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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3 10:30 수정 : 2017.11.23 10:30

‘신해철의 생각에…’ 전시 가보니
예술가들, 마왕의 사상 표현
건물 외벽 코 파는 그림에서 ‘빵’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됐지만 그를 반추하는 움직임은 여전하다. 특히 3주기인 올해는 추모 공연에 더해, 그를 소재로 한 전시회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회가 주목한 것은 노래나 사진이 아닌 그의 ‘생각’이다. 전시회의 명칭을 ‘생각생각-신해철의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전시’로 잡은 이유다. 음악가가 아닌 ‘사상가’로서의 신해철을 다룬 것이다. 22명의 예술가가 35점의 작품으로 신해철의 생각을 표현했다. 전시회는 고인의 부인 윤원희씨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꿈 이루는 세상’이 주관했다.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 10일 다녀왔다. 전시는 이달 30일까지며, 유료(8000원)다.

신해철의 노래를 소재로 한 건축가 오영욱(오기사)의 뮤지컬 영화 시나리오 ‘굿방이 얄리’.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서울 서촌은 겨울을 한발 빨리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왕산과 북악산을 타고 넘어오는 찬 바람은 낙엽을 재촉했다. 무어라도 금방 쏟아질 거 같은 날씨, 경복궁 서쪽 영추문 건너편의 진화랑에 도착하자 웃음이 ‘빵’ 터져 나왔다.

사상가로서의 신해철을 주목한다더니, 화랑 담벼락에 신해철이 코를 파고 있는 큰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아닌가. 다소 살집이 있는 얼굴, 선글라스, 무언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 영락없는 신해철이다. 그런데 코는 왜 파고 있는 거지?

궁금증을 안고 화랑 안으로 들어가자 전시회를 기획한 신민 기획실장이 마중을 나왔다. “왜 코를 파고 있죠?” “딱 신해철처럼 보이지 않나요? ‘너희들은 떠들어라, 난 코나 파고 있으련다’ 이렇게 말이죠.” 신 실장은 웃으며 답했다.

그림은 스트리트 미술 작업을 주로 하는 구나현 작가의 작품이다. 한 방송에 나온 신해철이 코를 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구 작가는 “방송에서도 편하게 코를 후비고 있는 모습 하나만으로 그가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내었는지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솔직함과 익살스러움으로 그를 표현한 그림 하나가 신해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구나현 작가의 ‘코 파는 신해철’. 진화랑 제공

전시장은 총 4개의 테마로 이뤄져 있다. ‘삶에 대한 생각’, ‘상징성에 대한 생각’, ‘공간에 대한 생각’, ‘음악에 대한 생각’이다. 1관부터 4관까지 이어지는 유기적 관람을 위해 화랑 쪽은 없던 담벼락까지 만들었다. 관람 동선의 끝에 ‘음악에 대한 생각’ 전시관이 나온다. 그의 음악을 만든 것은 결국, 앞선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신해철의 사상인 셈이다.

1관이 있는 화랑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가면 벽에 “국회 역시 19금이다”, “꿈이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라이브가 듣고 싶으면 콘서트장으로 가라” 등 그의 ‘독설’이 눈에 띈다. ‘역시 신해철’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말들이다.

2층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전시관 중앙의 대형 모니터가 들어온다. 건축가 양수인의 ‘삶것’이라는 작품이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인터랙티브’ 형식을 취했다. 화면 속에는 수많은 문장이 떠다닌다. 읽어보면 두서가 없다. 신해철 노래의 가사들을 입력해 무작위로 조합한 것이다. 관람객은 화면 앞의 버튼을 눌러 문장을 발췌한다. 자신이 원하는 문장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순 없다. 마치 도박장의 슬롯머신처럼 버튼을 누르면 무작위로 문장이 골라진다.

양수인 작가의 ‘삶것’. 진화랑 제공
이렇게 세번의 선택을 하면 하나의 ‘시’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화면 속의 공기방울에 저장된다. 관람객들은 공기방울 속에 저장된 시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일종의 인기투표 방식이다. 선택을 많이 받을수록 공기방울이 커진다. 신해철의 생각은 이렇게 커 나간다.

‘생각생각’ 전시회 포스터. 진화랑 제공
직접 해보았다.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또 다른 문으로 지금 태어난 자들이 들어온다, 너의 것이 아닌 내일 이해할 수 없는 미래’라는 오묘한 느낌의 문장이 만들어졌다. 기자가 직접 선택해 만든 문장이 관람객의 호응을 받을지 궁금해졌다. 이밖에도 건축가 오영욱은 그의 노래를 소재로 한 뮤지컬 시나리오 ‘굿바이 얄리’를 책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2관은 신해철을 상징하는 것들로 채웠다. 화랑 외벽에 있던 구나현 작가의 ‘코 파는 신해철’이 좀 더 확장된 형태로 전시돼 있다. 코를 파고 난 뒤 그의 새끼손가락 끝에 있는 건 코딱지가 아니라, 민들레 꽃이다. 신민 실장은 “민들레는 흔한 꽃이다.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있다. 평범한 대중들과 호흡하려 했던 그를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지하에 있는 3관엔 그의 마지막 작업실이 있던 경기 성남시의 스튜디오를 촬영한 사진이 전시돼 있다. 신경섭 작가는 작업실을 있는 그대로 찍되,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중했다. 무심하게 꽂혀 있는 마스터 녹음테이프, 도처에 널려 있는 재떨이, 빈티지 가구을 담은 사진 프레임 밖에 무엇이 있을까,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관 안에는 그가 오랫동안 진행했던 라디오 방송 ‘고스트 스테이션’이 흘러 나온다. 커다란 작업실 사진을 보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치 그의 작업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4관은 그의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신발이나 의상 같은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다. 엄청난 굽 높이의 구두와 다소 ‘오버스러운’ 제복 스타일의 의상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작은 키와 결혼 뒤 후덕해진 몸집을 감추려 했던 그의 노력, 즉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했던 예술인의 노력이 보여 짠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조현수 작가의 신해철 흉상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흉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조각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 사이의 공간에서 조각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라졌지만, 영원히 대중 사이에 있는 존재, 신해철처럼.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조현수 작가의 신해철 흉상. 진화랑 제공

신해철이 사랑한 것들

대중에게는 독설가 이미지가 강한 신해철이지만, 그에게도 자신의 취향을 즐기는 사생활은 존재했다. 그가 좋아했던 것들을 뽑아 봤다.

담배

그는 소문난 애연가였다. 담배를 많이 피운 만큼 재떨이에도 관심이 많았다. 경기 성남에 있는 그의 마지막 작업실에는 지금도 군데군데 재떨이들이 놓여 있다. 취향도 가지각색이어서, 싼 제품부터 제법 고가의 재떨이까지 손이 닿는 곳에는 항상 재떨이가 있을 정도로 담배를 좋아했다.

술과 담배는 웬만하면 붙어 다니긴 하지만 특별히 그는 술을 전문적으로 수집할 정도로 애주가였다. 진화랑 신민 기획실장은 “작업실에 온갖 술이 다 있어서 술만 전시할까 생각도 했었다”고 할 정도다. 그와 친분이 있던 <문화방송> 조승원 기자는 “노래 ‘재즈카페’의 가사처럼 그는 브랜디(과일을 증류해 만든 술)와 위스키를 좋아했다. 특히 브이에스오피(VSOP·20~30년 숙성된 브랜디 등급) 코냑(프랑스 코냐크 지방에서 생산하는 브랜디)을 가장 좋아했다”고 말했다.

빈티지 가구 및 소품

그의 작업실엔 올드한 디자인의 가구가 많이 배치돼 있다. 북유럽풍의 미니멀한 가구가 유행인 세태에 비춰 조금 독특한 취향인데, 전문적인 심미안을 갖고 수집한 것은 아니라는 평이다. 다만,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이국적인 디자인에 매료된 것임은 분명하다. 인도나 인디언 원주민풍의 소품도 많이 수집했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2014년 나온 그의 유고집엔 “나는 책이 좋다. 졸라 좋다. 웬만한 여자보다 좋다”라고 쓰여 있다. 이 책을 보면 신해철은 공상과학, 판타지, 역사, 요리 분야의 책을 좋아했고, 명작, 애정물, 추리 소설은 싫어했다. 좋아하는 책 목록에 <성경>, <반지 전쟁>,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 <한단고기> 등의 책이 있는데, 대충 어떤 쪽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악기

그는 악기 덕후였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신시사이저 등 새로운 악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온갖 종류의 신시사이저와 기타 등 악기를 수집했다. 대학가요제 대상곡 ‘그대에게’ 도입부의 신시사이저도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였다. 전주만 듣고 당시 심사위원 조용필이 대상을 점찍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태지가 신해철에게 샘플러 사용법을 배우러 갔다는 일화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Shin hae chul(신해철)

1968년 서울 출생. 뮤지션, 음악 프로듀서, 라디오 디제이, 방송인 그리고 독설가. 별명은 ‘마왕’.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리더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 솔로, 밴드(넥스트 등), 영화음악 등 총 35장의 앨범 발표. 대표곡으로는 ‘그대에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민물장어의 꿈’ 등이 있음. 2014년 불의의 의료사고로 사망.

사진 신경섭 작가. 진화랑 제공

사진 신경섭 작가. 진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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