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07 20:31
수정 : 2018.03.0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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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보면 쉬는 이들이 많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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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선수들의 게스트하우스 완벽 사용기
책 한 권 독파, 빈둥대기, 강아지 산책 등
넓은 욕조 찾아 온종일 스파
“여행지에서라도 작은 사치 경험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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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보면 쉬는 이들이 많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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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파되던 때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특정 도시를 낱낱이 분석하고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를 정리한 서적이 여행 관련 부문 도서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올렸다.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은 ‘힐링’ 열풍에 빠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만 20살에서 59살 직장인 중 연차를 모두 소진하는 이의 비율은 17.7%에 불과하다. 연차의 3분의 1도 사용하지 못하는 이는 33.5%로, 이는 현대인의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바를 시사한다. 많은 사람과 부담 없이 교류할 수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되는 게스트하우스에 여행객들이 몰리는 이유다.
가수 이효리씨의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운영기를 담아낸 <제이티비시>(JTBC)의 <효리네 민박>, 30대 후반 남자들의 게스트하우스 여행기를 그린 영화 <올레>까지, 최근 게스트하우스를 주제로 한 각종 콘텐츠가 쏟아지는 것도 이러한 경향에서다. 최근에는 강릉, 지리산, 속초, 양양, 경주, 부산 등 제주 이외의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지역에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볼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대로 쉬는 법을 아는 이들을 만나 봤다.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 북 스테이
유명한 문호의 문장을 간략히 풀어 설명하는 <쓰기의 말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제이티비시>의 <효리네 민박>에서 박보검, 아이유가 읽으며 일약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실용서나 업무 관련 서적 대신 가벼운 문학 작품과 소설, 시집 등을 들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각종 정보가 쏟아지는 에스엔에스(SNS)와 넘쳐나는 뉴스 등 텍스트의 홍수에서 사는 현대 직장인들은 때로 원치 않는 정보조차 거절할 틈 없이 수용하게 된다. 피곤한 일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글을 통한 휴식이 아닐까?
‘한 권을 읽더라도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책을 고른다’는 신조는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 열풍과도 관련 있다. “여행 기간 내내 시간을 내 천천히 책을 읽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여행지에 가져갈지 고르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거든요.” 의류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30대 한상현씨의 말이다. 그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때마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들고 가곤 했다. 인근의 유명한 여행지를 ‘오토 패싱’(자동 무시)하고 ‘게콕’(게스트하우스에만 콕 박혀 있기)한 채 읽은 그 책은 다시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용기를 줬다고 한다.
■‘게콕’ 마니아들이 꼽는 게스트하우스에 가져갈 만한 책
여행 경력 7년인 30대 입시 학원 강사, 김송희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들고 가고 싶다. 책을 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무진의 뿌연 연기, 김승옥 특유의 간결한 문체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이 된 순천만으로 여행할 때 들고 가면 어떨까? 게스트하우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드넓은 순천만과 파도처럼 흔들리는 갈대만으로도 서울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낄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게스트하우스 찾는 대학생, 백미경
관광지의 평범한 호텔에서 머물 수도 있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다. 활기 넘치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긴다. 사람들과 모여 있다가도 부담 없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이다. 호흡이 빠른 추리 소설이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다. ‘일본 추리 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으며 휴가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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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의 개와 산책하면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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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휴식 속에서 특별함 찾기
‘하루 종일 빈둥대기’, ‘잡초 뽑기’, ‘강아지 산책시키기’ 등 ‘굳이 여행지에서까지 해야 하나’ 싶은 평범한 일을 하며 휴가를 보내는 이도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 생활, 퇴근 뒤의 피로 때문에 하지 못했던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찾아 할 때야말로 행복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게스트하우스야말로 이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의 일을 처리하기에 좋은 장소다.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김소희씨는 한 시간은 뒹굴뒹굴하고 나머지 시간은 게스트하우스의 강아지를 산책시킨다든가 잡초를 뽑는 ‘소일거리’를 한다. 그래서 그는 반려견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한다. 평소엔 키울 엄두가 안 나 접은 욕구를 게스트하우스에서 채우는 것이다. 그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며칠간 규칙적으로 반복해 살면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참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반신욕으로 ‘나만의 스파’ 즐기기
섬유회사에 재직하는 윤승원(29)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선정하는 기준 중 하나로 ‘넓은 욕조’를 꼽았다. “한 번 이용할 때마다 10만원 이상 소비해야 하는 전문 브랜드의 스파 서비스는 부담스럽잖아요. 여행지에서라도 작은 사치를 경험하고 싶어요.” 넓은 욕조가 갖춰진 게스트하우스를 고르고, 고급 화장품 브랜드의 입욕제를 사 ‘나 홀로 스파’를 즐기는 것이 그의 여행 방법.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가능하면 자주 입욕제의 향을 바꿔 가며 반신욕을 즐긴다.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서울에서 작은 주점을 운영하는 김동형(34)씨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그 지역의 주민이 된다. 짐을 풀자마자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동네를 ‘순찰’하며 구석구석 살핀다. 제일 손님이 많은 동네 식당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만난 동네 주민들에게 얻은 정보를 배경 지식 삼아 갈 만한 곳을 탐색한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우연히 얻은 정보로 최대한 동네 주민처럼 살아보는 것. “해가 저물면 동네 술집에 가서 술도 한잔하고, 재래시장에서 현지 식재료를 사다 먹어요. 게스트하우스의 진정한 매력은 사 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어요.”
■새로운 친구 만들기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한정윤씨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이유를 ‘친교 활동’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게스트하우스만의 장점이자 재미라는 것. “매일 아침 얼굴을 맞대고 아침을 먹고, 저녁에는 가끔 술도 한잔씩 나누게 됩니다. ‘인생 선배’에게 듣는 사회생활 이야기야말로 게스트하우스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백문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게스트하우스
원래 외국인을 상대로 주택이나 빈방을 제공하는 도시민박이 취지였으나 최근에는 국내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이용이 늘고 있는 숙박 형태.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며, 거실과 주방 등을 공유한다. 대부분 ‘도시민박’이나 ‘농어촌민박’으로 신고해 영업 중이다. ‘공용침실’(도미토리) 형태의 숙소를 기본으로 하지만, 1인실이나 2인실 같은 ‘개인 공간’을 갖춘 곳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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