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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26 11:27 수정 : 2017.10.26 15:00

최근 소장용으로 펜을 수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만년필 펜촉의 촉감을 즐기는 것이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인류의 문명사와 문구의 역사
디지털 시대 들어 소멸 위기 처하기도 했지만
최근 소장용 오브제·디자인용품으로 부활

고양이 장난감에서, 비녀 대용까지
무궁무진한 펜의 사용처


최근 소장용으로 펜을 수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만년필 펜촉의 촉감을 즐기는 것이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고대로부터 인간은 뭔가를 적어왔다. 인류의 문명사를 문구의 역사와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은 뭔가를 쓴다. 그러나 그 행위를 위해 더는 펜과 종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손에는 스마트폰이, 태블릿피시가 들려 있다. 디지털 기기에 사진, 문자, 동영상, 음성 등 다양한 형태로 기록된 메모는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저장되거나 클라우드(인터넷상 개인용 서버에 각종 정보를 저장하는 시스템)에 동기화되고,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매끈한 정보가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구의 존폐와 관련한 부정적인 뉴스를 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구점은 줄줄이 문을 닫는다. 세계적으로 문구업계는 만성적 실적 악화에 시달린다. 대신 종합생활용품 제조업체로 변신을 꾀하거나, ‘스마트 문구’로 대안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문구는 수년 안에 사라질 것인가?

잠시 80년 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연필>에 따르면 1938년 <뉴욕 타임스>는 타자기가 손으로 쓰는 필기도구인 펜과 연필을 몰아낼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100년 혹은 200년 후 도서관에서는 연필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한 문헌을 구하려 할 것이다’라고 꽤나 단정적인 결론을 짓는다. 그러나 이후 연필은 사라졌는가? 전혀 아니다. 그로부터 약 80년이 지났고, 타자기의 시대를 훌쩍 지나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가 세계를 점령한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구의 모험>은 작가이자 테크놀로지스트인 케빈 켈리의 말을 빌려 ‘테크놀로지라는 종(種)은 불멸’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소멸한 것 같은 테크놀로지도 어딘가에 살아 저장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형식으로 응용되거나 놀이기구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동호인과 팬들에 의해 계속 활용되기도 하면서. 전구가 발명된 뒤에도 양초는 살아남았다. 테크놀로지의 영역에서 낭만과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연필의 경우를 보면, 필기 등 교육적 목적으로 구매됐지만, 학생들은 연필을 돌리면서 내기를 하는 등 게임용으로 많이 이용했다. ‘행맨’ 등과 같은 대화형 게임이 개발된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치 양초처럼 말이다.

펜도 마찬가지다. 동호인과 ‘덕후’들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펜을 굳이 계속 사용한다. 그들은 필기구를 사용할 일을 ‘일부러’ 만들어내고, 종국에는 그 일이 먼저인지 필기구에 대한 사랑이 먼저인지 모르는 단계로 넘어가 버린다. 캘리그래피(손글씨를 이용한 시각예술), 펜글씨, 필사, 컬러링북 등의 유행은 그런 데서 온다. <필사의 기초>의 저자 조경국은 문방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필사에 대한 애정은 곧 문구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필사 때문에 문구를 사느냐, 문구를 샀기 때문에 필사를 하느냐의 단계는 이제 지난 듯하다.”

<궁극의 문구>의 작가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역시 지독한 문구 마니아지만 동시에 컴퓨터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그는 “어느 한쪽이라도 없어진다면 내가 원하는 표현을 제대로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펜으로 뭔가를 쓰는 것과 디지털 기기로 뭔가를 쓰는 것 사이에는 정보의 ‘두께’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문자에 담긴 ‘정서의 두께’라는 표현으로도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디자인 문구가 큰 인기다. 문구는 이제 학교 앞 문방구나 사무용품점에서만 취급되지 않는다. 독특한 디자인의 문구를 모아놓은 문구 편집숍이 주목을 받고, 자체적으로 문구를 디자인하는 브랜드도 생겨났다. 이것은 문구가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사용성의 영역에서 장식이나 소장을 위한 ‘오브제’의 영역으로 넘어왔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문구의 존재는 의연하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물리적인 것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모두 다 같은 이야기다. 결국 펜과 연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펜 사용불가설명서

펜은 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펜으로 또 다른 일도 할 수 있다.

비녀 대용 머리카락이 긴 여성이나 남성에게 유용하다.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돌려 무심코 펜으로 고정하는 자의 쿨함이란. 연필을 사용하면 더 멋이 있다.
독펜 암살 만년필이나 볼펜 안에 펜촉 대신 독침이 들어 있다. 펜의 윗부분을 서너 차례 돌린 뒤 누르면 독이 분사돼 급격한 마비를 일으킨다. 영화 <킹스맨>의 필수 장비 중 하나. 김정남 암살에 사용됐다는 추측이 있다.
셀로판 포장 뜯기 각종 물건의 셀로판 포장, 특히 포장 음식의 포장을 뜯는 데 유용하다. 펜이나 연필의 뾰족한 심을 이용해 셀로판지를 뚫는다.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포장지는 쉽게 뜯어진다.
스파이 업무용 소련의 비밀경찰(KGB)이 쓰던 비밀 볼펜은 특수잉크를 사용해, 쓴 글씨가 48시간 안에 서서히 사라진다. 일본 산코사의 스파이펜은 음성녹음이 가능하며 펜 뒤쪽에 내장된 마이크로카메라로 고화질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펜 비트 연주 펜으로 책상을 치면서 리듬과 비트를 만들어내는 연주법이다. ‘손목으로 치기’, ‘펜 끝으로 치기’, ‘펜 전체로 치기’ 등의 기술을 이용하는데, 무작정 두드리는 게 아니라 엄연히 연주 공식과 악보가 존재한다. 유튜브에 ‘펜 비트 연주 강좌’ 동영상이 많다. 유행이 좀 지났지만 구미가 당긴다면 연습해 보자.
긁기 머리를 긁거나 등을 긁는 데 사용하면 꽤 만족스럽다. 귀 후비기에도 종종 사용된다. 주의할 것은 뾰족한 쪽을 귀 안에 넣으면 안 된다는 점. 가장 유용한 것은 깁스 안으로 밀어 넣어 가려움증을 해소하는 것.
창틀 닦기 펜 끝을 헝겊으로 감싸면 창틀의 좁은 틈을 닦기 좋다.
발음 교정 볼펜을 가로로 물고, 또박또박 책을 읽는다. 안쪽으로 꽉 무는 게 아니다. 혀가 볼펜에 부딪혀 위치를 알 수 있게 하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앞니 가까이에 물어야 한다.
펜 돌리기 펜 돌리는 기술은 다양하다. ‘섬 어라운드’는 펜을 튕겨 엄지 주위로 한 바퀴 돌린 뒤 다시 손에 쥐는 방법이다. ‘소닉’은 펜을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우고 있다가 한 바퀴 돌려 검지와 중지 사이로 이동하는 기술이다. 연습하다 보면 펜 돌리기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고양이 장난감 고양이들은 길쭉한 펜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 펜을 바닥에 대고 굴리거나, 손에 들고 왔다 갔다 움직여보라. 고양이는 그것을 잡으려 애쓸 것이다. 펜에 긴 실을 묶고 실 끝에 작은 인형이나 종이 뭉치를 달아 장난감을 만들어도 좋다. 뾰족한 심은 위험하니 주의.

참고자료 <연필의 101가지 사용법>

이로사 객원기자 leerosah@gmail.com, 펜 협찬 ‘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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