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04 10:08
수정 : 2018.01.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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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이 유독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세대가 주변에서 겪지 못하는 ‘진짜 어른’을 대리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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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꼰대질, 서열주의·권위주의·신분지상주의 등의 총체
‘젊꼰’ 등 나이 상관없어
세대 간 소통 막는 장애물···새해 당신도 의심해봐야
서로 존중하는 대화 필수·사적인 질문은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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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이 유독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세대가 주변에서 겪지 못하는 ‘진짜 어른’을 대리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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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질문의 형태를 가장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지식을 뽐내는 화법일 뿐이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지지율이 높았던 사람이 누구일 것 같아?’ ‘더블유티오(WTO) 올 상반기 세계 상품 수출액이 몇달러일 것 같아?’ 부장으로부터 이런 질문이 날아올 때마다 윤선경(여·34)씨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면 끝까지 종용하고, 뭐든 대답하면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 듯’ 정답을 내놓는 식이었어요.”
면접시험장도 아닌 곳에서 끝없는 ‘소크라테스식 문답’에 시달리고 있자니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송년회를 겸한 회식 자리였고, 최악의 술자리였다. 업무와 관련된 내용도 아니었다. “정답을 알 거라고 생각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묻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자기 할 말만 하면 될 텐데, 상대방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아요.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은 전형적인 ‘꼰대 근성’ 아닐까요?”
솔직히 말해보자. 새해를 맞아 또 한살 먹은 당신, 조금이라도 젊어지고 싶지 않은가? ‘끼리끼리’ 앉아 푸념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젊은’ 이들과 어울리며 진솔하게 대화해보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꼰대 탈출’부터 시작해야 한다. ‘꼰대식 화법’에서 벗어나 타인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다.
당신과 마주 앉은 ‘요즘 애들’ 중 자꾸 당신의 눈을 피하는 이가 있다면? 당신의 말에 반론을 제시하거나 ‘말대답’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혹시라도 당신이 ‘꼰대’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아거(필명) 작가의 저서 <꼰대의 발견>에 따르면 ‘꼰대’란 대략 이런 사람이다. “자신이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충고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권위주의적이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사람”. ‘꼰대’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지만, 사라진 단어 또한 아니다.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암약’하며 세대 간의 소통을 가로막고, ‘본인만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을 행사할 때가 많다.
‘꼰대질’은 한국 사회의 서열주의와 신분지상주의, 권위주의가 더해진 오래된 총체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면, 꼰대질은 그것을 틀어막는 장애물이다. 아거 작가는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인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또는 ‘하면 된다’는 초긍정주의 사고방식이나 ‘까라면 까’라는 무대뽀 정신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답정너’와 ‘초긍정주의’에 익숙한 당신, 지레 꼰대 탈출을 포기하고 싶어지는가? 글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일은 또 아니다. ‘꼰대식’ 화법이나 대화를 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저 몇가지만 주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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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에서 사원은 직장을 ‘아침 출근길은 지옥의 불길로 걸어가는 것 같다’라고 얘기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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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꼰대를 위한 꼰대질’을 해보자면,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반말하는 습관부터 고치는 게 좋다. 나이가 많건 적건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를 나누려면 존댓말이 필수다. 이제 친해졌으니 말을 놔도 될 것 같다고? 상대방 역시 당신을 ‘친하게’ 느낀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친하다는 기준은 상대적이니 말이다. 나이와 연애, 결혼, 출산 등에 대한 화제에는 신중해야 한다. 질문은 말할 것도 없고, 충고나 조언을 가장한 무례는 삼가도록 하자. 사생활의 비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폭력적인 대화가 되기 쉽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남자친구 있어?”(상대방이 이성애자라고 장담할 수 없다) “결혼은 했어?”(‘돌싱’이거나 ‘비혼주의자’일 수 있다) “애는 안 낳아?”(난임이거나 불임일 수 있다. 설령 상대가 자발적인 ‘딩크족’이라도, 당신이 비용을 대고 육아를 대신해줄 게 아니라면 모쪼록 타인의 ‘성생활’에 대한 오지랖은 자제해주기를 권한다)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라면 애초에 꺼내지를 말자. “내가 너만할 때에는~” “나 젊었을 때는~”(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며, 무엇보다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다) “등산 좋아해?” “낚시 좋아해?”(같이 가고 싶은 건 알겠지만, 싫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늙은것들은 말이야’) “내가 어떤 사람이냐면”(당신의 과도한 인정욕구를 안쓰럽게 여긴다. 대놓고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더라도 전혀 맥락과 맞지 않게 신분과 소속을 밝히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세대 간의 소통은 사실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말도 있듯, 꼰대가 반드시 기성세대에만 포진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꼰대’라고 수식되는 일부 기성세대도 한때는 청춘이던 시절이 있었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일찍이 말했다. “청춘, 사람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소유할 뿐, 그 나머지 시간은 회상할 뿐”이라고. 지금 청춘인 ‘젊은 세대’ 역시 언젠가는 또 다른 이름의 ‘꼰대’가 될지도 모른다.
Youthful life
사회적 나이보다 젊게 사는 삶의 방식.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고 애쓰며, 다양한 취미생활로 자신의 인생을 즐긴다. 피티(PT) 같은 근육 운동을 비롯한 건강관리는 필수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나이를 ‘0.7 곱하기 계산법’으로 산출하기도 한다. 현재 나이에 0.7을 곱하면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나이가 된다.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액티브 시니어’도 등장했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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