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07 20:31
수정 : 2018.03.07 20:38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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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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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고기만두와 친구들. 고기만두와 비슷한 세계의 요리를 살펴보아요. 삼사는 중앙아시아의 요리. (고려가요 <쌍화점>의 ‘쌍화’가 삼사를 한자로 옮긴 것이래요.) 중국식 군만두와는 달리 튀기지 않고 화덕에 구워 나와요. 겉은 담백하지만 양고기를 다져 넣은 속은 무척 ‘고기고기’하더군요. 비슷한 이름의 사모사는 인도와 중동 지역의 음식. 익힌 채소를 으깨 소를 채웁니다. 고기를 넣어서도 먹고요. 유럽에는 ‘미트 파이’가 있어요. 저는 다진 소고기를 넣은 파이를 좋아하는데, 다른 재료도 많이 씁니다. 사냥한 고기를 넣으면 특별히 ‘게임 파이’라고 부른대요. 이를테면 산토끼 같은 짐승 말입니다.
토끼고기의 맛은 잘 모르겠어요. 몇 조각 맛본 일은 있지만, 나중에 눈 가리고 “토끼고기를 가려내어 보라”고 하면 맞히지 못할 것 같아요. 많이 먹어본 사람 이야기로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개성은 없다고 하네요. 프랑스에 갔을 때 정육 코너에 가죽을 벗겨 매달아 놓은 토끼를 본 적이 있어요. 돼지나 닭만 보다가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린 토끼를 보니 당황스럽더군요. 아마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겠죠.
“얘들아, 들판이나 시골길에서는 놀아도 되지만 맥그리거 씨의 정원에는 들어가면 안 돼. 너희 아버지가 그곳에 갔다가 맥그리거 부인이 굽는 파이 속이 되고 말았지.” 일러스트로도 유명한 <피터 래빗 이야기>의 첫머리입니다. 아빠는 토끼파이가 되어 이웃집 농부에게 잡아먹혔고 주인공 피터도 비슷한 위기를 겪지요.
다진 고기 신세가 될 뻔한 이야기는 <수호전>에도 나옵니다. 천하장사 무송의 이야기. 인적이 뜸한 낯선 식당에서 만두를 시켰는데 낌새가 이상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그곳은 살인강도가 운영하던 여관이었어요. 지나가는 손님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금품을 빼앗고 사람은 만두소로 만들었다나요. 무송은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던 호걸, 오히려 여관 주인 부부를 제압합니다. 다른 손님들은 꼼짝없이 당했겠지만 말이에요. 호걸들의 리더, 송강 역시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유배 가던 길에 마취약을 탄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어요. 가게 주인이 손님을 살해해 만두소로 만들어버리려던 것이죠. 나중에 이 손님의 정체가 유명한 송강이라는 사실을 알고 해독약을 먹여 살려냅니다.
왜 하필 만두일까요? 하얀 만두피가 만두소의 실체를 은폐하기 때문이겠지요. <수호전>의 끔찍한 이야기들이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송나라가 망해가던 시절에는 민란도 일어나고 유목민족도 쳐들어와 전쟁이 많았대요.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도 힘들었을 겁니다. 모르는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이나 원수를 죽여 제사에 쓰는 장면이 소설에 자주 보이는 것도 그래서라나요. 아무려나 불편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수호전>의 세계관은 독특합니다. 무송은 자기를 잡아먹으려던 손이랑 부부의 사과를 받고 친구가 됩니다. 송강은 자기에게 약을 먹인 이립을 나중에 부하로 삼지요. 이들 모두가 훗날 ‘양산박의 108두령’이 되어 형제자매처럼 살갑게 지냅니다. 이렇게 먹는 쪽과 먹히는 쪽이 친구가 되는 일이 가능할까요? 마음이 편해지는 상상입니다. 누군가의 가족을 잡아먹고 있다는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글쎄요, 피터 래빗이 ‘아버지의 원수’ 맥그리거 씨를 친구로 받아줄 것 같지는 않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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