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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7 20:06 수정 : 2017.12.28 00:19

개인의 삶과 개성을 중시하는 X세대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K-POP, 영화 등 대중문화다. 사진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 <한겨레> 자료.

[ESC] 커버스토리

1970년대 생 90년대 학번 ‘X세대’
사회문제보다 개인 삶 중시
강한 개성으로 문화예술 분야 실력 발휘
이제 청년-장년 세대 잇는 사회적 역할자로

개인의 삶과 개성을 중시하는 X세대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K-POP, 영화 등 대중문화다. 사진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 <한겨레> 자료.
26개의 알파벳은 저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를테면 에이(A)는 최고, 큐(Q)는 합격, 에스(S)는 특별함을 뜻하지만 시(C)는 열등함, 에프(F)는 실패, 엔(N)은 부정의 뜻을 내포한다. 그중에서 엑스(X)는 미지의 영역에 놓여 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보통 엑스의 표지를 붙인다. 엑스세대 역시 그랬다. 검색을 해보면 1991년에 발표된 캐나다 작가의 소설 제목에서 유래한 표현이라고는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이 정도 되는 것 같다.

‘나이로는 1970년대생-90년대 학번. 사회문제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고, 기존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 세대.’

돌아보면 나와 친구들이 바로 엑스세대의 전형이었다. 94학번이던 우리는 당시 ‘삐삐’로 불리던 개인 이동통신을 차고 대학에 들어 온 최초의 입학생이었다. 패션도 그랬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과감함이 엑스세대 패션의 정신이었다. 요즘 미니스커트는 그때 미니스커트에 비하면 플레어스커트다. 여자들은 탱크톱을 입고 거리로 나오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박진영의 투명비닐 바지가 상징하듯, 남자들 역시 튀는 옷을 입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평범한 남자 대학생들이 귀고리를 하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 역시 우리 세대였다. 나 역시 대학 시절 한쪽 앞머리만 턱까지 늘어뜨린 괴이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던 사실이 사진으로 낱낱이 남아 있다.

우리는 바로 전 세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기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이른바 386세대로 일컬어졌던 윗세대는 사회 참여를 청춘의 본령으로 알았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엑스세대 중 많은 학생들은 바로 위 학번까지만 해도 통과의례처럼 나가던 데모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대학 문화 중 하나였던 학회 세미나 역시 엑스세대 학번은 사회과학 세미나보다 예술-문화 관련 세미나로 몰렸다. 서울대학교 역사상 최초로 비운동권이 학생회장이 되어 <엠비시>(MBC) 뉴스데스크에 직접 출연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던 허민씨는 엑스세대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의 삶을 잠깐 들여다보자.

그는 1976년생, 95학번으로 서울대에 입학해 비운동권 최초로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필자는 그와 같이 학교를 다녔는데 그 사건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당선 직후에 <엠비시> 뉴스데스크에도 나왔으니. 사회의식의 부재를 개탄하며, 그를 포함한 후배들을 바라보던 선배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행보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이전 세대에게는 애들이 오락실에서 하는 놀이 정도로 치부되었던 게임 산업에 일찌감치 몸을 던졌다. 열악한 환경에서 게임 개발에 매진하던 그는 21세기가 열림과 동시에 네오플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줄여서 던파)를 출시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008년 7월 당시 돈으로 거금 3800억원을 받고 회사를 매각한 그의 다음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야구를 무척 좋아해 서울대 야구부 투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너클볼의 전설 필 니크로에게 직접 너클볼을 배우고 직접 마운드에 선수로 서는 비현실적인 꿈을 이루기도 했다. 필자의 소설 중에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가 이 작품의 서평을 기꺼이 써줬던 일도 생각난다. 야구를 향한 허민 대표의 애정은 계속 이어져 우리나라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인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 <곡성>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엑스세대의 활약이 비즈니스 필드보다 더 두드러지는 분야는 문화계라고 할 수 있다. 개성과 감성이 중요시되는 음악과 영상 부문에서 엑스세대 아티스트들은 이전 세대의 유산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거침없이 선보였다. 영화계에서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과 <곡성>의 나홍진 감독 두 명을 주목해야 한다. 두 감독의 작품세계는 대체 맥락을 찾을 수가 없다. 누구의 후예도 아닌, 기존의 장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대중들 역시 차기작이 가장 기다려지는 감독으로 둘을 꼽는 것을 보면 엑스세대 감독들의 전성시대가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가요계,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케이팝(K-POP) 역시 엑스세대 제작자들이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박진영과 방시혁 이야기를 해볼까.

박진영. <한겨레> 자료
이미 대학 시절부터 인기 가수였으며 못 말리는 춤꾼이자 뛰어난 작곡가였던 박진영은 스스로 연예활동을 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연예기획사를 설립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다. 그의 눈에 들어온 파트너가 같은 1972년생이자 1995년에 유재하 가요제로 가요계에 발을 내디딘 신예 방시혁이었다. 둘의 시너지는 엄청났다. 방시혁은 지오디(GOD)와 박지윤, 비 등등 1990년대 후반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 핵심 아티스트들의 히트곡을 연달아 만들어냈고 박진영이 미국에 진출할 때도 함께였다. 그러나 하늘 아래 태양은 둘일 수 없다고 했던가. 2005년 방시혁은 제이와이피의 품을 떠난다. 어느 인터뷰에서 박진영이 밝힌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함께 미국 생활을 하던 당시 둘은 한 아파트에 살면서 가사를 분담했는데 방시혁이 빨래를 맡았다고 한다. 그런데 박진영이 계속 양말을 안 뒤집고 말린 채로 빨래 통에 담아두자 그 문제로 크게 싸웠고, 다음날 방시혁이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고. 흠. 이건 엑스세대의 전반적인 특징은 아닌 걸로 하자.

방시혁. <한겨레> 자료
박진영과 결별한 뒤 방시혁의 행보는 한 줄로 요약된다.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

방탄소년단 이전에도 케이팝은 있었고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처럼 팝시장의 메인스트림을 강타한 그룹은 없었다. 빌보드 차트는 물론이고 굵직한 토크쇼와 에스엔에스(SNS)에서도 방탄소년단은 어떤 아이돌 그룹도 넘지 못했던 벽을 넘어섰다.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차지했던 싸이의 성공이 독특한 안무와 뮤직비디오에 힘입었던 것임에 반해 방탄소년단은 훨씬 더 전방위적인 차원에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미국 대륙에서도 반짝 성공이 아닌 지속적 인기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대승을 거둔 방탄소년단의 미국상륙작전 총지휘관이 방시혁이며, 그보다 먼저 박진영이라는 엑스세대의 상징적 인물이 비슷한 작전으로 고군분투했음을 기억하자.

글의 서두에 내 나름으로 정의한 엑스세대의 특질을 다시 환기해본다. 사회문제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고, 기존의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 세대. 언뜻 보면 지독한 개인주의에 함몰된 세대라고, 그런 세태를 가속화시킨 주범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우리 엑스세대에게 이제 청년세대와 장년세대를 이어주어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렇지만 문화예술계에서도 그렇다. 나부터도 이미 방송국에서 차장님으로 불리니. 꼰대 부장 국장님들과 파릇파릇한 후배 피디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나 올 한해를 돌아보면 못할 일도 아니겠다 싶다. 며칠 남지 않은 2017년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주인공이었던 한 해였다.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들은 386세대이기도 했고, 그들의 아들딸이기도 했다. 그 어떤 세대보다 유별났던 엑스세대도 40대 아재와 아지매가 되어 그 안에 있었다.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특히 명백히 우리보다 더 엄혹한 출발선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자. 그래야 제2의 나홍진, 연상호, 박진영, 방시혁이 나올 테고 그들이 또 새로운 소년 소녀들을 탄생시킬 테니. 그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재익(에스비에스 피디)

X

엑스. 알파벳 24번째 글자. 알 수 없는, 잘 모르는, 미지의 무엇을 뜻한다. 수학에서는 방정식의 해를 구하려는 문자, 미지수로 ‘X’를 사용한다. 미제 사건을 엑스파일(X-file)로 표기할 때도 여기에서 파생한 의미라 하겠다. 로마자 ‘X’는 숫자 ‘10’을 상징하며 거절(NO)의 의미로 ‘X’를 쓰기도 한다. 두 수의 곱셈 기호 ‘X’로, 컬래버레이션(협업)의 의미도 있다. 사회·이념 문제보다 개인의 삶과 멋, 개성을 중시하는 과거 신세대, 즉 1970년대생·90년대 학번을 ‘X세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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