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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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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막 세포 덮는 액체
98% 수분, 항균 물질도 포함
안구보호·시력 유지 기능도
정서적 이유로도 배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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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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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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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나는 법인데.”
살다가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온다. 지나치게 냉정하고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차마 앞에서는 대들 용기가 없을 때 우린 이런 말을 속으로 곱씹는다.
사실 눈물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눈물샘에서 만들어지는 체액(體液)의 일종으로, 체온 조절(땀), 소화 보조(침), 이물질 배출(콧물), 생식세포 운반(정액) 등의 역할을 맡은 다른 체액들처럼 눈물 역시도 일차적인 기능은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체액일 뿐이다. 그러나 눈물은 그 생물학적 의미보다도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의미가 더 큰 체액이다. 그래서인지 눈물에 대한 인식마저도 다른 체액들과는 대우가 사뭇 다르다.
메리 더글러스가 <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에서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체액은 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밖으로 배출되는 순간 불결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탈바꿈한다. 우리의 코는 늘 콧물을 만들어 코점막이 마르지 않게 보호하고 이물질이 호흡기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만, 이 콧물이 콧구멍이라는 경계를 지나 세상 빛을 마주하는 순간, 그건 그저 더러운 것이 되고 만다. 침도 마찬가지다. 내 입속에 있는 침은 구강점막을 마르지 않게 보호하고, 소화를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일 뿐 아니라 깨끗한 존재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삼키거나 입술에 발라도 괜찮지만, 입술이라는 경계를 통과한 침은 세균투성이에 악취가 풍기는, 심지어는 상대에 대한 모욕의 언사로도 읽힐 수 있는 더러운 것이 되고 만다. 하지만 눈물만은 다르다. 눈물이 눈꺼풀이라는 경계를 넘어 흘러넘치거나 뚝뚝 떨어지더라도 그걸 보고 더럽다거나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의 땀이나 침, 콧물이 묻은 수건을 만지기는 꺼림칙해도 눈물을 닦아낸 손수건은 거부감이 덜하다. 우리는 왜 눈물만 특별대우를 하는 걸까.
이걸 살펴보기 전에 먼저 눈물의 기능적 의미를 짚어보자. 눈물은 크게 수성 성분, 지질 성분, 점액 성분의 3가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수성 성분은 눈물샘에서, 지질 성분은 마이봄샘에서, 점액 성분은 각막상피와 술잔세포에서 분비된다. 이 중 눈물의 대부분(98%)을 차지하는 수성 성분은 눈을 마르지 않게 하고 삼투압을 유지하며 다양한 항균 물질들을 포함하고 있어 눈을 보호한다. 눈은 외부로 열린 장기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해로운 성분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눈물샘은 쉴 새 없이 눈물을 만들어내어 이들을 물리적으로 씻어내기도 하지만, 수성층에 각종 항균 성분을 탑재해 이물질을 화학적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눈물에 포함된 리포칼린은 면역세포의 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눈으로 유입될 수 있는 원충의 활동을 억제하며, 라이소자임은 박테리아의 세포벽에 구멍을 뚫어 이들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해 눈을 보호한다.
또한 눈물은 눈을 늘 촉촉하게 적셔서 우리가 정상적인 시력을 가지도록 도와준다. 바짝 마른 눈으로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눈은 생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눈의 창문이라고 할 수 있는 각막 역시도 투명한 각막 세포들의 집합체다. 따라서 얼핏 보기엔 안경 렌즈처럼 매끄러워 보이는 각막도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마치 볼풀장의 볼풀처럼 각 세포가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으며, 그 위로 돌출된 수많은 융모까지 존재해 절대로 매끄럽지 않다. 이렇게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면 빛이 난반사할 가능성이 높다. 초점을 잘 맞추고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빛은 고르게 꺾여서 눈 안으로 들어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각막은 가능한 한 매끄럽고 굴곡이 적어야 한다.
그렇다고 세포들을 깎아 내거나 융모를 뽑을 수는 없기에 우리의 눈이 진화상에서 장착한 기능은 각막 세포 위를 액체로 덮어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나 눈물의 성분 중 하나인 점액층은 각막을 직접 덮어 각막을 매끄럽게 코팅하고, 눈물의 가장 바깥층에 위치한 지질층은 수분을 기름 막으로 덮어 눈물의 증발을 지연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처럼 눈물은 신체 중 가장 연약하며, 또한 아무리 노력이나 수련을 거듭해도 절대로 강화될 수 없는 안구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자다. 그렇기에 눈은 늘 젖어 있기 마련이다. 종종 지나치게 슬프거나 격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눈물조차 말라버린 눈’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문학적 수사에 머무르는 편이 좋다. 현실에서 눈물이 마르는 질병에 걸린 환자는 꽤나 고통스러운 나날이 기다린다. 면역 질환의 일종으로 체액을 만드는 분비선에 염증이 생겨 체액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쇠그렌증후군에 걸리면 눈물, 침, 피지 등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기에, 피부는 건조하고 간지럽고, 입안은 말라 텁텁하고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며, 눈물이 말라 눈이 뻑뻑하고 충혈이 되며 눈 안에서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듯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눈물의 생리적 기능만 보면 눈물이 다른 체액들과 다른 특별대우를 받을 만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눈물이 특별한 체액이 된 것에는 이들이 생리적인 이유가 아닌 정서적 이유로 배출된다는 특징 때문이다. 다른 체액들은 신체의 상태에 따라 반응이 조절된다. 내가 기분이 좋다고 땀이 덜 나거나, 슬프다고 콧물이 덜 흐르진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물은 유난히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많으며, 특히나 슬픔이 느껴질 때 울음과 함께 배출되는 경향이 강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서적 눈물 속에는 카테콜아민류의 스트레스 호르몬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들이 평소에 분비되는 생리적 눈물보다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1997년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영국 전역은 큰 슬픔에 빠져들었고, 많은 영국인들은 며칠 동안 그 소식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영국에서는 우울증으로 치료받는 사람이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고 해서 이를 ‘다이애나 효과’(Diana effect)라고 한다. 이는 그녀의 죽음에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행동 자체가 일종의 감정의 해방구 구실을 하여 정신적인 상처에 대한 치유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매우 유력하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여성들의 경우 감정적 충격을 받았을 경우 곧잘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데, 오히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더 잘 습득한다고 한다. 반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억압받는 남성의 경우, 슬픔과 공포와 분노가 느껴지는 경우에도 눈물을 흘리며 우는 대신, 뭔가를 치거나 술을 마시거나 도망치는 등의 즉각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악어의 눈물은 그저 자극에 대한 자율신경의 반사일 뿐이며 포유류의 눈물은 다양한 고통에 대한 감정적 반응의 결과이지만, 사람의 눈물은 이에 더해 슬픔과 분노, 기쁨과 환희, 절망과 쾌락의 절정에서 분비되는 정서적인 존재다.
사람이 이처럼 정서적인 눈물을 ‘잘’ 흘리도록 자연선택된 것은 그것이 사람에게 가장 발달한 정신적 능력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의 슬픔에 같이 울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에게 주어진 ‘눈물 흘릴 권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은희(과학커뮤니케이터)
Tears
눈물. 눈물샘에서 만들어지는 체액. 98%의 물과 염분과 단백질, 지방질 등으로 구성된다. 안구를 보호하고 시력을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슬픔이나 기쁨, 억울함 같은 정서가 극에 달했을 때 흘리는 눈물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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