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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1 10:45 수정 : 2018.02.01 10:55

그림 김태권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오늘 같이 먹어볼 요리는 경장육슬입니다. ‘경장유슬’이나 ‘경장육사’라고도 부르더군요. 가늘게 채 썬 고기(육사. 肉絲)를 춘장(경장. 京醬)에 볶았다는 뜻이죠. 이름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낯선 중국 요리라는 의미겠죠? 그래도 한번 먹어본 사람은 잊지 못하는 맛입니다.

어릴 때 우연히 중국요릿집에서 먹어보았어요. 우리 가족은 이 맛을 잊지 못했죠. 어머니가 눈치껏 레시피를 재현해 가끔 집에서 해주셨습니다. 소고기를 춘장에 볶아 채 썬 대파를 얹어 먹었죠. 음식점마다 먹는 방법이 다양해요. 꽃빵에도 싸 먹고 춘빙에도 싸 먹고. 요즘에는 얇게 편 건두부에 싸 먹는 가게도 많아요. 소 대신 돼지고기를 볶는 집도 많고요. 각종 채소를 곁들입니다. 채 썬 오이, 채 썬 당근, 때때로 고수를 얹어 먹지요.

그래도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채 썬 파와 춘장에 볶은 채 썬 고기. 춘장에 볶았으니 짭짤하고 고소하고 살짝 달콤한 맛도 나요. 짜장면에 들어간 고기를 생각해보세요, (아, 군침이 도네요.) 여기에 파를 곁들여 상쾌한 맛을 더한답니다. 춘장에 굴소스와 설탕을 약간 섞어 소스를 만드는 동안, 가늘게 썬 대파를 찬물에 넣어 매운맛과 냄새를 적당히 빼주는 것이 기술입니다.

파와 고기는 둘도 없는 단짝.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를 맛있게 먹으려면 곁들여 먹는 파채가 맛있어야죠. 한동안 인기를 누린 ‘파닭’(튀긴 닭에 채 썬 파를 얹어 먹는 음식)도 같은 원리죠. 소고기도 그래요. 파 없는 육개장이나 파 없는 불고기를 상상할 수 있나요?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아버지 책장에서 뽑아 읽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파를 처음 심은 사람에 대한 전래동화였어요. 옛날 옛적, 사람들이 파를 먹지 않던 시대의 일입니다. 그때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해요. 다른 사람이 소로 보였기 때문이라나요. 하루는 어떤 사람이 소를 잡아 맛있게 먹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 형제였대요. 울면서 나그넷길에 올랐습니다. 한참을 떠돌아다닌 끝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머나먼 나라에 도착했어요. 놀라는 나그네에게 여기 사람들은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우리도 한때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지요. 그러나 여기 ‘파’라는 식물을 먹으면서부터 사람과 소를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득템! 나그네는 종자를 얻어 고향에 돌아왔어요. 나그네는 밭에 씨앗을 뿌리며 기뻐했지만, 파가 자라기 전에 그만 옛날 친구들에게 잡아먹혔지요. (“친구들아, 이것만 있으면 우리는 서로 잡아먹지 않게 될 거야.” “웬 소가 이렇게 울지? 먹어치우자!”) 그래도 파는 잘 자랐고, 사람들이 파를 뜯어 먹은 다음부터 서로 잡아먹지 않았다는 이야기.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번 들은 사람은 잊지 못하는, 무섭고 불편한 민담입니다. 왜 불편할까요? 먹는 쪽과 먹히는 쪽의 구별이 사라졌기 때문이겠죠.

육식을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언제나 먹는 편에 서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잡아먹을 권리가 있다고까지 생각하죠. 하지만 먹히는 동물과 우리 인간의 차이는 뭘까요? 짐승도 고통을 느끼고 감정이 있습니다. (최근 연구를 보면 물고기도 그렇다고 하네요.) 도살되기 직전까지 소는 먹이를 주는 우리 인간을 형제나 친구라고 느낄지도 모르죠. 육식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입니다.

최근 ‘동물권’에 관한 논의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육식을 끊을 자신이 없어요. 솔직히 말해 나는 고기 요리에 너무 맛을 들였거든요. 하지만 ‘남의 살’을 먹을 때 생기는 불편함을 외면할 정도로 뻔뻔하지도 못해요. 앞으로 나는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 다양한 고기 요리를 독자님께 소개하며, 동시에 이 불편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불편한 미식기행’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나는 가책을 느끼고 고기를 끊을까요, 아니면 가책을 느끼면서도 고기를 먹을까요? 결론은 나도 몰라요. 일단 식기 전에 경장육슬부터 드십시다. 고기를 남기자니 왠지 그것도 소한테 미안하잖아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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