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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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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제2터미널 개장한 인천국제공항
발랄·통통 튀는 유쾌한 소설가 정세랑
“롤러코스터 있는 공항 멋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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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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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일상 탈출의 출발지이자 곧 만날 꿈의 선착장이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은 친근하고 아늑한 둥지가 된다. ‘아름다운 공항 베스트 10’ 등을 꼽는 여행자도 많다. 공항이 여행지인 것이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쓰는 등 한국문단을 이끌 차세대주자로 꼽히는 정세랑 소설가가 공항에 있으면 좋을 것들에 대한 얘기를 보내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언젠가 태풍이 심했던 날, 한 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13시간 동안 머물러야 했던 적이 있다. 어마어마한 강풍과 폭우 속을 내다보니, 활주로에 얕은 파도가 치고 있을 정도였다. 좁은 공항 안을 방황하며 모든 시설을 다 이용해보았지만, 늘 흥미로운 공간이었던 공항이 어느새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공항에 이런 것도 있으면 좋겠다, 마음껏 써보는 지금의 글은 이도 저도 못하고 공항에 갇혀 있던 그날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산도 실효성도 따지지 않고 마음껏 상상해보았다.
번역된 한국 작품들로 가득한 도서관
한국 작품들이 요즘 활발히 번역되고 있다. 소설, 시, 만화, 동화 등 장르도 다양하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여러 언어로, 여러 작가들이 소개되고 있기에 이것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다. 한국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비행기에 타기 직전, 멋진 한 조각을 한 번 더 펼쳐보고 갈 수 있다면 근사하지 않을까?
모노레일 옆 롤러코스터
플랫폼을 천천히 오가는 모노레일도 좋지만, 여행의 시작이 롤러코스터라면 그것도 흥분될 것 같다. 롤러코스터가 있는 공항이라면 얼마나 멋질까? 아예 롤러코스터도 두 개쯤 지어버리면 좋겠다. 하나는 하드코어 한 롤러코스터로, 다른 하나는 노약자와 어린이도 탈 수 있는 귀여운 롤러코스터로 말이다. 아드레날린이 너무 나와서 비행기에서 자지 못한다면 그건 좀 문제일 수 있겠다.
한 공항, 한 매
비행기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가서 위태로울 뻔했단 뉴스가 매해 심심찮게 들려온다. 새를 쫓는 데는 여러 가지 해결책이 있겠지만, 공항마다 매잡이와 매를 배치하는 건 어떨까? 얼마 전 매가 한 마리 날자 동네 모든 새들이 꼭꼭 숨는 것을 보고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애호가들을 위해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하고, 어느 공항의 매가 더 멋있는지 마스코트처럼 경쟁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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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5층 전망대 입구.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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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정리 인공지능 로봇
짧은 여행은 괜찮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캐리어는 가져간 짐과 현지에서 구매한 짐으로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만다. 공항에서 캐리어 위에 앉아 캐리어를 잠그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매번 눈에 띄는데, 인공지능으로 완벽히 짐을 대신 싸주는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 최대한 공간을 확보할 뿐 아니라, 무게 중심도 고려해서 짐을 싸주는 그런 기계 말이다. 빨래 개주는 로봇이 상용화는 멀었지만 일단 나오긴 나왔다는 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퓨전 한식 클래스
요즘 현지에서 현지 요리 강습을 받는 여행가들이 자주 보인다. 공항에도 가능한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미리 예약을 해서 30분 만에 배울 수 있는 가벼운 한식을 경험하고 출국할 수 있다면 재밌을 것 같다. 투명한 유리로 지어, 바깥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 실습실에서 지구 곳곳에서 날아온 사람들이 함께 잠깐 배우고 웃고 먹고 헤어질 수 있다면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겠다.
옥상의 명상 요가 클래스
언젠가 외국의 공항에서 옥상 공원에 올라갔더니 무척 마음이 편해졌던 경험이 있다.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직선으로 쭉쭉 뻗은 풍경에 매료되고 말았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얼마나 오래 보지 못하고 살았나, 헤아려보곤 깜짝 놀랐다. 언제나 빌딩이나 다른 요소에 시선이 가로막히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활주로가 보이는 확 트인 공간엔 역시 명상 요가가 어울리지 않을까? 특히 비행을 앞두고 긴장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맞춤일 것이다.
호박 레스토랑
비행기만 타면 왜 그렇게 붓는지 모르겠다. 얼굴도 붓고 다리도 붓고, 심할 때는 발바닥에 체액이 몰려서 걷기 불편할 정도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텐데, 부기를 빼는 데 좋은 음식들로 메뉴를 구성한 레스토랑이 있다면 착륙하자마자 달려갈 것이다. 호박, 연근, 우엉, 녹차 등, 부기 빼기에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채식 레스토랑 하나쯤 꿈꿔본다. 채식인들에게도 대환영을 받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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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5층 전망대 브이아르(VR) 체험 시설.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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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안내 로봇. 인천공항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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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브이아르(VR·가상현실) 자전거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을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충전 자전거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다면 어떨까? 한국의 아름다운 길 몇 개를 브이아르로 촬영해서 심심하게 달리는 게 아니라 단풍 길을, 벚꽃 길을, 강가와 호숫가를 즐기며 달릴 수 있게 한다면 모두 조금 더 건강해져서 목적지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눈병이 옮지 않도록 브이아르 기기를 위생적으로 관리만 할 수 있다면 딱일 텐데 말이다.
환경을 위한 아케이드 오락실
항공 여행과 물류의 무분별한 증가가 지구 온난화의 큰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면 공항과 공항 이용객들은 환경을 위해 더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수익의 전액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돌아가는 아케이드 오락실이 있다면 좋겠다. 쓰고 남은 동전들을 가볍게 기부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게임 테마도 멸종 동물 구하기, 숲 면적 늘리기, 이상 기후 재난 막기 등 환경에 관련된 것이라면 근사할 테다. 그런 오락실에서라면 돈을 탕진할수록 보람찰 것이다. 공항마다 공항 면적에 걸맞은 숲을 가꿀 수 있길 꿈꾼다.
공기 청정을 위한 이끼 벽
이끼를 이용한 공기 청정에 관해 읽은 적 있다. 이끼는 공기 중의 먼지와 유해 가스를 흡수한다고 하는데 다른 식물에 비해 효율도 훨씬 높은 모양이다. 공항에 이끼 벽을 설치한다면 한층 상쾌한 공기를 이용할 수 있을 듯하다. 가습기 구실도 겸할 테고, 아름다운 초록색으로 눈도 편안해지는 부수적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정세랑(소설가)
인천국제공항
2001년 문 연 대한민국의 대표 국제공항이자 동북아시아 허브공항. 지난 1월18일 제2여객터미널을 개장함. 2017년 1년간 36만회의 항공기 운항으로, 여객 6208만2032명, 화물 290만t의 운송을 기록함. 인천국제공항 ‘IATA’(국제항공운송협회) 코드는 ‘I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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