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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0 20:17 수정 : 2017.12.20 20:34

?그림 김보통

[ESC] 보통의 디저트

?그림 김보통
어머니는 나와 음식 취향이 대체로 겹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나는 게와 새우 중에 새우를 좋아한다. 상대적으로 먹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게를 좋아한다. 나는 번거로워 손도 대지 않는다. 닭의 부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야들야들한 날개인데, 어머니는 퍽퍽하기만 한 가슴살을 좋아한다. 생선 역시 가시가 적고 살이 많아 먹기 편한 삼치를 좋아하지만 어머니는 살보다 가시가 더 많은 것 같은 갈치를 좋아한다. 어쩜 이렇게 내 입에 맛있는 것들만 싫어하는지, 어릴 적엔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라나며 의심을 하기도 했다. 자식을 위해 일부러 맛있는 것들을 양보하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란 생각에서다. 대개의 경우 어머니는 무언가를 좋아한다 먼저 말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와 동생이 택하고 난 뒤 남는 것을 좋다고 했다. 감자탕에 들어간 고기를 우리가 다 건져 먹고 나면, 감자를 집으며 “감자탕은 감자가 제일 맛있어”라는 식이었다. 한번은 진심인지 떠보기 위해 “엄마. 그러다 나중에 할머니 되면 ‘우리 엄마는 원래 감자를 좋아하니까’라고 하면서 감자만 줄지 몰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하지만 진짜 감자가 좋아”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내리사랑인 것일까. 어머니는 그런 태도를 벌써 사십여년째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이 애틋해도 다 자라 곧 마흔이 되는 자식에게 굳이 좋아하는 것을 양보할 필요는 없을 텐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 취향마저 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젊어 시집살이를 하며 시어머니가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결국 고기를 못 먹게 되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한번은 어머니에게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을 했다. 어머니의 생신 날이었다.

평소 다른 가족의 생일 땐 과일이 잔뜩 올려진 생크림 케이크를 먹었다. 부드러운 크림이 올려진 촉촉한 케이크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신 땐 늘 퍽퍽하기만 한 파운드케이크를 먹었다. 어머니는 늘 “나는 생크림 케이크는 느끼해서, 차라리 파운드케이크가 좋아”라고 말했지만, 파운드케이크가 저렴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번은 생크림 케이크를 사 갔다. 가격이 두배는 더 비쌌다. 어머니는 “아니 왜 생크림 케이크를 사왔어?”라며 놀라셨다. “나는 파운드케이크가 좋은데…”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울컥 화가 났다.

“엄마! 거짓말하지 맙시다! 장식도 없고 맛도 없는 이 케이크 같지도 않은 케이크를 언제까지 생일 케이크로 하려는 겁니까! 이제는 생크림 케이크로 합시다!”

나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나도 많이 자라 돈을 벌고, 더 이상 어떤 케이크를 사느냐를 두고 망설이지 않을 수 있게 됐으니, 어머니가 생크림 케이크의 달콤함을 당당히 누리길 바랐다. 층층이 쌓여 올려진 과일을 양보하지 않았으면 했다. 꼭 케이크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조용히 상 위에 올려진 생크림 케이크를 한번 바라보더니, 이윽고 나를 향해 말했다.

“아니 너는 내 말을 뭣으로 듣는 거야. 나는 파운드케이크가 좋다니까.”

? 파운드케이크는 영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름처럼 설탕과 버터, 밀가루와 계란을 각각 1파운드씩 넣어 만든다. 단순한 영국 음식답게 특별한 조리 과정은 없어, 그저 모든 재료를 한데 섞어 틀에 담아 굽기만 하면 끝이다.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어본 적은 없으나, 어릴 적부터 매년 어머니의 생일날 먹어왔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파운드케이크를 좋아한다. 그렇게나 좋아하시면 한번 만들어봄 직한데, 그건 또 싫으신 것 같다.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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