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07 19:57
수정 : 2018.02.07 20:05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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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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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맛볼 요리는 꼬치구이입니다. 잘게 썰어 가는 철사에 꿴 중국식 양고기꼬치도 좋아하지만 큼직큼직한 살덩어리를 긴 칼에 꿰어 구운 샤슬릭(Shashlyk. 러시아 꼬치구이)도 박력 넘치죠. (동대문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골목에서 먹었답니다)
꼬치구이는 고기를 맛있게 먹는 가장 오랜 방법 가운데 하나였어요. 동양은 한나라 시대의 그림에 남아있고요, 서양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와 있지요.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 소개한 레시피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 또는 염소를 법도에 맞게 도축하고, 살이 붙은 넓적다리뼈를 지방덩어리에 싸서 불에 올립니다. 지글지글, 기름 타는 냄새에 군침이 흐르지요. 하지만 참아야 해요, 여기까지는 신에게 바치는 몫이거든요. 이렇게 ‘고수레’를 마친 후, 고기를 잘게 썰고 꼬챙이에 꿰어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습니다. 물에 희석한 포도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이것을 헤카톰베 제사라고 합니다. (헤카톰베는 ‘백 마리 황소’라는 그리스 말인데요, 열두 마리만 잡아도 백 마리 잡은 셈 쳐줬다고 하네요) <일리아스> 첫머리에 보면 트로이 전쟁을 하러 모인 그리스 군대가 돌림병에 걸리는데요, 이 제사를 바치고는 병이 나았다는군요. 신의 노여움을 제사로 풀었다는 것이 호메로스의 설명. 그러나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제 생각은 달라요. 굶다가 탈이 난 병사들이 고기를 먹고 병이 나은 것은 아닐까요? 허벅지 살을 베어 구워 먹이자 병든 부모가 벌떡 일어났다는 옛날 효자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몸이 허하다는 핑계로 맛있는 고기를 먹는 일은 옛날 사람도 마찬가지였겠죠. 한편 남의 살을 먹을 때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을 옛날 사람도 느꼈을 거예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이런 섬뜩한 구절이 나옵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친 후 고향에 돌아가던 그리스 사람들이 예언을 받아요. 헬리오스 신이 애완용으로 기르는 소를 잡아먹으면 목숨을 잃게 되리라고요. 그런데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이 양반들이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소 떼를 잡아먹었어요. 그때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소가죽이 땅 위를 기어 다니는가 하면 꼬챙이에 꿴 고깃점들이 구운 것도 날 것도 음매 하고 울었다”나요.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
그런데 비슷한 환상을 마하트마 간디도 겪은 적이 있어요. 종교적 이유로 육식을 하지 않던 간디는 친구의 ‘설득’ 때문에 염소 고기를 맛보게 됩니다. (신앙심 깊던 간디를 친구가 어떻게 꼬였는지는 다음에 다룰게요) 그러나 밤새도록 “염소가 살아서 뱃속에서 매매 우는 것 같아”라며 가위에 눌렸고 잠을 설쳤다는군요. 몇 차례 시도하다가 결국 그만두었대요.
간디가 육식을 꺼린 까닭은 환생을 믿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먹는 쪽과 먹히는 쪽이 언젠가 뒤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먹는 쪽과 먹히는 쪽을 쉴 새 없이 오락가락하네요. 가는 곳마다 남의 가축을 잡아먹지만 동료 대부분이 괴물과 거인에게 잡아먹히거든요. 그렇다면 오디세우스는 기나긴 여정의 끝에 깨달음을 얻고 고기를 그만 먹게 되었을까요? 천만의 말씀! 이후로도 틈만 나면 신나게 먹고 마셨답니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역시 육식을 끊지 못하고 있고요. 혹시 이것이 간디 같은 성인과 나처럼 그저 그런 사람의 차이일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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