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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7 20:00 수정 : 2018.02.07 20:15

[ESC] 보통의 디저트

‘사타안다기’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생겨난 간식으로 ‘설탕 튀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설탕을 튀기는 것은 아니고 설탕과 밀가루로 만든 반죽을 기름에 튀긴 도넛이다. 맛이야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어 한두 번 먹고 나면 굳이 사 먹어야 할 필요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다소 심심한 맛에 개성을 더하기 위해 녹차나 초코, 땅콩버터(심지어 카레까지) 등을 첨가한 다양한 사타안다기도 판매하지만, 어쨌거나 사타안다기는 사타안다기다.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사타안다기가 있으니, 때는 내가 퇴사를 한 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위해 무작정 오키나와로 떠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이미 여행은 열흘이 넘어가고 있어 마땅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온종일 렌터카를 타고 오키나와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마침 일본은 선거 기간이었다. 일본어도 한자도 모르는 나로선 무슨 선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연일 확성기를 매단 선거차량들을 보며 ‘무슨 선거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지명을 알 수 없는 시골 어딘가에서도 그랬다.

어느 한적한 시골 국도를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 세워진 선거차량이 보였다. 후보인지 관계자인지로 보이는 사람과 몇몇 선거운동원이 차에서 내려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워지자 확성기를 들고(짐작건대 공약이랄지 포부 같은 것을) 열정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손을 들어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고된 유세로 지친 와중에 응원이 힘이 되었을까. 그들은 멀어지는 내 차를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확성기로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하고 외쳤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얼마 가지 않아 한 휴게소에 들렀다. 오가는 차가 없는 길임에도 주차장에 차가 빼곡했고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역시나 짐작건대) 마을 축제 날인 듯했다. 사람들은 서로 아는 듯 대화를 주고받으며 웃었고, 죽 늘어선 스낵 코너에선 오코노미야키나 야키소바, 다코야키 등을 팔고 있었다. 둘러보다 사타안다기 매장 앞에 멈춰 섰다. 보통 사타안다기는 아기 주먹만한 크기인데, 이곳에선 최홍만 선수의 주먹만한 것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새로운 맛을 첨가한 사타안다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일까. 원래 이 마을에선 다들 이 크기의 사타안다기를 먹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시작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고, 알아도 별 의미 없지만.

그것을 하나 샀다. 묵직한 게 작은 볼링공 같았다. 갓 튀겨 뜨끈한 그것을 들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한입 베어 물었다. 부르릉. 천천히 휴게소를 빠져나왔다. 이미 해는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백미러로 보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즐거워 보였다.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다시 한입 먹는다. 맛있다. 고소하고, 달콤하다. 아까의 선거 일행들도 휴게소에 들를까. 어쩌면 이 거대 사타안다기를 하나씩 들고 먹으며 ‘오늘 참 힘들었지만, 아까 우리한테 손을 들어 응원해준 그 사람 덕에 마지막에 기분 좋았지’ 하는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또 한입 먹는다. 따듯함은 여전하고, 아직도 충분한 양이 남아 있다. 숙소로 되돌아가려면 몇 시간 동안 더 운전해야 한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였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지친 와중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사타안다기를 보니 괜히 안심이 되었다.

? 고된 삶 어느 지친 저녁 묵직한 사타안다기가 전해주는 안도감이란, 참으로 든든해 앞이 보이질 않아 끝을 알 수 없고 답도 모르는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어찌됐든 계속 가봐야겠다는 용기를 주었다. 아. 이래서였구나. 이렇게 큰 사타안다기를 만든 사람의 속뜻을 제멋대로 깨달았다. 기회가 된다면 당시의 나처럼 막연함에 지친 누군가에게 맛보여주고 싶지만, 어디인지 도통 모르겠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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