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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0 14:14 수정 : 2017.07.21 11:17

잔에 담긴 것은 맥주만이 아니다.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엔 만든 이의 장인정신이 담겨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sc] 커버스토리
대기업 맥주 식상 새로운 맛 욕구 늘어
와인만큼 다채로운 맛,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70여곳…투어 프로그램도 운영
첫사랑·뿅·막차 등 한글 상표도 눈길

잔에 담긴 것은 맥주만이 아니다.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엔 만든 이의 장인정신이 담겨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혀를 휘감는 묵직한 바디감’, ‘꽃향기와 열대과일의 아로마’, ‘썸 타는 사이처럼 달콤한 맛’, ‘포옹의 순간처럼 부드러운 맛과 향기’

와인 얘기가 아니고 맥주 이야기다. ‘신의 물방울’ 어쩌고 하는 과장된 표현으로 더 회자되는 ‘와인 맛’ 표현에 버금하는 수사들이 맥주에도 따라붙기 시작했다. 한국 맥주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획일적인 ‘라거류’ 맥주가 아닌, ‘에일류’ 위주의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수제맥주)의 맛과 향기에 대한 칭송이다.

이런 표현들이 넘쳐나는 건, ‘와인 덕후’ 못지않게 ‘맥주 덕후’(맥덕)가 급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비슷비슷한 대기업 맥주 맛에 식상한 소비자들의 새로운 맥주에 대한 열망, 그리고 개성적인 맥주 만들기에 뛰어든 ‘크래프트 브루어리(craft brewery·소규모 맥주 양조장) 주인들의 열정이 깃든 표현이기도 하다.

고양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의 하회탈 상표 맥주. 업체 제공
와인에 빠졌다가, 새롭고 다채로운 맥주 맛에 반해 수제맥주로 관심을 돌렸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요즘 수제맥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와인 소믈리에로 일하다 ‘맥주 양조장’을 차린 이도 있고, 외국으로 와인 유학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맛본 수제맥주에 반해 맥주 공부를 시작한 이도 있다. 여느 나라에 비해 뒤늦게 뜨고 있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확실히 블루오션이다.

요즘 수제맥주의 인기는 무더위의 열기를 따라잡을 태세다. 인기몰이의 중심엔 개성적 삶을 추구하는 20~30대 젊은층이 자리한다. ‘쌉쌀함’을 넘어 ‘씁쓸하고 맵싸한’ 맛, 그리고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의 수제맥주에 반한 이들이 몰리며, 소규모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펍들은 연일 만원사례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각 소규모 수제맥주 양조장의 매출은 해마다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수제맥주의 인기에 대해 충남 공주 ‘바이젠 브루어리’ 임성빈 대표는 “주당들이 그동안 새로운 맥주 맛에 목말라 있었다는 이유가 크겠지만, 최근 뜨고 있는 개성적인 멋과 맛을 추구하는 ‘욜로족’의 취향과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일산 브루하우스 더테이블의 더테이블 상표 맥주. 업체 제공
새로운 맥주 맛을 즐기기 위해 전국 수제맥주 양조장 투어에 나서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를 반영해 ‘제조과정 견학 프로그램’과 시음 행사를 마련하는 양조장이 늘고 있다. 직영 매장·펍 수를 늘리고, 대형 유통업체나 각종 대형 축제를 통한 판로 다변화에 나서는 양조장이 많다.

수제맥주의 다양한 맛에 빠져 집에서 맥주를 직접 만들어 먹는 ‘홈브루잉’도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포털의 ‘맥만동’(맥주 만들기 동호회·다음)의 회원은 3만3000여명에 이른다. 취미를 넘어 소규모 맥주 양조장을 차려 자신만의 개성적인 맥주를 선보이는 이들도 많다. 2013년 30여곳이던 ‘수제맥주 양조장’은 올해 6월 현재 70여곳으로 늘어났다. 2014년 주세법 개정으로 수제맥주의 전국 유통이 가능해진 데 힘입은 결과다.

국내외 수제맥주 양조장의 맥주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축제도 해마다 봄가을로 벌어진다. 올봄 코엑스 앞에서 열린 ‘그레이트 코리안 비어 페스티벌’에는 국내 양조장 27곳의 수제맥주와 수입 수제맥주 170여종이 선을 보여 성황을 이뤘다.

순창 장앤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과르네리 상표 맥주. 업체 제공
맥주 이름 짓기도 흥미롭다. 각 양조장의 개성과 마케팅 전략이 반영돼 있다. 특히 외국어 일색이던 맥주 시장에 당당히 한글 이름 상표를 붙인 맥주 출시가 잇따라 눈길을 끈다. 첫사랑·뿅·맑디맑은바이젠·첫차·막차·복덩이·양반탈 등이 독특한 이름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면, 해운대·금강·달서·강서 맥주 등은 지역 정서를 자극한다. 맥주를 담는 용기와 병 라벨 디자인도 개성 있다. 각 양조장의 맛과 향기 특징을 반영한 개성적인 형태의 병과 캔, 페트병 등이 쏟아져 나온다.

맥주 맛의 다양화에 따라 맥주 안주의 인기도 재편성되는 분위기다. ‘톡 쏘는 맛에 목넘김이 좋은’ 기존 맥주와 짝을 이루던 ‘치맥’이나 ‘피맥’(피자·맥주)을 넘어, 강한 향기와 진한 맛의 에일 맥주에 어울리는 ‘치맥’(치즈·맥주), ‘소맥’(소시지·맥주)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덥고 목마른 철이다. 유난히 무더운 올여름, 기존 대기업 맥주와 수입맥주들을 향한 국내 수제맥주들의 도전은 한결 돋보일 전망이다. 돋보일수록 다양한 수제맥주 골라 먹는 재미에 빠진 ‘맥덕’들의 표정은 밝아질 게 틀림없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 수제 맥주(크래프트 맥주).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이 소량으로 생산한 맥주를 말한다. 만든 이의 장인정신과 비법·취향 등이 반영돼 양조장마다 맛·향기·도수가 다른 개성적인 맥주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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