 좋았던 프로그램은 <아빠! 어디 가?>다. 엠비시(MBC)의 예능 암흑기를 빠져나와 화려한 부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등의 유사 예능이 나왔는데, 이 프로그램이 가장 낫다. 최근 프로그램 중엔 나영석 피디의 <윤식당>, <삼시세끼>가 좋았다. <언니들의 슬램덩크2>도 재밌게 보고 있다.
조 <윤식당>과 <삼시세끼>는 먹방, 쿡방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기도 했다. 먹방, 쿡방의 인기몰이는 지난 10년간 가장 두드러진 예능의 변화가 아닐까.
정 맞다. 백종원, 차승원, 에릭 같은 남자들이 요리하는 것을 보면서 남자들이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백종원이 쉬운 요리 팁을 주는 덕분에 남자들도 요리에 도전하게 된 거다. 우리 집 남자들도 요즘엔 여러가지 요리를 시도한다. 하하하.
조 나도 라면하고 계란프라이밖에 못했는데, 지금은 직접 스테이크를 굽는다. 놀랍다. 시금치를 기름에 볶아 접시를 꾸미기도 한다.
■ 지상파 예능의 몰락 ‘씁쓸’
조 지난 10년 사이 지상파 예능이 몰락한 건 씁쓸하다. <런닝맨>, <무한도전>, <1박2일>, <해피투게더> 외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다.
정 지상파 예능의 위기다. 새로운 것 만들기보다는 <슈돌>처럼 베끼기만 한다. 반면 <해투>의 ‘야간매점’처럼 참신한 것들은 다 없앴다. 그게 먹방의 원조나 마찬가지인데. 안타깝다.
조 <해투>는 옛날 콘셉트가 더 좋았다. 특히 한증막 세트일 때 말이다. 그게 없어지니까 다른 토크쇼와 차별점이 없어졌다. <개그콘서트>, <웃찾사> 등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정 신선한 소재로 웃기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엠비시는 좀 너무해. <웃으면 복이 와요> 등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 강했는데, 지금은 명맥이 끊겼잖아. 그런데도 이젠 그에 대한 문제의식도 전혀 없어.
조 <신비한 티브이 서프라이즈>는 정말 상을 주고 싶다. 콘텐츠만으로 따지면 ‘넘사벽’이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상복이 없어 안타깝다. 묵묵히 훌륭한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진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 최고의 엠시는 신동엽
조 엠시 중에서는 신동엽이 참 대단한 거 같아.
정 <에스엔엘(SNL)코리아> 성공의 일등공신이 신동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야한 농담을 해도 야하지 않고, 불쾌하지 않을뿐더러 밉지 않고, 재밌는데 그게 그의 진가다. 지금도 최고의 엠시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조 맞다. 동감이다. 강호동은 어떤 것 같아?
정 확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한끼줍쇼>는 강호동이 살리는 프로그램이고, <아는 형님>에서는 자신을 먹잇감으로 낮추는 차별화 전략이 주효했다. 그런 면에서 강호동, 김희선, 정용화가 만들 예능 <섬총사>가 기대된다. <효리네 민박>에 거는 기대도 크다.
조 나영석 피디가 만들고 유시민이 출연하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 주목하고 있다.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10년 뒤, 더 기대되는 배우
대체 불가능한 배우, 박보영
“박보영을 보면 전성기 시절 장나라가 떠오른다. 구수한 연기도 잘하고, 귀엽고 당차다. <오 나의 귀신님>,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의 연기는 최고다. 지금도 잘나가지만 앞으로 더 잘나가지 않을까. ‘남자에게 같이 자자고 매달리는’ 꽤 도발적인 장면도 귀엽게 만드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다.”(조진국)
“<왕과 나>에서 박보영이 구혜선 아역이었다. 그 드라마가 잘 안 됐는데, 아역인 박보영과 유승호가 주인공인 구혜선과 고주원에 비해 연기를 너무 잘했다. 이들의 풋풋한 아역 연기에 푹 빠졌다가 성인으로 바뀐 뒤 맥이 빠진 거지. 그만큼 박보영은 흡인력 있게 연기를 잘한다.”(정석희)
지난 10년 최고의 예능
어른을 성장시키는 똑똑한 예능 ‘무한도전’
“<무한도전>은 웃음, 감동, 교훈을 골고루 주는 짬뽕 예능이다. 실패 가능성이 컸음에도 모범적으로 배합을 잘한 현명한 프로그램이다. 박명수 등 출연자들도 당시 재밌는 방송인이라고 인정받았던 이들이 아니었고. 하지만 이들을 한데 모아 시너지 효과를 냈다. 각자 나름의 실력도 있었지만, 운도 따랐다. <무도> 출연자들은 정말 천운을 타고난 거다.”(조진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성장하는 설정인 <무도>는 시의적절하게 시대의 흐름을 잘 탔다. 운이 좋다. 초창기엔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고, 목욕탕 물을 퍼내는 ‘무모한 도전’ 콘셉트였다. 이윤석, 이켠이 출연했었다.(지금은 하차한 걸 땅을 치며 후회할 거다.) 멤버들은 <무도>에서 연애와 결혼을 하고, 또 아빠가 됐다. 별 볼 일 없던 이들이 거목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시청자와 함께 늙어간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정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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