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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6 19:54 수정 : 2017.07.26 20:02

<비비시> 방송의 ‘미저리 베어’. 방송 갈무리

[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비비시> 방송의 ‘미저리 베어’. 방송 갈무리
나는 회사에서 이른바 ‘곰밍아웃’을 했다. 사내 분위기가 근엄하지 않은 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신입 사원 시절 어쩌다 곰 인형을 회사에 데려갔는데 동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야유회에도 데려가고, 노조 총회 때도 앉혀 두고, 회식 자리에도 참석시키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 저 사람은 곰 인형을 굉장히 좋아하지’라고 인식되었다. 이제는 사무실에 곰 인형 술빵이를 데려가면 선후배들이 심상하게 “오랜만이네요?” 인사를 건넨다.

회사에 반려인형을 데려가면 말할 수 없이 큰 위안이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 어떤 엄청난 직무 스트레스도 견딜 수 있을 정도다. 요즘은 반려동물을 데려올 수 있게 허락하는 회사도 있다는데, 반려인형은 짖지도, 돌아다니지도, 물지도 않으니 훨씬 더 회사 친화적인 존재이다. 민폐랄 것이 없다. 다만 조금 이상해 보일 수는 있겠다.

<비비시> 방송의 ‘미저리 베어’. 방송 갈무리
한국 사회는 노동 시간이 엄청 길고, 회사라는 조직은 여전히 위계질서와 의전 따위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그런 개성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분 좋게 일하기에도 회사라는 조직은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회사 일의 고됨을 잘 보여주는 곰 인형 영상이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서 웹 콘텐츠로 만든 ‘미저리 베어’ 시리즈 가운데 ‘미저리 베어, 회사에 가다’(Misery Bear Goes to Work) 편이 있다. 2분30초짜리 이 유튜브 영상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조회수만 160만 번이 넘는다. 영상은 멍한 표정을 한 곰돌이의 출근길로 시작한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축 처진 어깨로 등장하는 피곤한 곰 인형은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모닝커피로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해보려고 하지만, 이름마저 안타까운 주인공 ‘미저리 베어’는 쌓여 있는 문서와 맛없는 점심 샌드위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거리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끝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미저리 베어는 키보드에 머리를 박는다. 퇴근 후 바를 찾아 만취하기도 한다. 슬픈 이 영상의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길!

이 영상을 보고 나의 곰 인형 사랑을 더욱 과감히 밝히기로 했다. 회사 전자결재 시스템의 서명란에는 내 이름 세 글자 옆에 술빵이 그림을 그려 넣었다. 조금씩 더 이상해져도 괜찮다. 과로하는 회사원들이여, 정신 건강을 잘 돌보자. 평소에 조금씩 더 즐거워지자.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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