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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1 10:03 수정 : 2018.03.01 10:11

1920~30년대에 걸쳐 간행된 잡지 <신여성> 표지. 출처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신여성>(연구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연구팀 지음, 2005년, 한겨레신문사)

[ESC] 커버스토리

지면 통해 본 단발머리 풍속사
여성 단발 20년대부터 국내 퍼져
1960~70년대 비달 사순 ‘단발’ 대유행
연예인 단발 따라하기는 여전한 대세

1920~30년대에 걸쳐 간행된 잡지 <신여성> 표지. 출처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신여성>(연구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연구팀 지음, 2005년, 한겨레신문사)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1980년 선보인 조용필의 인기 가요 ‘단발머리’ 가사 일부다. 인기 곡답게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 때 배경음악으로 쓰였고,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흘러나온다. 단발머리는 10대 소녀, 중·고교 여학생을 상징한다. 풋풋·발랄·순수함의 상징이다.

여학생들이 획일적으로 강요받았던 단발머리가, 나이와 관계없이 매력을 내뿜는 머리 스타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요즘 다시 단발머리가 대세라고 한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게 확실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돌고 돌며 유행하던 단발머리 풍속도를 알아본다.

미장원에 ‘단발병’이 창궐하고 있다는데, 사실 단발머리는 근대 이후 언제나 화제를 불러모은 머리 스타일이었다. 일제강점기 여성들에게 단발머리는 신여성의 상징이었고, 광복 이후로는 활동성 강한 여성을 뜻하면서 여권 신장, 주체적 삶을 상징하기도 했다. 나아가 다양한 패션 스타일을 이끄는 변화의 아이콘이었다. 머리 자르기는 지치고 느슨해진 일상을 단칼에 날려버리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동아일보> ‘단발낭’(斷髮娘) 1922년 6월22일치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여성의 단발머리가 처음 이 땅에 퍼지기 시작한 건 1920년대다. ‘…요사이 경성시내에는 엇던 녀학생이 머리를 깍고 남자 양복에 캡 모자를 쓴 후 이곳저곳으로 도라다닌다 하야 일반사회에서는 이야기의 꼿이 피게 되엿다. …자긔의 무슨 주의와 무슨 리상을 위하야 머리를 깍근 것이라 한다…조선에서는…이 녀자가 처음이다.’(<동아일보> ‘단발낭’(斷髮娘) 1922년 6월22일치) ‘이 녀자’는 기생 출신 ‘녀학생’ 강향란을 말한다. 애인에게 실연당하자,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며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한다.

여성이 머리를 자른다는 건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후 여성들 사이에서 서서히 단발머리가 유행하기 시작해 2~3년 사이 신여성을 상징하는 머리 스타일로 떠오른다. 찬반 논란이 분분했던 건 당연지사다. 단발머리 여성이 지나가면 구경꾼이 몰려들었고, “그 해괴함에 놀래지 아니하는 이가 업섯더라”는 기사가 지면을 장식했다.(<조선일보> 1923년 3월26일치)

<신여성> 1925년 8월호, 이화전문교 교수 조정환의 ‘단발하는 것은 좃슴니다’.
잡지에는 단발 경험을 담은 여성들의 수기(<신여성> 1924년 10월호)가 실리는가 하면, 단발을 옹호하는 글(<신여성> 1925년 8월호 이화전문교 교수 조정환 ‘단발하는 것은 좃슴니다’)도 쏟아졌다. 보수적인 독자들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오늘 귀란을 보닛가 녀자가 단발하는 것이 매우 조흘듯이 말슴하엿더이다. 그러나 나는 단발이 극반대입니다. …남자의 압박에서 해방된다는 것도…머리 깍는다고 될 일이 만무하지요. 그러지아니하여도 머리쌀이 아푼 문뎨가 하도 만은데 또 단발 류행까지 한다면 아이 참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함니다.”(<동아일보> 1925년 8월13일치 ‘부인란’의 ‘가뎡통신’ 독자 투고)

<신여성> 1925년 8월호, ‘세계 유행 깍근머리’ 화보.
논란이 거세지면서 남녀 명사들로부터 찬반 글을 받아 여성 단발을 공론화하는 특집(<신여성> 1925년 8월호 ‘여자의 단발’)이 나오고, 지상토론(<별건곤> 1929년 1월호 ‘남녀 토론―‘여자 단발이 가한가 불한가’)도 벌어진다.

당시 대부분의 일반 시민은 단발머리 여성을 조롱하고 손가락질했지만, 지식인들 중엔 단발을 옹호하는 이가 많았다. ‘보기에 좋고 위생적이며, 머리 손질 시간이 절약돼 경제적인데다, 여성 단발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이유에서다. 여성의 단발머리가 유행하는 데 대해 <동아일보>(1927년 6월12일치)는 “가장 큰 원인은 어엽분 귀를 감추지 말고 내여노차는데 잇”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가리고 숨겼던 전통에 반발하면서 매력을 과감히 드러내고 싶어 하는 ‘신여성’의 욕구를 보여준다.

‘단발’ 용어에 처음엔 한번도 자르지 않던 머리칼을 자른다는 뜻을 담아 ‘끊을 단’(斷, 자를 단) 자를 썼다. 광복 이후 단발머리가 일반화되면서 ‘짧은 머리’를 뜻하는 ‘단발’(短髮)로 쓰이게 된다.

단발머리는 관습에 매여 억압받는 삶을 살아온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1967년 개봉한 영화 <단발머리>(김수동 감독, 신영균·남정임 주연)는 학창시절 알았던 남녀가 각각 기혼자로 다시 만나 외딴섬으로 도주해 사랑을 불태우다, 가정으로 돌아가려는 남자를 여자가 칼로 찌르고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남녀 차별에 대한 반기,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여주인공은 ‘머리채를 잡아 자르는 남편에 저항하여 스스로 가위를 들고 단발머리로 자름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찾아 간다’.(<씨네21> 196호)

단발머리는 1960년대 초에 이미 ‘할머니도 시도하는 헤어스타일’이었다. <동아일보> 1963년 9월11일치의 독자 칼럼 ‘단발과 쪽머리와의 대화’는 미장원에서 우연히 만난 “(긴 머리가) 빗질하기도 힘이 들고 오히려 불결해서 (여대생처럼) ‘숏컷’으로 하시겠다는 할머니” 이야기다. 독자는 자신의 할머니·어머니의 쪽머리와 “저 할머니처럼 청결하고 움직이는 젊음”을 비교하며 부러워한다.

<매일경제> 1976년 4월26일치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60~70년대는 세계적으로 영국의 헤어 디자이너 비달 사순의 단발머리가 유행한 시기다. 여성 직장인이 늘어나는 등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가속화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사순 커트’라는 이름으로 단발머리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로도 단발머리는 복고풍, 추억의 머리 스타일이란 이름으로 수시로 유행을 타게 된다.

<한겨레> 1994년 11월1일치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1998년 10월19일치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98년 10월20일치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와 별도로 단발머리가 반짝 뜨는 경우도 있었다.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머리를 잘랐을 때다. 신문·방송에서 누구 단발머리가 예쁘다더라 하면 미장원으로 달려가 가위질을 부탁하는 이들이 많았다. 1992년 김혜수가 영화 출연을 위해 ‘애지중지 길러온 긴 머리를 잘랐다’는 소식에 단발머리가 유행했다. 1995년엔 미국 배우 메그 라이언의 단발머리가 국내 여성 연예인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최진실·심은하·고소영 등이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1992년 ‘티브이(TV) 여성 앵커’들이 단발머리 바람을 불러왔다. <에이비시>(ABC)의 바버라 월터스가 먼저 머리를 잘라 단발머리로 방송을 진행하자, 다른 방송사 여성 앵커들도 잇따라 긴 머리를 자르고 단발머리 대열에 가세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단발머리는 “미국 여성 명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는데, 그 이유는 “(단발머리가) 침착하고 세련된 헤어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소개했다.(<경향신문> 1992년 1월20일치 ‘미 여성앵커들 단발머리가 좋아’)

아이엠에프(IMF) 금융위기에 휩싸였던 1998년 초 신문·방송엔 이른바 두 가지의 ‘아이엠에프 헤어스타일’이 일제히 추천된다. 손질하기 간편한 ‘층 없는 단발머리’와 긴 생머리다. “미장원 가는 횟수를 줄여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인기 연예인들이 단발에 가세하면서 ‘엄정화 단발’ 등 찰랑찰랑한 단발머리가 크게 유행했다.

이렇듯 단발머리 유행 그리고 ‘단발병’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시작돼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는 중이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단발머리 잔혹사

△단발이 된 할머니

1972년 1월26일치 <경향신문>에 ‘금비녀 훔치려고 쪽머리 싹둑’ 기사가 실렸다. 소매치기 두목이 할머니 머리의 금비녀를 훔치려다, 면도칼로 쪽머리를 통째로 잘라내 도주했다가 붙잡힌 얘기다. 그러나 “할머니(70)는 금비녀보다 70년 동안 고이 간직해온 긴 머리를 잘려 단발머리가 된 것을 더욱 비통해했다”고 한다.

△단발 산모

여중고생들에게 강요됐던 단발머리는 1982년 ‘두발·교복 자유화’ 즈음까지 늘 시빗거리였다. 남학생 까까머리와 함께 일제 잔재로 지목됐고, 자유로운 사고를 막아 창의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많았다. 두발·교복 자유화 이후 학생들이 활발해졌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으나, 비행·탈선이 늘고, 성 문제 고민 상담이 늘었다는 기사도 함께 쏟아졌다. ‘단발머리 산모’란 말도 등장했는데, 이는 주로 성폭력에 의한 여학생 임신·출산이 늘면서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다.

△단발 새내기

여성 직장 초년생들에겐 유행 여부나 시기를 가리지 않고 추천돼온 게 단발머리다. 과거 신문 기사를 보면, 헤어 디자이너들은 거의 빠짐없이 단발머리를 권하고 있다.(<동아일보> 1977년 1월11일치 ‘예비 숙녀는 머리 가꿀 때’, <경향신문> 1993년 1월8일치 ‘예비 대학생·사회 초년생 멋내기 요령’ 등) ‘단정해 보일 뿐 아니라 손질하기도 쉽기 때문’이라지만, 당시 직장 새내기 여성들 머리 모양은 비슷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발 간첩

20여년 전 간첩 신고 때 단발머리가 등장했다. 1996년 9월20일치 <경향신문>엔 ‘새벽마다 30대 단발머리 여자 출현’ 기사가 실렸다. ‘강릉 북한 잠수함 좌초 현장 바닷가에서 며칠째 서성대던 ‘30대 단발머리 여성’이 고정간첩으로 의심된다’는 기사다. 30대 단발머리 여성이 한둘일까마는, 아무튼 당시엔 옷차림이나 옷 색깔보다 머리 모양으로 구별하는 게 쉬웠다는 얘기다.

△단발 투혼

스포츠신문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운동선수들이 ‘삭발 투혼’을 불사르듯, 여성 연예인이 아껴오던 긴 머리를 짧게 자름으로써 심기일전의 각오로 일에 임한다는 뜻이다. 삭발 투혼이든 단발 투혼이든 머리가 또 자랄 수 있으니 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숱이 있으니 하는 일이다.

단발

머리카락 길이가 어깨선 남짓 되는 머리 모양. ‘단발병’이란 용어가 봄철마다 유행. 단발머리 모양이 잘 어울리는 연예인을 보고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싶어 하는 병을 이르는 말이다.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지 않고 단발을 고수하는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배우 고준희는 대표적인 연예인. 최근 배우 김남주는 드라마 <미스티>에 단발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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