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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3 11:17 수정 : 2017.11.23 11:27

사진으로 구성한 신해철의 삶


▶ 1~7 신해철은 서울 회현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약사였던 유복한 가정이었다. 사립 초등학교인 영훈초등학교에 다녔다. 8~9 재학중이던 보성고와 경복고 연합 밴드 각시탈에서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사단법인 꿈이루는세상 제공
▶ 10 1998년 대학가요제 출연 모습. 11 넥스트 결성. 12.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와의 대담. 13 이라크파병 반대 시위. 13 고려대학교 특강. 14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 연설. 15 '100분 토론' 출연. 16 대학가요제 폐지 반대 운동. 17 솔로 6집 <리부트 마이셀프> 발표. 18 서울 풍남동 아산병원서 진행된 발인. <한겨레> 자료사진

신해철의 삶은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뒤 음악인으로 이름을 알린 전반기와 라디오 방송 <고스트 스테이션>을 진행하며 생긴 마왕의 이미지가 각인된 후반기로 나뉜다. 고등학생 때 이미 학교 밴드를 하며 음악인의 길을 걷기로 한 신해철의 전반기 삶이 음악으로 채워진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다.

후반기 마왕의 이미지를 가진 신해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 유세에 등장하기도 하고 텔레비전 지지 연설을 할 정도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노 전 대통령의 추모공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올라 통곡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주목하자고 했던 그가, 평범한 대중보다 오히려 더 정치와 사회에 대한 발언을 많이 한 것이 ‘자기 배반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신해철은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았을 뿐이다. 문화평론가 이승한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희한한 캐릭터”라고 평가했다.

대표곡 ‘민물장어의 꿈’의 한 구절은 그의 삶을 축약한다.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어릴 때부터 그의 죽음까지의 궤적을 사진으로 구성했다. 대중의 마음을 흔든 그였지만, 결국 그도 평범한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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