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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마을미디어 '에코맘들의 수다'. 지역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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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라이프레시피 | 마을 공동체
생활문화센터, 지역민 ‘교류·소통의 장’ 각광
부천 ‘마을방송국’ 20~70대 ‘시민 DJ’ 맹활약
조치원에선 ‘공동부엌’으로 요리 나누며 소통
지역문화 거점 전국 91곳…내년 142곳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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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마을미디어 '에코맘들의 수다'. 지역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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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궁금해요.”(20대 진행자) “다 잘 먹어요. 못 먹는 건 세 가지예요. 안 줘서 못 먹고, 못 봐서 못 먹고, 없어서 못 먹고. 하하하.”(80대 출연자) <춘의마을 라디오>에서는 이런 식의 대화가 흔하다. 세대 갈등이 시대의 화두인 지금 진정한 2080세대 간 교류라 할 만하다.
경기 부천시 오정생활문화센터에 위치한 ‘마을 방송국’에서는 매주 부천 시민들의 새로운 역사가 쓰인다. 오정생활문화센터가 방송국 공간을 지원하고 부천시민미디어센터가 방송국을 운영한다. 24살에서 72살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이 시민 디제이로 활동 중이다. 평균 연령 80대 여성 어르신들의 수다방 <춘의마을 라디오>, 지역 청년들의 토크쇼 프로그램인 ‘주간F4’, 주부들이 환경과 육아 콘텐츠를 다루는 ‘에코맘들의 수다’ 등이 특히 인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원을 통해 조성되고 있는 생활문화센터가 ‘현재의 삶을 즐기자’는 욜로(YOLO) 시대에 각광받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91개가 운영되고 있는 생활문화센터는 지역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인 문화예술 교류 플랫폼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내년엔 142개로 늘어난다. 지역문화의 핵심 거점이 풀뿌리처럼 뻗어 나가게 되는 셈이다.
“우리 엄마는 디제이”…부천 <춘의마을 라디오>
“집에만 있던 엄마가 갑자기 화장을 하고 어디를 나가고 하니 아이들이 좋대요. 학교 가서 우리 엄마 디제이라고 자랑도 하고.”
단순히 ‘누구’ 엄마가 아니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디제이다. ‘에코맘들의 수다’를 진행하는 시민 디제이 김지선(37)씨는 마을 방송국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얘기를 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 ‘우리’의 이야기를 나눈다. 나아가 세상 이야기를 하고 서로 이해한다. 마을 방송국이 준 선물이다.
“평소 미디어엔 관심이 많았지만 누구 앞에서 말하는 게 처음엔 자신이 없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시민미디어센터에서 ‘마을 방송국’을 만들고 무료로 미디어 교육을 해준다는 얘길 들었죠. 다른 어머니들과 나눈 육아, 환경, 안정성, 경력단절 등의 얘기를 마을 방송국에서 허심탄회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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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부천 오정생활문화센터 마을방송국 개관식 풍경. 지역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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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국은 자체 시스템을 갖춘, 국내에선 보기 드문 ‘마을 방송국’이다. 워크숍부터 팀의 특색에 따른 맞춤형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 시범방송과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시민 디제이들이 윤리와 책임의식과 같은 방송인의 기본소양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단계별 시스템을 제공한다. 마을 방송국을 기획한 부천시민미디어센터 한범승(45) 센터장은 “단계별 시스템 제공과 콘텐츠 전수조사 등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마을 방송국의 정의를 개념화하고 더 나은 방송국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에 지친 중년 여성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80대 어르신들도 ‘새로운 나 발견하기’에 여념이 없다. 부천에 위치한 춘의임대아파트엔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이 상당수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사치’였던 어르신들에게 마을 방송국의 <춘의마을 라디오>는 외로움을 달래는 하나의 소통 창구다. <춘의마을 라디오>의 손은정(36) 팀장은 “다행히도 어르신들이 흥이 많아, 요즘엔 자신들의 삶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한다”며 “몸이 불편하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듯해 소원을 다 이룬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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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오정동의 어르신들은 마을미디어 활동에 참가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지역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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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방송국은 감시와 견제를 하는 언론의 구실도 해낸다. 4명의 청년으로 구성된 ‘주간F4’는 지역 현안과 국가 정책 등에 대한 주제를 특히 많이 다룬다. ‘주간F4’의 시민 디제이 김인수(35)씨는 “지역 현안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 그와 관련한 또 다른 질문을 받는다”며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직접 시의원에게 전화해 해당 현안에 대한 답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민 디제이가 직접 팩트를 체크하고 취재를 하는 등 지역사회 신문고 구실을 하는 셈이다.
마을 방송국은 ‘노랑나비 기자단’을 만들어 임대아파트 단지 공터의 쓰레기 투기 문제를 공론화하기도 했다. 그 결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쓰레기를 처리했다. 나아가 공터에 화단을 설치했다. 또다시 발생할 쓰레기 투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마을은 100억원 규모의 도시재생 사업에 선정됐다. 마을 방송국이 여론을 형성해 지역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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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마을 미디어 ‘주간F4’. 지역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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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센터장은 “이 문제를 공론화한 ‘노랑나비 기자단’이 3년간의 인쇄매체 활동에서 나아가 올해 미디어 교육을 받고 하반기 라디오 시범 방송을 진행했다”며 “내년엔 본격적으로 실전 방송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을 방송국을 통해 형성된 여론에 힘입어 주민들이 스스로 이룩한 쾌거다.
일상을 즐겁게 공유하기 위한 부천 시민들의 노력은 온라인상의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다. 마을 방송국 프로그램들이 팟캐스트에서 지난 1년간 1만2723회의 누적 조회 수를 기록했다. ‘산이 크면 울림도 웅숭깊다’고 했던가. 김인수씨가 부천 시민들의 소통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당찬 포부를 밝혔다.
“노동권과 성소수자, 페미니즘과 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 등의 주제로 또 다른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지방선거 후보들과 ‘대본 없는 토론회’ 자리도 마련하고 싶어요.”
‘밥상 문화’의 재발견...조치원 ‘공동체 부엌’
세종시 조치원읍에서는 ‘밥상 문화’ 교류가 한창이다. ‘공동체 부엌’은 1인 가구 500만 시대, 혼밥족의 증가로 ‘밥상머리 정(情)’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막아보고자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이 마련한 대책이다. 공동 활용 공간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의 교류를 활발히 하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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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공동체 부엌. 지역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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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부엌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공간이다. 조치원은 인구가 많은 지역인 반면, 주민공동체의 활동 공간은 늘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치원 주민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이용이 불편했던 여성회관을 생활문화센터로 재단장하기로 한 것. 입주 단체 회원과 주민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공간 계획부터 디자인, 공사 감독까지 꼼꼼히 실행했다. 그 결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생활문화센터가 탄생했다. 공동체 부엌은 환기가 안 되고 기자재가 부족했던 기존 여성회관의 3층 조리 공간을 새로 꾸민 결과다. 수납, 시식, 조리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생활문화센터 안에 공동체 부엌이 마련되면서 사찰요리, 홈 베이킹 등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되기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 열리는 ‘화요미식회’는 동아리 회원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건강에 좋은 흑마늘 등을 만들고 맛보는 기회다. 주민들은 각자의 조리법을 공유하거나 요리, 음식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공동체 요리 문화를 즐긴다.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요리하고 서로 만든 음식을 맛보는 것. 씁쓸한 혼밥족 시대에, 공동체 부엌이 ‘밥상 문화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천/김서이(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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