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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백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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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문가가 털어 놓는 한·중·일 국수 얘기
박찬일 “한국, 분식집·포장마차 국수 큰 위로 돼”
신계숙 “중국 밀가루로 100여종 이르는 면 생산”
예종석 “170년 넘은 소바집 아직 건재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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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백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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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사랑하는 국수지만, 국수는 여전히 아시아의 상징 같은 음식이다. 가늘고 긴 국수가 포크보다 젓가락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시아 특히 한국, 중국, 일본만큼 다양한 국수를 먹는 나라는 드물다. 이들 세 나라는 자신들의 땅에서 나는 곡물과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 무궁무진한 국수를 만들어냈다. 독자적인 국수 문화가 발달한 만큼 국수에 대한 자존심도 남다르다. 한·중·일의 국수 이야기를 음식 전문가의 입을 빌려 들어봤다.
■ 서민의 위로거리…한국의 분식집 국수
“국수나 삶지 뭐.” 내가 스무 해 전쯤, 하던 일을 그만두려고 할 때 내세운 대안(?)이었다. 실제로 국수를 삶아서 먹고살기 시작했다. 서양 국수(스파게티)였다. 나는 국수를 정말 좋아했다. 밖에서 누가 밥 사준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밥’을 사주면 이해를 못 했다. 밥이야 집에서 매일 먹는 거 아닌가. 짜장면, 칼국수, 잔치국수, 우동, 메밀국수…. 밥은 반찬으로써 다채로울 수 있지만, 국수는 그 재료와 형태로 이미 사람을 유혹했다. 그래서 분식집이 좋았다. 지금은 거개 ‘○○천국’ 부류의 집에 수렴되었지만, 예전에는 분식집마다 개성이 있었다.
분식집이란 가루 음식을 파는 가게. 당연히 밀가루 음식이었다. 밀가루가 쌌으니까. 이승만, 박정희 정권은 국민을 배불리 먹이는 데 골몰했고,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악수했다. 미국은 남아돌았고, 우리는 모자랐다. 분식집이 장려되었다. 도시로 몰려든 지방민들이 하는 자영업의 다수가 포장마차 아니면 분식집이었다. 포장마차의 주력 메뉴가 가락국수나 잔치국수였으니 유사 분식업이었다.
포장마차가 닫을 시간, 주인은 삶아둔 국수가 남으면 집의 아이들을 먹였다. 내가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거 남으면 어찌합니까?” 술김에 나는 두 그릇을 먹었다. 그 집 아이들이 쌀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주인은 굳은 국수를 어묵에 부드럽게 토렴해서 하얀 반점이 흐릿하게 박힌 초록색 그릇에 담았다. 뜨거운 국물을 붓고, 오랫동안 잠겨 있어 거의 크림처럼 녹아버리는 어묵을 올리고, 굵은 고춧가루를 뿌리고, 다진 파와 통깨가 고작이었던. 소독저를 갈라 들고 후룩후룩 소리도 요란하게 입에 넣으면 열기가 정수리에 닿았다. 차갑게 언 포장을 걷고 거리로 나왔다. 밤길에 귀때기가 떨어져나갈 듯 추웠지만, 속은 따뜻했다. 국수 말고 그 암담하던 사람들을 위로하던 존재가 또 얼마나 있었을까.(물론 소주에는 서열이 밀린다)
분식집은 또 어땠는가. 문자 그대로 분(紛)식집이었다. 쌀보다 싸고 맛도 단 밀가루 음식의 보급자. 잔치국수, 가락국수, 가케우동, 냄비우동, 쫄면, 비빔국수…. 일부러 이런 집에 가서 짜장면을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이유는 딱 하나. 중국집보다 50원 정도 쌌다. 전문점이 아니니 맛은 덜했지만, 양은 많았다. 독수리표니 별표니 하는 2등급 밀가루라 색도 좀 검었다. 밀가루 풀 냄새가 나는 그 국수에 묽은 짜장을 듬뿍 부어주었다. 어째 면의 물기도 덜 털어낸 듯해서 먹는다기보다 그냥 마신다는 느낌의 짜장면이었다. 그릇을 들고 입에 댄 후 소독저가 길잡이가 되어 밀어넣으면 한 그릇이 없어졌다. 국수로 받은 위안으로 살아낸 세월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국수를 먹었던 것은.
쓰는 김에 밀가루 음식이 몸에 나쁘다는 분들께 한마디 하자. 밀가루에 유지(지방)를 섞어 빵을 만들거나, 튀기는 과자가 많다. 지방과 설탕을 많이 먹게 된다. 그게 첫째다. 밀가루 국수는 빨리 먹게 되니 과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둘째다. 밀가루 잘못이 아니라, 밀가루를 먹는 방법이 문제다. 쾌락과 건강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일 뿐.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 칼럼니스트)
■ 중국인의 면 사랑
‘중국에 짜장면(炸醬面)이 있다? 없다?’는 아주 많이 오래된 소소한 논쟁거리다. 답은 ‘있다’이다. 다만 짜장면 앞에 노북경(老北京·라오베이징)이라는 지명을 붙여서 노북경짜장면(老北京炸醬面)이라 한다. 모양도 조금 다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짜장면은 짜장이 국수를 모두 덮는다. 그렇지만 베이징에서 짜장면을 주문하면 장을 두어 숟가락 얹어준 듯하다. 그 대신 오이를 채 썰어 얹고 더러는 콩도 얹어준다.
짜장면은 우리에게 그저 짬뽕과 쌍벽을 이루는 맛있는 면이지만 중국인에게 짜장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밀가루로 만든 면을 삶아 튀겨 만든 장에 채소를 곁들이는 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면을 만드는 재료는 밀가루가 아닌 쌀이나 메밀, 옥수수, 고량(수수) 등 다른 재료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고 조리법도 삶는 것 이외에 지지거나 볶거나 찌거나 튀기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뿐인가 채소를 사용했다면 채소 외에 가축류, 가금류, 해물류 등을 이용해서 만든 면도 있을 터이다. 아! 그래서 ‘중국인들은 일양면식백양식(一樣面食百樣食), 즉 밀가루 한 가지로 100여 종의 면을 만든다‘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음식천국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은 무엇일까? 단연 면이다. 남방, 북방, 남녀노소, 빈부귀천, 춘하추동, 밤낮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면이다. 밥 대신에 먹기도 하고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장강(양쯔강) 이북지역을 여행하게 되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국숫집(面館)이다. 중국 중부의 섬서성(산시성)에는 국숫집이 매우 많다. “왜 그렇게 국숫집이 많지?”라고 물었더니 밀로 만든 국수를 먹으면 40리 길을 갈 수 있지만, 쌀을 먹으면 30리밖에 못 가기 때문에 밀로 만든 국수가 훨씬 우수하다고 자랑을 한다.
이렇게 매일 면을 먹으면서도 아기가 태어나서 한 달이 되는 만월(滿月)에 손님을 초대하여 축하 음식으로 면을 대접하고 집안 어른의 생신에도 오래오래 사시라는 의미로 장수면을 만들어 먹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붉은 사탕을 넣어서 달콤하게 만든 면을 먹어야 길하다고 믿는다. 이처럼 중국인에게 면이라는 음식은 일상 음식이자 행사 축하 음식이기도 하다.
신계숙(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학과 교수)
■ 일본 국민 음식, 소바
소바(蕎?. 일본식 메밀국수)는 가히 일본의 국민 국수라 할 만하다. 면을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소바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소바 제조법에 관한 기록은 1643년에 출간된 요리책 <요리 물어이야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놀라운 것은 그때로부터 무려 178년 전에 창업한 소바집이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465년에 문을 연 교토의 혼케오와리야 본점(本家尾張屋)이 바로 그 집이다. 과자점으로 시작했다가 에도시대 중기에 소바를 메뉴에 추가했다고는 하나, 그 긴 세월을 버텨온 끈기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1958년에 간행된 모토야마 데키슈의 <음식사전>은 소바 제면법을 에도시대 초엽에 조선에서 건너온 원진(元珍) 스님에게서 처음으로 전수받았다는 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소바 계보는 그 복잡한 야쿠자의 계보보다 갈래가 더 얽혀 있다. 도쿄에는 에도시대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사라시나(更科)와 스나바(砂場), 야부(藪) 등 이른바 3대 노포 계통의 소바집들이 지금도 성업 중이다. 잇사안(一茶庵)은 한참 뒤인 1926년에 창업을 했지만, 이들에 못지않은 전국적인 계파를 형성하며 기업화에도 성공하고 있다. 소바는 사라시나계처럼 메밀의 속살로만 반죽을 만들어 흰색을 띠기도 하고, 야부계처럼 껍질을 같이 갈아 회색을 띠기도 한다. 전자는 ‘목 넘김’이 좋고 후자는 메밀 향이 좋다. 일본에는 소바통(蕎?通)이라 부르는 마니아들이 있는데 그들은 목 넘김을 즐기기 위해 소바를 거의 씹지 않고 길게 들어서 입에 넣고 삼킬 정도이다. 일본의 구 천엔권에도 등장했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소바 맛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고 소바는 씹으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한입에 빨아먹어야 하며 “목구멍으로 쭈르륵 미끄러져 들어가는 맛”이 그 참맛이라고 설파하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메밀의 함량에도 집착하는데 소바 전문점들은 메밀가루 100%의 ‘주와리’부터 밀가루 1에 메밀 10의 비율로 섞는 ‘소토이치’, 1 대 9의 ‘잇큐’, 2 대 8의 ‘니하치’, 5 대 5로 섞는 ‘도와리’까지 집마다 나름의 비법을 자랑한다. 소바는 기본적으로 대나무 채반에 얹은 면을 쓰유(양념장)에 찍어 먹는 차가운 소바류와, 가케소바처럼 국물에 말아 먹는 따뜻한 소바류로 나뉜다. 또 고명에 따라 튀김소바, 청어소바, 오리소바, 산채소바 등 다양한 종류로 발전한다. 일본인들은 소바의 길이와 가닥 수도 따지는데 최고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8촌(24.24㎝) 길이의 면을, 한입에 여섯 가닥씩 먹어야 한다고 전해진다.
일본에는 ‘소바 연구가’라는 직업은 물론 와인의 소믈리에와 비견되는 ‘소바리에’라는 직종이 다 있고 ‘소바 감정사’에다 태권도나 유도처럼 유단자 자격을 심사하는 ‘소바단위인정대회’가 있으며 심지어 ‘소바 명인전’까지 개최되는 지경이다. 이러한 자격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바 학원이 성업 중인 것을 보면 일본 사람들의 소바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냉면이나 막국수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겸 음식문화평론가)
Noodles
국수. 밀, 쌀, 감자 등 곡물을 가루 내 반죽한 뒤 가늘고 길게 만든 음식. 다양한 재료로 만든 국물 또는 소스와 함께 먹음. 동양권에서는 긴 형태 때문에 장수의 상징으로 여김. 기원전 6000~5000년 전부터 인류가 먹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동서고금 최고의 인기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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