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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30 10:19 수정 : 2017.11.30 13:13

현대의학계에선 눈물을 억압하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본다. 픽사베이

스트레스 극복, 면역력 강화…눈물의 효과
류머티즘·위궤양·우울증 치료 도움 돼

현대의학계에선 눈물을 억압하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본다. 픽사베이
눈시울이 붉어지기가 무섭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스카라가 번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물을 참아보려던 노력이 하찮게 보일 만큼 유튜브 비제이(BJ)는 들썩이는 어깨를 주체 못 할 때까지 울었다. 비제이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부모’를 주제로 한 편집영상이었다.

노트북으로 그 모습을 보던 홍지민(35)씨는 엉겁결에 따라 울었고,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홍씨는 평소 이성적이다 못해 냉정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어요.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보면서도 끝까지 참았거든요.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이라 괜히 더 울컥했나 봐요.”

홍씨와 마주 앉은 것은 지난 24일, 서울 반포동의 한 식당에서였다. 홍씨는 올해로 10년 차인 에스아이(SI: 시스템구축) 프로그래머다. 그는 회사 동료나 가족 앞에서는 울어본 기억이 없었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집에서 자라서인지, 공대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남초’ 회사에 다녀서인지 우는 건 “쪽팔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편이었다. “혼자였기에 망정이지 누구랑 같이 있었으면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라도 참았을 거예요.”

눈물을 참아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비단 홍씨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대체로 눈물에 관대하지 못하다. 어릴 때부터 “울면 지는 거야!”, “사내자식이 뭘 울어?” 같은 말을 숱하게 들으며 자라다 보니 눈물은 그야말로 나약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라. 아이를 달래는 부모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무엇이며, 연예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팬들이 외치는 구호는 또 무엇인지. 그건 바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울~지~마~”라는 말!

화학공학을 전공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의철(33)씨에게 울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괜한 걸 묻는다는 듯 박씨는 반문했다. “실험하고 강의하고 논문 쓰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디 울 시간이나 있나요? 울컥하는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꾹 참아요.” 삶이 이미 불안과 긴장과 경쟁 그 자체인데,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봤자 자기만 손해라는 것이다. “시간 낭비에 감정 낭비죠. 울 틈도 아깝다는 말이 딱 맞아요. 왜 캔디(애니메이션 주인공)도 그러잖아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한국방송> ‘태양의 후예’의 김지원(윤명주 역). 화면 갈무리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강동원(정윤수 역). 영화사 제공

정말로 그럴까. 박씨의 말처럼 우는 건 시간 낭비자 감정 낭비일까. 박씨나 ‘캔디’처럼 울고 싶어도 참는 것만이 능사일까. 울고 싶어도 도저히 눈물이 안 나면 어떡해야 하나. 그냥 그 상태 그대로도 괜찮은 걸까.

여기서 잠시 홍지민씨에게로 돌아가 보자. 눈물을 잘 참는 편이라는 홍씨가,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어이없게’ 울게 된 순간, 그가 느낀 것은 과연 놀라움과 당혹감뿐이었을까? 아니다. 홍씨는 “기분이 개운해졌고, 조금이나마 스트레스가 줄어든 느낌이었으며, 극심한 편두통도 그 순간에는 잊었다”고 말했다.

잘 울어야 스트레스에 강해지고 질병에 덜 걸린다고 주장한 의사가 있었다. 영국 정신과 의사 헨리 모즐리다. 그는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치유의 물”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슬플 때 울지 않으면 다른 장기가 대신 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실제로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류머티즘 환자들이 한바탕 울고 난 뒤에는 스트레스 호르몬과 류머티즘을 악화시키는 물질인 ‘인터류킨-6’의 수치가 떨어졌으며, 건강한 사람은 위궤양 환자보다 평소에 더 잘 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궤양은 스트레스와 직결되는 병이다. 동맥경화증 환자들은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이 눈물 없이 우는 사람보다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더 낮았다.

현대의학계에서도 눈물을 참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성균관대 의대 임세원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눈물을 참는다는 건 감정을 억압한다는 뜻인데, 억압된 감정이 쌓이다 보면 신체적·심리적 병리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수준에서 표현돼야 그 상황이 건강하게 종결된다”며 “다만 공격성과 분노는 억제해야 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김광일 외래교수도 “슬퍼도, 억울해도, 기뻐도 눈물이 나오는데, 눈물을 참으며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는 일은 오히려 그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울고 싶을 때 울고 나면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나, 눈물에 계속 집중하면서 울까 말까 하다 보면 감정을 통제하려는 시간이 길어지고, 감정 자체는 참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감정을 통제하려고 할 때 뇌에서는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 더 많이 분비된다.

안타깝게도 한국 남성들은 눈물을 참다못해 아예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유교와 가부장문화의 뿌리가 깊은 한국은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운다”와 같은 말로 남자의 눈물을 가로막는데, 눈물을 잃은 남성들은 자신도 인간으로서 쉽게 상처받고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강한 척 포장하면서 내면을 감추거나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도리어 목소리를 높이기 십상이다.

30대 서아무개씨가 그랬다. 서씨는 심리상담실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 말했다. “저는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눈물은 약해빠진 사람들이나 흘리는 거죠.” 굳게 다문 입술, 서늘한 표정, 꼿꼿한 자세, 짧고 단호한 답변. 일찍부터 ‘눈물 참는 법’을 터득한 서씨는 전형적인 ‘사회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면의 곪은 상처를 감추려면 그 정도 위장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서씨는 자신이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크다고 느꼈다. 상담실을 찾은 이유도 누군가 자신을 조금만 무시하는 말을 해도 불같이 화를 내는 증상이 심해져서였다. 서씨는 거듭된 상담을 진행하다가 가족과 관련된 상처를 털어놓았고, 심리치료사와 노년의 부모 앞에서 눈물을 쏟은 끝에 말했다. “우는 게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습니다.” 눈물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강선영 대표는 “상처를 받으면 가장 먼저 생기는 감정이 불안과 분노인데, 어릴 때는 주된 정서가 불안이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분노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며 “커진 분노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출되면 데이트폭력, 보복운전, 아동학대 같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의 분석에 따르면 “중년 남성 우울증이 많은 것도 많은 남성이 눈물을 참기 때문”이다. 그는 “남성 우울증은 부정적 감정이 오랫동안 억눌린 끝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여성 우울증보다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눈물이야말로 돈도 들지 않는 치료제일지 모른다. 눈물은 부정적인 정서와 곪은 응어리를 씻어내며, 흘려보내야 쌓이지 않는다. 눈물을 흘려서 문제 될 것은 없다. 흘리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 우울증 환자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보다 위험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가. 넘어져서 아픈데도 울까 말까 눈치 보고 있지는 않은가. 어릴 때는 걷다가 넘어졌다면 자란 뒤에는 정신적으로 넘어진다. 지금이라도 울자. 눈치 보지 말고 울자. 어차피 우리는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우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30대 서씨의 사례는 참고서적 <눈물의 힘>(아우름)에 실린 상담사례를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Tears

눈물. 눈물샘에서 만들어지는 체액. 98%의 물과 염분과 단백질, 지방질 등으로 구성된다. 안구를 보호하고 시력을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슬픔이나 기쁨, 억울함 같은 정서가 극에 달했을 때 흘리는 눈물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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