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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3 14:11 수정 : 2017.08.03 14:21

영화 <악녀> 포스터.

커버스토리
에로영화 ‘4-2-3-1’ 전략
2013년부터 ‘온라인 상영관’ 상위 링크
최근 투자자 줄어 위축

영화 <악녀> 포스터.

에로비디오 업계의 유명감독 ‘정우’(윤계상)의 애환을 그린 영화 <레드카펫>(2014)에서, 영화 속 조감독 ‘진환’(오정세)은 이제 막 촬영에 들어갈 스태프들에게 에로영화 제작 시스템을 축구 전술에 빗대 얘기한다. ‘배우 4명, 스태프 4명, 촬영 이틀’이라는 ‘4-4-2’ 전술을 지향하고 싶지만 “촬영이 이틀이면 블록버스터급”이기에, ‘배우 4명에 스태프 2명, 옷 3벌, 하루 촬영’인 ‘4-2-3-1’ 전술로 이번 영화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자고 한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아이피티브이(IPTV)라고 할 수 있는, 당시 비디오대여점 납품을 목적으로 한 에로영화가 무수히 양산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는 아직도 에로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은 디지털 온라인 시장 활성화와 브이오디(VOD) 이용 편의성 제고를 위해, 2013년부터 매월 아이피티브이 3개사와 디지털케이블티브이에서 수작업으로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를 제공하고 있다. 몇몇 화제작을 제외하면 오프라인 극장과 아이피티브이 개봉일 사이에 격차가 줄어들고 합법 다운로드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그 박스오피스 순위에 별 차이가 없다. 극장에서 잘된 영화가 온라인 시장에서도 잘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에로영화 장르 중심의 청소년관람불가 ‘성인영화’들의 약진이다. 7월 중순 현재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 1위는 <악녀>다. 에로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노출 수위 높은 장면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다 실제 극장에서 예상보다 저조한 흥행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극장에서 50만 관객을 채 모으지 못하고 이제 막 온라인상영관에 진입한 <리얼>이 <악녀>를 능가하는 다운로드수를 기록할 것 또한 쉽게 예상 가능하다. 배우 김수현과 설리의 베드신은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온라인 상영관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장면은 주경중 감독의 <나탈리>(2010) 스틸컷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처럼 2010년대 들어 아이피티브이의 확산, 합법 다운로드의 안착과 함께 에로영화를 중심으로 ‘혼밥’, 아니 ‘혼영’하는 온라인상영관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 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에로영화 촬영 현장의 생생함을 묘사한 봉만대 감독의 <아티스트 봉만대>(2013), 모자간 성관계 묘사와 성기를 자르는 장면 등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던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2013) 등이 이미 온라인상영관 순위 5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작 극장에서 ‘폭망’했던 작품임을 떠올려보면 역시 놀라운 수치다. 그보다 앞서 2010년 개봉한 <방자전>은 아이피티브이에서만 40만건에 가까운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배우 김혜선의 노출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완벽한 파트너>(2011)도 아이피티브이를 통해 극장 수입의 3배 이상을 벌면서 손실을 면했다. 곽현화, 하나경의 노출로 화제를 모았던 <전망 좋은 집>(2012)도 브이오디 서비스로만 8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수위 높은 정사 장면이 즐비한 조여정 주연 <후궁: 제왕의 첩>(2012)이다. 극장에서는 236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0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그의 절반을 훨씬 넘는 151만 다운로드수를 기록하며 그해 온라인상영관 한국영화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디지털케이블브이오디’ 집계). 이후 합법 다운로드 시장이 해마다 30% 정도씩 성장해왔으니 이제 오프라인, 온라인 박스오피스를 합산해서 연간 박스오피스를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감독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해 자신의 영화가 ‘○○년 흥행 베스트10’에 포함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관능의 법칙> 포스터.
<레드 카펫> 포스터.
그처럼 오프라인상영관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 온라인상영관에는 엄연히 에로영화 시장이 존재한다. 먼저 <젊은 엄마>와 <친구엄마> 시리즈로 유명한 공자관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공개와 함께 온라인상영관에서 5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젊은 엄마>는 현재 감독을 바꿔가며 4편까지 만들어졌음은 물론 <젊은 엄마: 내 나이가 어때서>(2015)와 <젊은 엄마: 디 오리지널>(2016) 같은 작품들로도 이어졌다. 과거 진도희 주연 <젖소부인 바람났네>(1996)가 비디오대여 시장에서 빅 히트를 기록하자 <만두부인 속터졌네> <꽈배기부인 몸풀렸네> 같은 아류작들이 실제로 만들어졌던 걸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특히 <젊은 엄마: 내 나이가 어때서>에는 최근까지도 주류 상업영화 시장에서 활약했던 배우 채민서(<가발>, <채식주의자>)와 동방우(‘명계남’의 예명)가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에로영화는 1980년대 한국 영화산업을 굳건히 지탱해온 장르였다.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였던 안소영 주연 <애마부인>(1982)과 이대근 주연 <변강쇠>(1986) 시리즈는 당대 최고의 흥행 영화들이었다. 1985년 개봉한 <어우동>은 추석 시즌에 맞붙은 <다이하드>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는데, <깊고 푸른 밤>은 그 <어우동>마저 누르고 그해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이어 개봉한 1988년의 <매춘>, 1989년의 <서울무지개>도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당시 극장 개봉 흥행 한국영화들은 거의 에로영화였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가정용 비디오 문화가 확산되면서 시장은 급변한다. 김문희 주연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는 그 황혼기를 장식한 작품이다. 그처럼 1990년대 들어 극장가에서 에로영화가 사라지기 시작한 대신, 전국 3만여개에 육박하는 비디오대여점을 중심으로 <젖소부인 바람났네>와 <정사수표> 시리즈로 대표되는 ‘한시네마타운’과 ‘유호프로덕션’이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다 <자유학원> 시리즈의 ‘씨네프로’와 은빛과 하소연 등의 스타로 대표되는 ‘클릭 엔터테인먼트’가 세대교체를 이뤘고(이 시기 등장한 감독들이 바로 봉만대, 공자관이다), 그 이후에는 잠깐의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21세기 시네마’와 ‘초록미디어’와 ‘미공개’라는 3강 체제로 재편됐다(이 시기 등장한 감독이 바로 <레드카펫>의 박범수다).

하지만 그 시장의 활력이 충무로로 자연스레 옮겨오진 못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봉만대와 공자관을 잇는 이름은 여전히 등장하지 않고 있다(어느덧 그들의 나이도 40대를 훌쩍 넘었다).

아이피티브이 개봉을 중심에 둔 에로영화들은 눈에 띄게 주는 추세다. 그사이 ‘에로의 고급화’를 표방한 이성재, 박현진 주연, 주경중 감독의 <나탈리>(2010)라는 에로영화의 3D 개봉 시도도 있었다. 상업영화 시장 안에서 <관능의 법칙>(2013), <레드카펫>, <워킹걸>(2015)처럼 본격적으로 성인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이 제작됐다. <관능의 법칙>은 엄정화, 문소리, 조민수 등 당대 대표 여배우들의 캐스팅이라는 점에서, <레드카펫>은 봉만대와 공자관처럼 ‘에로비디오 시장 출신’ 박범수 감독의 메이저 진입이라는 점에서, <워킹걸>은 작가적으로 주목받던 정범식 감독의 변신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가장 최근 상황은 투자자가 줄어드는 등 위축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영화 <레드카펫>에서 주인공 ‘정우’는 박찬욱 감독을 존경하지만 현실은 <올드보이>(2003)를 패러디해 ‘장도리 베드신’을 연출하고, 그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를 살짝 바꿔 <싸보이지만 괜찮아>란 차기작을 준비한다. 현실은 고달프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칸영화제를 꿈꾸고 있다. 앞서 얘기한 4-4-2, 4-2-3-1 전술은 바로 지금 영화를 만드는 젊은 친구들의 진지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장르에 대한 편식이 없다.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재능의 출현을 기다린다.

주성철(<씨네21> 편집장)

에로 영화(Ero movie)

성적 욕망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의 영화. 성애 장면을 주로 다루지만 직접 성행위를 하지는 않음. 실제 성행위를 집중 묘사하는 포르노 영화와는 구별됨. ‘에로’는 에로틱을 줄인 일본어식 표현. 정확한 표현은 ‘에로틱 무비’(Erotic movie), ‘에로틱 필름’(Erotic film)이나 한국에선 ‘에로 영화’(Ero movie)로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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