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7 19:56
수정 : 2018.01.18 10:35
[ESC] 보통의 디저트
[ESC] 보통의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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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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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에 갔다. 장수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예상 밖이었다. 상상 속의 불가리아인들은 장수 국민답게 평화로운 웃음을 지은 채 햇살 속을 거닐며 디저트로도 많이 먹는 요구르트를 만들 거라 생각했지만, 다른 수많은 나라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당연히 차도 많았고, 장마라 줄곧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분명한 차이점도 몇 가지 있었다. 첫째,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부정을 뜻했고, 반대로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긍정을 의미했다.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아는 사람 중 불가리아에 가본 적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번은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한 청년이 친근하게 웃으며 같이 사진을 찍자는 몸짓을 했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뒤 제 갈 길을 떠났다.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쉽사리 익숙해지진 않아 비슷한 경험을 몇 번인가 더 했다.
두 번째로, 요구르트가 많았다. ‘역시 불가리아!’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마트 음료 판매대의 반 이상이 요구르트였다. 직접 요구르트를 만들어 파는 상점도 있었다. 아침이면 그런 가게에서 요구르트를 사 먹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 틈에 껴 자주 사 먹었다. 거의 보름 넘게 머물며 끼니마다 다른 요구르트를 마셨지만 전체 판매되는 것의 백분의 일도 채 먹지 못했을 것이다. 맛은 세상 다른 요구르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허탈했다.
세 번째로, 집시가 보였다. 사실 집시는 유럽 어딜 가나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었을 적 에펠탑을 구경하러 갔다 배가 고파 사과를 먹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집시가 “한입만” 하며 다가왔다. 사과를 통째로 건네주며 ‘배가 고픈 집시인가 보다’ 했다. 그 이상 다가오진 않았다. 외면하려면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집시는 본격적이다. 피하는 것이 불가하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 있으면, 옆 수풀 속에서 열 살이 채 안 돼 보이는 꼬마 집시가 비틀거리며 기어 나온다. 본드가 짜인 봉지를 코와 입에 대고 들이마시는 채다. 대낮의 수도 번화가 한복판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장면이다. 눈이 풀린 꼬마 집시는 내게 손을 내민다. 바로 옆엔 경찰관이 서 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정장을 입은 사내와 힐을 신은 아가씨와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우리 사이를 바삐 지나친다. 아이는 여전히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한 손은 내게 향해 있고 다른 손으론 봉지를 쥔 채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건넨다. 그것을 받아든 아이는 다시 수풀 속으로 기어 들어가 이내 사라진다. 그제야 둘러보니 사방에 집시들이다. 거리의 골목마다 공원의 수풀마다 봉지를 든 꼬마 집시들이 드러누워 있고, 아이를 안은 엄마 집시가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뭐라 뭐라 소리친다. 외진 골목을 걷노라면 청년 집시가 다가와 “필로폰? 엑스터시? 왓 두유 원트?” 하고 묻는다.
“어쩔 수 없어. 우리 나라의 국민이 아닌걸.” 게스트 하우스를 관리하는 불가리아인 청년이 말했다.
“모두 처벌을 해도 수용할 시설이 없고, 풀려나오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니까.” 그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슬픈 일이야. 너무나 슬픈 일이야.”
나의 말에 그는 “맞아. 슬픈 일이지. 하지만 우리 나라는 너무 가난해” 하고 답했다.
“하지만 나아지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겠지. 그랬겠지.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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