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3.22 10:10 수정 : 2018.03.22 17:15

현재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알려진 ’남양 신경정신병원’은 출입이 금지돼있다. 이정국 기자

영화 개봉 앞두고 누리꾼 화제
귀신 출몰 소문과 달리 양지바른 곳
광주시 “낭설”…법원 “공포 영화일 뿐”

현재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알려진 ’남양 신경정신병원’은 출입이 금지돼있다. 이정국 기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은 있었어요. 친구들이 담력훈련 한다고 가서 ‘인증 샷’ 같은 걸 찍어 오기도 했어요.” 곤지암읍의 행정 관할 지역인 경기도 광주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대학생 신수민(26)씨는 ‘곤지암 정신병원 괴담’을 또렷이 기억한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은 하나의 해프닝으로만 여기고 있다. “말이 안 되잖아요. 귀신이 나온다는 게. 아마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 시절이라서 더 소문이 크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신씨의 말대로, 곤지암 정신병원 괴담은 인터넷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이다. 그곳, ‘남양 신경정신병원’을 다녀왔다.

지난 19일 오전,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시간이 가까워오자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정말로 기괴하고 음습하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앞섰다. 이곳을 다녀간 누리꾼들의 “절대 가지 마라” “으스스하다” “귀신에 홀린다” 같은 후기를 본 뒤라 더 그랬다.

지역민들 “나도 텔레비전 보고 알아”

그러나 웬걸.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조마조마한 마음은 “여기 맞아?”란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음산하기는커녕, 큰 아파트 단지와 상가만이 보였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신도시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한편으론 주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쁜 소문은 아파트 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내비게이션은 아파트 단지 뒤쪽을 가리켰다. 소규모 창고와 공장들이 나타났다. 한적했지만 그렇다고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변에 집들도 많았다. 곧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란 안내 음성이 자동차에 울려 퍼졌다. 차에서 내리자, “아 여기구나”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굳게 닫힌 철제문에는 “무단 침입과 가짜 뉴스에 법적 대응하겠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현수막 외에도 두어 개 경고판이 더 붙어 있었다. 이곳 땅 주인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이 갔다. 실제 병원으로 쓰인 폐건물은 출입구에서 700여m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입구에선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지 않았다.

전통적 관점에서 폐가란 해가 잘 들지 않고 환기도 되지 않아, 곰팡이 등이 잘 서식해 사람이 살기 어려운 조건의 집이다. 나무를 많이 썼던 과거, 집이 잘 썩었고 곰팡이와 습기의 영향으로 사람이 시름시름 앓았다. 하지만 이곳은 해가 너무나도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었다. 폐가 분위기도 아니었고, 돗자리 깔고 누워서 일광욕을 하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오히려 기자가 사는 서울 인왕산 기슭이 더 음산한 거 같았다. 허탈했다.

마침 산책하러 이 앞을 지나가던 동네 주민인 60대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혹시 이 병원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 들어보셨나요?” 말이 떨어지자 이 남성은 싱긋 웃으며 “한 3년 전에 이사 왔는데 텔레비전 보고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다 헛소문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동네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쓴다”고 말했다. 길을 지나가던 또 다른 50대 여성 주민은 “몇년 전에 방송에 한번 나온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찾아오더니 요즘엔 거의 찾는 이가 없다. 이제 좀 잠잠해진 거 같다”고 했다. 이 여성은 “최근 영화 개봉한다고 하던데 또 사람들이 찾아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괴담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편안한 마을이었다. 문에 걸려 있는 경고판이 제일 무서웠다.

영화 <곤지암>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시엔엔 보도로 유명세

곤지암 정신병원의 정식 명칭은 ‘남양 신경정신병원’이다. 1990년대 중반 폐업했다. 애초 이곳은 토착 주민들과 공포 체험을 즐기는 누리꾼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곳이었다. “원장이 환자들을 죽이고 자살했다”, “땅 주인도 행방불명이다”, “귀신이 나온다” 등 소문이 나돌았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곳과 다른 지방의 두곳(영덕 흉가 횟집, 제천 늘봄갈비)을 묶어 ‘3대 흉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일부의 소문이 ‘전국구’로 확산된 것은 2012년 10월 미국의 뉴스전문 채널 <시엔엔>(CNN)이 ‘지구상에서 가장 기괴한 7곳’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뒤부터다. <시엔엔>은 “지역의 소문에 따르면 미스터리하게 환자들이 죽어나갔다”고 보도했다. 곤지암 정신병원뿐만 아니라, 일본의 군함섬, 멕시코 인형섬, 체코의 세들레츠 납골당 등을 기괴한 7곳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 뉴스는 사실을 위주로 보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니라, 여행 분야의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가십성 기사였다. 으스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공포 체험 여행지를 소개하는 차원이었던 것이다.

보도가 나간 뒤로 인터넷 방송을 하는 비제이(BJ)들과 블로거들이 앞다투어 이곳을 찾았다. 공포 체험의 성지처럼 돼버렸다. 방송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종편의 프로그램 <이영돈 피디(PD)의 논리로 풀다>, <이야기 속 이야기 사사현>(엠비시) 등의 여름 납량 특집에 등장했다.

화제였던 만큼 ‘조회수’와 ‘시청률’ 올리기에 최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이곳을 체험한 영상이 1000건 넘게 등록돼 있다. 어떤 영상은 조회수만 수십만에 달한다.

곤지암 정신병원은 <시엔엔>(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기괴한 7곳 가운데 하나다. 시엔엔 누리집 갈무리
광주시 “괴담 근거 없다”…관광 부흥 기대감도

소문만 자자했지, 기자가 체험한 것처럼 곤지암 병원 터는 햇볕 잘 드는 작은 언덕일 뿐이다. 헛소문 때문에 골치를 썩는 건 관련 지자체다. 곤지암읍이 속한 경기도 광주시 관계자는 지난 1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귀신이니, 원장 자살이니 하는 것은 모두 낭설이다. 병원 폐업도 경영난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경찰 지구대를 관할하는 광주경찰서 생활안전과 관계자도 “곤지암 정신병원이 있는 지역에서 특별하게 신고된 사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직접 관련 부지의 등기부 등본을 열람한 결과도 이상할 것 없는 정상적인 토지였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소유권도 명확하고 이상할 것 없는 땅”이라고 말했다. 토지 소유주가 행방불명됐다는 것이 헛소문인 것은 최근 이곳의 소유주인 60대 홍아무개씨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사유재산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다”며 영화 <곤지암> 상영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낸 것만 봐도 증명된다.(21일 법원은 “명백히 허구의 내용을 담고 있는 공포영화에 불과할 뿐”이라며 홍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멀쩡하게 소유주도 살아 있는 정상적인 땅인 것이다. 한 매체에 따르면 병원은 홍씨의 부친이 1981년 부지를 사들여 1983년쯤 세웠고, 1997년 갑자기 문을 닫았다고 한다. 현재 홍씨는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배급사 쪽도 당황스러운 반응이다. 배급을 맡은 쇼박스 관계자는 “곤지암이란 지명 이름만 따온 것이다. 촬영도 부산 해사고 터에서 진행했고 100% 허구에 기반을 둔 영화”라고 밝혔다.

자신의 동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달가울 리 없지만, 영화 개봉을 계기로 관광객이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는 건 사실이다. 영화 <곡성>이 좋은 사례다. 영화 개봉 뒤 인구 3만명의 곡성군은 한해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전국적인 관광지가 됐다. 유근기 곡성군수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역 언론에 긍정적인 관점의 기고를 하면서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단 화제가 된 여론을 관광객 유치로 바꾼 역발상이 성공한 것이다.

곤지암읍의 한 식당 주인은 “어떤 이유든 관광객이 늘면 장사하는 입장에선 나쁘지 않다. 시에서 영화 개봉에 맞춰 여론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 관계자도 “관광자원을 어떻게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가 된 병원 터를 아예 관광자원화 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일본 야마나시현의 한 테마파크는 폐업한 병원을 활용해 ‘전율미궁’이란 유령의 집을 만들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기도 했다. 이곳은 한국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출연자들도 방문해 더욱 유명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곤지암 병원 터에 공포 체험장을 만들면 속칭 대박이 날 거다. 최근 공포를 활용한 마케팅은 관광업계에서도 큰 관심사다”라고 말했다.

곤지암/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정범식 감독. 쇼박스 제공
정범식 감독 “곤지암과 상생하고 싶다”

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을 지난 1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영화는 공포 체험을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7명의 남녀가 곤지암 정신병원에 가서 겪는 기이한 사건을 담고 있다. 정 감독은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해 <무서운 이야기>, <탈출> 등 개성 있는 공포영화를 연출해 주목받는 감독이다.

- 어떻게 <곤지암>을 연출하게 됐나?

“2016년 여름께 <내부자들>을 제작해 성공을 거둔 김원국 프로듀서에게 첫 제안을 받았다. 거기서 ‘페이크 다큐’(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제작하는 영화)로 가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마침 실험적인 영화를 찍고 싶던 차에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 연출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액션 캠을 이용한 1인칭 시점, 가상현실(VR) 영상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가상현실 영상을 상업영화에 쓴 건 최초가 아닐까 한다. 영화에 나온 99%의 영상이, 배우들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이 영상들은 막 찍은 것이 아니라, 모두 철저하게 배우의 동선을 짜서 나온 계획된 것이다. 촬영 분량이 일반 상업영화의 4배에 달했다. 한번에 15대의 액션 캠이 돌아간 적도 있다. 처음 해보는 시도였지만 만족스럽게 나온 거 같다.”

-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외국엔 <블레어위치>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유명한 페이크 다큐 공포물이 많다. 반면 한국에선 제대로 된 페이크 다큐 공포물이 없었던 거 같다. 우리도 이렇게 찍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계기로 한국에서 호러 장르를 ‘붐업’ 시키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 촬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연출부는 옆방에 있고, 배우들만 다른 방에 모여 촬영하는 방식이라 처음엔 배우들이 겁을 많이 냈다. 어두운 방에 자기들만 있으니까.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별로 안 무서워하더라. 나중에는 촬영 내용을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촬영에 임하게 했다. 공포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이상한 현상도 있었다. 테스트할 땐 잘되던 와이파이가 촬영만 시작되면 터지지 않는 거다. 원인은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소음 등을 차단하기 위해 방문을 꼭꼭 닫아서 그랬던 거 같다. 와이파이가 안 터져 실시간 모니터링을 영상이 아닌 소리로만 듣고 하는데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 영화 외적으로 실제 곤지암 병원 터와 관련된 이슈가 있다.

“앞서 말했지만, 허구를 기반으로 한 페이크 다큐이기 때문에 실제 곤지암 병원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실제 소유주가 불편하셨다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다. 잘 해결될 거라고 본다. 영화 <곡성> 개봉 뒤 곡성의 관광객 수가 크게 늘었다고 알고 있다. 영화 개봉을 계기로 곤지암이 콘텐츠를 가진 곳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본다. 곤지암과 상생하고 싶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곤지암

행정구역상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해당하는 지역이지만, 일반적으로 중부고속도 곤지암 나들목 일대를 칭함. 조선 중기 무신 신립의 묘 인근에 있는 큰 바위 곤지암(昆池岩)에서 이름을 따옴. 최근 곤지암 정신병원 괴담을 소재로 한 영화 <곤지암>의 개봉을 앞두고 ‘실검’(실시간검색어) 1위를 기록함.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