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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7 20:23 수정 : 2017.12.28 11:49

한국방송 <시사기획 창> ‘실종자 이윤희’ 편 화면 갈무리.

[ESC] 커버스토리

전국 미제사건 약 4만1천여건
취재 중 만난 ‘X-파일’들 가슴 속에 빼곡
사건 해결까지 관심의 끈 놓지 말아야

한국방송 <시사기획 창> ‘실종자 이윤희’ 편 화면 갈무리.
‘엑스’(X)가 미지의, 아무도 모르는 뜻으로 쓰일 때, 파일(File)과 묶여 ‘엑스파일’(X-File)로 쓰인다. 밝혀지지 않은 일이나 문건을 말한다. 범죄 사건에선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제 사건을 의미한다. 전국의 미제 사건은 약 4만1천여건. 장기 미제 살인 사건은 260여건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블랙박스 등 과학기술과 지문감식 등 수사기법의 발달로 강력범죄 검거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도 꽤 많다. 피해자와 그 가족을 생각하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한국방송>(KBS)의 <미제사건 전담반 끝까지 간다> 등을 만들었던 조수진 작가가 이와 관련한 글을 보내왔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방송작가로 산다는 건 남의 속사정을 파헤치며 살아야 한단 뜻이기도 하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건 미술 다큐멘터리를 만들건 항상 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봐야 하고, 의학 다큐멘터리를 만들 땐 수술 중인 ‘남의 속’까지 불가피하게 봐야 하는 일도 생긴다. 미제사건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더욱 그렇다. 자주 했던 농담이 있다. “취재를 하라고 했더니 왜 수사를 하고 있어!” 방송작가는 경찰도 검찰도 아니다. 하지만 취재하다 정신 차려 보면, 마음이 절로 범인을 쫓아 전력질주하는 걸 발견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방송이 나간 뒤에도 좀처럼 잊을 수 없다. 마음속 여러 개의 방마다 ‘엑스파일’(미제 사건)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아래는 그 ‘엑스파일’ 중 몇이다.

서천 카센터 방화 살해 사건

2004년 5월2일, 가는 비가 내리던 일요일 새벽. 충남 서천의 카센터에서 불이 났다. 다섯채의 점포가 들어섰던 조립식 임시건물은 순식간에 전소됐다. 불이 시작된 오른쪽 끝 카센터에선 세 사람의 시신이 발견됐다. 한명의 성인 여성과 두명의 어린이. 카센터 여사장과 쌍둥이 남매였다. 남편인 카센터 사장은 밤낚시를 떠나 화를 면했다.

그런데 이웃한 농기계 점포 사장이 난데없는 주장을 했다. 성인 여성의 시신이 자신의 아내일지도 모른다는 것. 불이 나기 직전 아내가 ‘낚시 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카센터 여사장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아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유전자 감식 결과 그의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카센터 여사장은 어디에 있을까. 화재 발생일 오후 1시40분, 카센터에서 10여㎞ 떨어진 저수지 주변에서 피 묻은 옷이 발견됐다. 카센터 여사장의 것이었다. 게다가 불에 탄 농기계 점포 아내의 시신을 부검하자 화재 발생 전 이미 살해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 화재인 줄 알았던 사건은 순식간에 강력사건으로 전환됐다.

한국방송 <미제사건 전담반 끝까지 간다> 화면 갈무리.
종적을 알 수 없던 카센터 여사장은 그로부터 8일 뒤, 옷이 발견된 장소 근처의 수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이상한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우편배달부. 서천 읍내 한 건물의 우편 반송함에서 우표 없는 두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것. 수신인은 서천경찰서 형사과장과 지역신문 사회부 기자였다. 편지의 내용은 자신과 삼각관계였던 카센터 아내와 농기계 점포 아내가 다투다 일어난 사건이란 것. 농기계 점포 아내가 카센터 여사장을 살해한 뒤 카센터에 불을 질렀다고 밝힌 편지엔 몇 시간 전 발견된 카센터 여사장 시신의 위치도 정확히 적혀 있었다. 조용했던 마을은 소문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카센터 사장과 농기계 점포 사장, 두 남편은 코웃음 쳤다. 자신의 아내는 불륜이나 치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는 것. 지인들을 통해 확인해도 매번 같은 답이 돌아왔다.

취재를 위해 만난 충남지방경찰청 미제팀 김기현 팀장은 벽장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가요?” 물으니 “만지지 마세요” 하며 장갑을 꼈다. 상자 안에선 카센터 여사장이 살해된 날 입고 있었던 운동복 한 벌이 나왔다. 흙투성이에 찢어지고 구멍 난 운동복에서 필사적인 저항의 흔적이 읽혔다. 더 끔찍한 것은 운동복 옷깃에 난 작은 구멍이었다. 처음엔 단춧구멍인가 했지만, 그것은 칼자국이었다. 충남청 과학수사대 최규환 프로파일러와 함께 광학현미경으로 살펴봤다. 폭이 아주 좁아 쉽게 구하기 힘든 종류의 칼이 단번에 옷깃을 뚫었다고 했다.

한국방송 <미제사건 전담반 끝까지 간다> 화면 갈무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를 찾았다. 카센터 여사장의 시신엔 단 하나의 상처뿐이었다. 옷깃을 뚫은 칼이 낸 목의 상처. 칼은 경동맥과 기도와 식도를 모두 관통한 상태였다. 이런 치명상을 입으면 5분 안에 사망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특이 소견이 있었다. 폐와 간에서 플랑크톤이 발견된 것. 보통 익사자에게서 발견되는 소견이다. 범인은 예리한 칼로 단번에 목숨을 빼앗고 물속에까지 밀어 넣는 잔혹성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일어나는 살인 사건은 500여건에 이르지만, 예리한 흉기로 목을 찌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범인은 ‘범죄 학습’이 가능한 생활, 즉 수형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가 보낸 편지도 그런 심증을 굳혀줬다. 수신인 중 ‘형사과장’에 주목했다. 형사과장은 대도시 경찰서나 ‘1급지’로 불리는 서울·경기 지역 경찰서에만 있다. 당시 서천경찰서는 ‘3급지’ 경찰서로 형사과장이 없고 수사과장만 있었다. 따라서 범인은 대도시에서 검거돼 수사받은 경험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불에 완전히 타버려 형체를 알 수 없는 카센터. 서천경찰서 제공.
사건 발생 당시 주변에 이런 조건을 가진 이가 있었는지 경찰에게 물었다. 있었다고 했다. 그는 뜻밖에 다른 사건으로 수감 중이었다. 주점 사장을 유인한 뒤 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 현재 용의자도 피의자도 아니니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범행 수법이 서천 사건과 비슷하단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먼저 잡혀 복역 중이던 공범의 자백으로 뒤늦게 검거됐다고 했다. 그런데 공범이 검사에게 쓴 제보 편지를 읽다 멈칫했다. 그가 편지를 쓴 날은 5월2일. 바로 농기계 점포 아내와 카센터 여사장과 쌍둥이 남매의 기일이었다.

아내와 아들딸을 모두 잃은 카센터 사장을 만났다. 그는 타지를 떠돌며 살고 있었다. 그가 사는 집은 오래된 구멍가게 터. 그런데 한때 물건들이 가득 진열됐던 자리에 수십개의 화분이 즐비했다. 화분들은 모두 허름하고 시들시들했다. 사람들이 내다버린 화분이 맘 아파 주워오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하나둘 되살리기 시작한 것들이 이제 온 집안을 가득 메웠다는 것. 화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입을 뗐다. “그동안 마누라가 꿈에 나온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얼마 전 마누라 생일에 꿈에 왔더라고요.” 무심코 아내의 생일이 언제였느냐 물었다가 그만 얼어붙었다. 그날은 이 사건의 취재를 결정한 날이었다.

한국방송 <시사기획 창> ‘실종자 이윤희’ 편 화면 갈무리.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 사건

한 해 실종신고 중 98%는 자진해서 귀가한다고 한다. 나머지 2%의 여성들이 범죄 희생자나 장기 실종자로 남는다. 이윤희씨는 그중 한 사람이다. 서울의 한 여대에서 통계학과 미술을 전공한 윤희씨는 전북대 수의대에 편입해 졸업을 6개월 남겨두고 있었다.

2006년 6월5일 저녁 전북대 앞 식당에서 열린 수의학과 종강 모임엔 교수와 학생 40여명이 참석했다. 윤희씨는 6일 새벽 2시30분께 1.5㎞ 남짓 떨어진 자신의 원룸으로 귀가했다. 그러나 6일 오전부터 친구들은 윤희씨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가방을 날치기 당해 휴대전화가 없던 윤희씨가 과 조교에게서 남는 휴대전화를 받기로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6월8일 오후, 걱정 끝에 윤희씨의 원룸으로 찾아간 친구들은 심상찮은 일이 생긴 것을 직감했다. 인기척 없는 원룸에서 티브이(TV) 소리와 반려견 두마리가 짖어대는 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119 구조대원의 협조로 들어간 원룸은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강도 사건은 아닌 걸로 보였다. 며칠 전 과외비로 받은 돈 봉투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 또 윤희씨는 외출할 때면 발코니에 반려견들을 묶어두곤 했는데, 강아지들은 방 안에 있었다. 외출할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윤희씨는 종강파티 때 입었던 옷 그대로, 아무런 소지품도 없이 어디로 간 걸까. 급히 달려온 부모님과 언니는 윤희씨의 컴퓨터에서 ‘112’와 ‘성추행’이라는 검색어를 발견했다. 컴퓨터는 2006년 6월6일 새벽 4시21분 꺼졌다. 윤희씨는 그 시각 이후에 실종된 걸로 추정되지만 당시 원룸 주변에는 시시티브이가 전혀 없었고 새벽이라 목격자도 없었다.

경찰은 집중 수색과 동시에 윤희씨 주변 47명을 조사했고 그중 22명은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했지만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윤희씨의 과 친구들과 가족들이 의심했던 이는 있었다. 윤희씨를 짝사랑하며 따라다니던 과 친구 K씨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럿 있었다. 윤희씨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고 직감한 과 친구들이 원룸 번호키를 이리저리 눌러볼 동안 정작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K씨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점. 평소 그림자처럼 윤희씨를 따라다니며 그녀가 듣는 수업은 빠지지 않던 K씨가 윤희씨가 실종된 6월7일과 8일 이틀 동안 결강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윤희씨의 언니도 K씨의 집을 방문했다가 이상한 수첩을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수첩에는 윤희씨의 옷차림에서 구두에 붙어 있던 리본에 이르기까지 차림새와 일거수일투족이 일기 형식으로 적혀 있더라는 것. 여러 증언을 토대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에게 프로파일링을 의뢰했다. 그동안 K씨가 보였던 성격과 행동으로 보아 윤희씨 실종 직후의 담담한 태도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K씨에게선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방송 <시사기획 창> ‘실종자 이윤희’ 편 화면 갈무리.
윤희씨 부친은 실종 4년 뒤까지 원룸을 비우지 않았다. 사건 현장일지도 모르는 곳을 보존하고 싶었고, 윤희씨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망 또한 버릴 수 없었다고.

전북 전주시를 찾아 윤희씨가 살던 원룸 주변을 둘러봤다. 골목에서 윤희씨의 창문이 훤히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스토킹이나 감시하기 어렵지 않아 보였다. 출입도 자유로웠다. 계단을 올라가 윤희씨가 살던 문 앞에 섰다. 안에선 아이를 어르는 젊은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고 아이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발길을 돌렸다. 한 사람이 실종된 공간에 새로운 일상의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그날, 2006년 6월6일 새벽 윤희씨는 어떤 모습으로 이 원룸에서 사라졌을까. 2017년 현재 윤희씨 사건은 전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계 장기 실종 부서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에 별 진척은 없다.

유명 여대 졸업생에 수의대 편입생.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조건 뒤에 숨은 윤희씨의 삶은 고단했다. 대학 입학 무렵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에 중고생 과외를 네댓개씩 해야 겨우 등록금과 용돈을 벌 수 있었다. 윤희씨 부친이 버리지 않은 윤희씨 물건 중에 유독 낡은 구두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3만~4만원이면 살 수 있지만, 윤희씨는 신발 뒷굽이 닳고 바닥이 해질 때까지 신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간혹 윤희씨 꿈을 꾼다. 꿈속에서 윤희씨는 실종 전단 속 사진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돌아오기도 하고, 때론 입에 올리기 싫을 만큼 처참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윤희씨가 실종된 지 10년도 더 지났다. 서천 카센터 사건의 범인은 아직도 검거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방송작가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그래도 잊지 않고 싶다.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생각한다. 가슴속에 메울 수 없는 빈자리를 남기고 또 한 해를 떠나보내는 그들을.

조수진(방송작가)

X

엑스. 알파벳 24번째 글자. 알 수 없는, 잘 모르는, 미지의 무엇을 뜻한다. 수학에서는 방정식의 해를 구하려는 문자, 미지수로 ‘X’를 사용한다. 미제 사건을 엑스파일(X-file)로 표기할 때도 여기에서 파생한 의미라 하겠다. 로마자 ‘X’는 숫자 ‘10’을 상징하며 거절(NO)의 의미로 ‘X’를 쓰기도 한다. 두 수의 곱셈 기호 ‘X’로, 컬래버레이션(협업)의 의미도 있다. 사회·이념 문제보다 개인의 삶과 멋, 개성을 중시하는 과거 신세대, 즉 1970년대생·90년대 학번을 ‘X세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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