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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7 19:58 수정 : 2018.02.07 20:19

[ESC] 커버스토리

12년간 12권의 가계부 쓴 주부 김명림
외식 입학 입사 가족사 촘촘
고마운 지인들 얘기도 훈훈
가계부 덕에 시인 등단도 용기 내
“이젠 가계부 보면 떠오를 얘기 쓸 것”

김명림씨와 그가 쓴 가계부들. 김명림씨 제공
가계부는 정직하다. 그 명세만 봐도 누군가의 삶이 보인다. 몇 월 며칠 어느 동네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마트와 편의점에서는 뭘 샀는지, 평소에 영화나 술은 얼마나 즐기며, 생일이나 기념일은 언제인지…. 여기에 구체적인 사실과 감상까지 더해진다면? 나만의, 내 가족만의 생활문화사를 담은 역사책이 된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김명림(63·충남 서산)씨가 쓴 12권의 가계부가 그랬다.

가계부는 일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그저 뭐든 떠오르는 대로 썼을 뿐, 기억을 이기는 기록의 힘이 이렇게까지 셀 줄은 몰랐다. 지난달 30일, 인터뷰에 응한 김씨가 말했다. “적어놓지 않았다면 벌써 희미해졌을 일도 가계부를 보니 생생하게 되살아나더라고요.” 딸과 아들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에 느꼈던 심경, 남편과 다툰 얘기부터 10주년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목걸이와 반지를 선물해준 일까지, 귀퉁이가 낡고 해진 그의 가계부에는 소중한 추억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처음으로 온 가족이 외식을 ‘시도’했던 일도 가계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남편이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한 뒤 보너스를 받은 날이었다. 그 전까지 사업 실패의 여파로 김씨의 가족은 “빈털터리 신세”였다. “남편이 외식을 하자더라고요. 애들 손을 잡고 나갔는데, 한번도 외식을 해본 적이 없어서 뭘 먹어야 할지 몰랐어요. 결국 사이다랑 콜라만 사 먹고 돌아오는 길에 네 식구가 같이 올림픽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를 부르면서 울산 철길을 걸어온 일이 있었네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김씨의 가계부들. 김명림씨 제공
문득 김씨가 호흡을 골랐다. 형편이 나아진 지금, 남편이 곁에 있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남편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인두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3개월밖에 안 됐어요. 건강한 사람이었고, 지켜보기에 딱할 정도로 생존 의지가 강했는데 합병증으로 중환자실로 내려간 사이, 갑자기 그렇게 되는 바람에 임종도 못 봤어요.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편히 살아도 되는데….”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3살 많은 남편은 그렇게 그를 떠났다.

김씨도 1992년에는 병명조차 모르는 병으로, 1994년에는 교통사고로 심하게 아팠다. 가계부에서 발견한 쪽지 두 통은 남편이 그 무렵 써준 것이었다. 딸과 아들이 보낸 편지들과 함께 가계부 책갈피에 끼워둔 그 쪽지에는 평소 감정표현에 서툰 남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쪽지랑 같이 50만원을 제 병원비 하라고 신발장 위에 뒀더라고요. 그땐 그런 큰돈이 나올 곳이 없었어요. 알고 보니 이웃집 슬비 엄마한테 꾸었던 모양이에요.” 북받친 감정을 참아보려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가 결국 목멘 소리로 말했다. “이 얘긴, 그만할까요?”

김씨는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자신만큼 인복이 많은 사람도 드물 거라고 했다. 가계부를 뒤적이다 보니 어려운 순간 손잡아준 지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쫄딱 망했을 때” 이사 비용을 내준 시숙들은 물론, 급전이 필요할 때 돈을 흔쾌히 빌려주거나 아파트를 사기까지 보증을 서준 이웃들도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울산에서 세를 살던 시절, 주인아주머니에게 입은 호의도 잊을 수 없다. 33살, 젊디젊은 시절의 일이다.

김명림씨가 12년 만에 뜯은 돼지저금통. 김명림씨 제공
“추석이었어요. 시댁에도 못 갈 정도로 사정이 안 좋았는데, 명절을 지내러 간 척하느라 어린 애들을 데리고 밤늦게까지 공원을 돌아다녔어요. 명절인데도 집에 있는 걸 보면 주인아주머니가 음식을 갖다 주시곤 했거든요. 그게 너무 죄송해서 일부러 집을 비운 건데 돌아와 보니 어떻게 아셨는지 송편에 잡채에 나물에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더라고요. 커다랗고 동그란 양은상이었어요. 아, 그날따라 달은 왜 그렇게 밝은지. 달이 참 밝았어요.”

그날 네 식구가 명절 상을 마주하기 전까지 밖에서 먹은 음식은 삶은 홍합 두 그릇이 전부였다. 김씨뿐 아니라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과 미취학 아동이었던 아들도 포장마차에 둘러앉아 홍합을 나눠 먹던 그날을 기억한다. 적자를 벗어날 도리가 없던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기억”이다. 다행히도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은 지금 제각각 좋은 짝을 만나 ‘또 다른 아이들’을 낳아 기른다.

돼지저금통을 뜯자 나온 207만원어치의 돈. 김명림씨 제공
초등학교 4학년생이던 아들이 돈을 잃어버리고 온 일화도 가계부가 되살려낸 기억이었다. 남편은 나무랐고, 아들은 울었다. “난 나중에 커서 효자 안 할 거야! 아빠, 엄마한테 용돈도 안 줄 거야!” 그랬던 아들이 조금 전 먹통인 컴퓨터를 고쳐주려고 퇴근길에 들렀다. 인터뷰를 하던 중 그는 아들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어머, 고친 거야? 진짜 고친 거야?” “응, 이거 누르니까 되는데?” 아들의 말투는 다정했다.

김씨가 가계부 대신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적자를 면치 못하던 가계가 흑자로 돌아서면서부터였다. 아이들이 장성하면서 교육비가 나가지 않게 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외식이나 여행을 안 하고 살면서 푼푼이 모은 결실에 가까웠다. 살림살이도 어찌나 안 샀던지 남편이 따로 모은 용돈으로 침대와 소파를 사줄 정도였다. 동전 한 닢 허투루 쓴 적이 없었던 까닭에 12년 만에 뜯은 돼지저금통에는 207만원어치의 동전이 나왔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손녀에게 디지털피아노를 선물하기에는 충분한 액수였다.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남편이 3년 전에 퇴직하면서 사놓은 작은 땅이 하나 있어요. 나무도 심고 동물도 키우면서 거기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나무랑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 생각만 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렇게 좋아하는 곳을 마음껏 밟아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거잖아요. 옆에 있을 땐 잘 몰랐는데, 제가 남편을 너무 많이 사랑했더라고요.”

이런저런 단상을 기록하기 위해 가계부건 일기장이건, 꾸준히 뭔가를 펼쳐 드는 사람이라면 글쓰기의 욕구와 감수성이 내재돼 있기 마련이다. 김씨도 그랬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에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 김씨는 시 쓰기에 매진한 끝에 2011년 <열린시학>에 ‘파고다공원에는 늙은 비둘기가 많다’, ‘공범’ 등 10편을 내 등단했고, 2년 뒤에는 시집 <어머니의 실타래>를 냈다. 시 쓰기에 대해 묻자 김씨는 말했다.

“(남편을 보낸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다시 써야죠. 이번에 가계부를 보면서 떠오른 이야기들을 토대로, 너무 어려운 시보다는 누구나 생활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남편 이야기는 언제까지고 하게 되지 않을까요? 남편한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가계부: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장부. 제3자의 시각에서 가족 혹은 개인의 소비습관을 파악할 수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에 유용하다. 수입과 지출을 적은 뒤에는 분석과 반성,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종이가계부뿐 아니라 스마트기기용 가계부 앱도 많다. 한국 가계부의 시초는 어사 박문수(1691~1756) 집안에서 쓴 <양입제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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