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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작가가 ’낀 세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사진 윤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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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우리집 꼰대’ 출연한 두 자녀 아버지 만화가 김수용
“한국 사회가 꼰대 부모 만드는 데 크게 기여”
보수적인 부모 세대·꼰대 경멸 자식 세대 사이 낀 세대가 우리
확고한 취미 가질 것···꼰대 부모 탈출의 한 방법
“잘하는 거 응원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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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작가가 ’낀 세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사진 윤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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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힙합 문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김수용(45)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김 작가는 1997년, 한국 최초로 ‘힙합’을 주제로 한 만화를 연재한 작가다. 그 당시 낯설기만 하던 스트리트 문화, 비보이, 힙합 음악을 접목한 작품으로 단숨에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았다. 김 작가의 작품 ‘힙합’은 힙합의 성장 배경, 춤추는 방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비보이들 사이에서 ‘힙합 문화의 바이블’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이 작품 이후 비보잉 기술과 용어가 통일되는가 하면 한국의 비보이들이 독일과 영국 등지의 비보잉 대회를 석권하는 쾌거까지 이루었다.
이런 화려한 이력과 만화가라는 직업 탓에 ‘꼰대’와는 거리가 멀 것같이 보이는 김 작가는 2016년 3월, 교육방송(EBS) 다큐프라임 <우리집 꼰대>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프로그램 속에서 김 작가는 유명 만화가가 아닌, 두 자녀를 기르는 영락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버지였다. 꼰대가 되느니 ‘힙합 꼰대’가 되겠다고 말하는 그를 지난 12월29일, 서울 수유동 그의 작업실 ‘스튜디오 지하’에서 만났다.
―‘힙합 꼰대’라는 별칭이 특이하다.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해서 만든 말인가.
“알다시피 ‘힙합 정신’은 나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키워드다. 힙합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꼰대라는 생각을 했다. 늙더라도 꼰대가 되지 말자는 경고의 의미로 ‘힙합 꼰대’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우리집 꼰대> 출연 이후 자녀와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었나.
“춤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딸과는 원래 사이가 좋았다. 아들은 사춘기를 막 거치고 난 터라 약간의 서먹함이 있었다. 프로그램 이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되었는지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곧 아들이 군대에 가는 터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 참견하지 않으려는 ‘돈 터치’(Don’t touch) 정책을 펴고 있는 상태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항상 그렇게 ‘돈 터치’ 방식을 고수하는가.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춤추는 댄서로 살았던 과거가 있다 보니 스스로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더라. 자식과의 소통에서 막혀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많이 놀랐다. 요즘이야말로 아버지로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춤을 추는 딸에게 “너 이제 공부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일 텐데.
“공부는 전혀 신경 안 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할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 잘하는 것을 밀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딸의 친구들은 ‘우리 아빠는 꼰대인데 너희 아빠는 정말 대단하다, 부럽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럴 때 무척 기분이 좋다.”
―1990년대에 ‘힙합’을 보고 자란 세대가 요즘의 힙합계를 이끌고 있다고 들었다.
“딸의 춤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 내 만화를 보고 춤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아빠가 이 정도였나’ 하면서 딸이 무척 놀라더라. 딸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으쓱해진다. 어떻게 보면 만화로 젊은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를 흔히 꼰대라고 한다. 부모는 자녀를 아끼는 마음에 ‘이래라저래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자녀들과 멀어지고 벽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꼰대 부모’라는 소리도 듣는다. 자녀들을 대할 때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하나?
“자식에게 무슨 소리를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가 있다. 내가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간섭을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자유롭게 키웠다고 생각하면서도 돌이켜 보면 스스로 반성할 때가 많다.”
―취미가 디제잉, 마징가 제트 피규어 모으기라고 들었다. 김 작가의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취미이자 취향이지 않나. 그런 취미가 ‘꼰대 부모’ 탈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호와 취향이 확실한 편이다. 이런 취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현대사회의 아버지들이 모두 꼰대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의 사회가 꼰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가 꼰대 문화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 지금의 아버지들도 모두 꿈과 포부, 야망 같은 것들이 있었을 텐데 어느 순간 사회에서 ‘돈 벌어 오는 아빠’ 프레임을 씌웠다. 스트레스를 회식이나 술 같은 소모적인 방법으로밖에 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꼰대가 된다. 나에게는 확고한 취미 생활이 있다. ‘왜 그런 데 돈을 써, 돈 아깝다’ 생각을 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가 만든 꼰대 아버지도 즐길 수 있는 취향이나 취미가 있으면 꼰대가 되지 않을 거다.”
―나이가 먹으면 꼰대가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꼰대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편한 선택이라고도 여겨진다. 어찌 됐든 주류가 아닌가.
“주류가 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일 수는 있다. 하지만 꼰대가 된다는 것은 문화에서 도태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몇년 전까지 대학 강단에 섰다. 다른 이유는 없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 도태되니까. 제자들에게 ‘스킬을 가르쳐줄 테니 젊은 감각을 알려달라’고 얘기했다. 제자들에게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도태되지 않으려면 그렇다. 나는 소위 말하는 ‘낀 세대’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와 꼰대를 경멸하는 자식 세대에 끼어 있다. 서글프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거니까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낀 세대인 우리가 위, 아래 세대의 소통 창구가 되면 좋겠다. 세대 간 소통이야말로 우리 낀 세대가 할 수 있는 역할 같다. 직업적으로도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 있다.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꼰대가 된 아버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나는 직업적 특성 덕분에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운이 좋았던 편이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그런 기회가 없었다. 기껏해야 부하 직원일 텐데, 그들에게 편하게 대한답시고 이것저것 지시하고 참견하는 순간 꼰대가 된다. 젊은 세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이돌 가수, 드라마 등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넓다. 말을 해야 안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Youthful life
사회적 나이보다 젊게 사는 삶의 방식.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고 애쓰며, 다양한 취미생활로 자신의 인생을 즐긴다. 피티(PT) 같은 근육 운동을 비롯한 건강관리는 필수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나이를 ‘0.7 곱하기 계산법’으로 산출하기도 한다. 현재 나이에 0.7을 곱하면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나이가 된다.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액티브 시니어’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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