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2 20:40
수정 : 2017.07.20 09:16
[ESC] 보통의 디저트
초콜릿 무스(chocolate mousse·
그림)는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거품이란 뜻이다. 실제로 먹어보면 거품보다는 푸딩 혹은 꾸덕꾸덕한 죽 같은 느낌인데 거품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만드는 과정에 거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조법은 간단하다. 중탕한 초콜릿에 달걀노른자와 설탕, 머랭(달걀흰자로 만든 거품)과 휘핑크림을 차례로 섞어주기만 하면 된다. 머랭과 휘핑크림을 만들 때 시간이 걸리지만 거품기를 사용하면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초콜릿 무스를 처음으로 직접 만든 것은 십여년 전 베를린에서였다. 당시 나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친구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고, 늘 싱글싱글 웃으며 “나이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이스 가이’ 그 자체였다.
당장 공연이 없던 친구와 나는 종일 공원을 뒹굴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날은 밥을 먹고 난 뒤 친구가 “초콜릿 무스 만들어 줄까?”라고 물었다. 그래 좋지. 나는 말했다. 초콜릿을 너무 좋아해 ‘초콜릿 보이’라는 별명이 있던 나였다. “미국에 올 생각은 없어?” 초콜릿을 중탕시키며 친구가 물었다.
“힘들지 않을까. 나는 이제 취업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니까.” 나는 달걀흰자가 담긴 그릇을 든 채 머랭을 만들기 위해 죽어라 젓고 있었다. “부모님의 인생은 부모님의 것. 너의 인생은 너의 것.”
친구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국에 온다면 내가 일을 줄 수도 있어.” 당시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자신의 동료들 앨범 사진 같은 것을 찍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영어도 잘 못하고….”
“배우면 되지.” “그러기엔 너무 늦었지. 나 벌써 스물여덟이야.” “우리 부모님이 이민 왔을 때보다 젊네. 게다가 넌 미국 나이로 겨우 스물여섯이야.” 마땅한 답이 없어 나는 ‘헤헤’ 웃으며 계속 머랭을 만들었다.
친구는 솜씨 좋게 중탕된 초콜릿에 머랭과 휘핑크림을 섞어 틀에 담은 뒤 냉장고에 넣으며 “이제 삼십분 기다리면 완성~”이라고 말했다.
기다리며 우리는 머물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끝없이 펼쳐진 베를린 시내 너머로는 해가 지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물가도 싸고, 학생들을 위한 도시니까. 있다 보면 기회도 생기겠지.” “하지만 나는 회사에 가야 해.”
난간 위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친구는 “너는 회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떨어진 바닥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위험한 건 질색이었다. 난간뿐만이 아니다. 미국도, 베를린도 내겐 위험해 보였다. 그땐 그랬다.
적당히 굳은 초콜릿 무스를 대접에 담아 먹었다. 이전에도 식당에서 몇번 먹어본 적은 있지만, 모자람 없는 맛이었다. 내가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니” 하고 감탄하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나이스~”
귀국한 뒤 나도 초콜릿 무스를 만들던 친구의 모습을 더듬어 몇번인가 시도했지만 대개는 실패했다. 분명히 같은 과정으로 만들었지만 죽이 되어 버렸다. 사는 것 역시 마찬가지. 뜻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게 염원하던 회사에 갔으나 얼마 못 가 그만두었다. 내 모습을 친구가 본다면 뭐라고 할까. 보나 마나 웃으며 말하겠지. “나이스~”라고.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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