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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9 11:42 수정 : 2018.03.29 11:51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살면서 먹어본 가장 맛있던 디저트는 훈련소에서 먹은 초코파이였다. 그중에서도 나에겐 헌병 후반기 교육을 받던 육군종합행정학교 화장실에서 먹던 초코파이가 유독 생각난다. 사실 육군종합행정학교는 신병교육대와 달리 여가 시간에 담배를 태우거나 티브이(TV)를 보는 등의 자유가 보장이 되는 곳이라 굳이 숨어서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내무실은 10명이 사용했다. 그중 아홉 명은 육군이었고, 한 명은 해군이었다. 다들 건장해 키가 181㎝인 나는 왜소한 축에 속했다. 우리 내무실의 대표는 한 대학의 태권도학과를 다니다 온 동기로 키와 덩치가 우리들 중 가장 컸다. 하지만 얼굴은 갸름하니 예쁘게 생겼고, 목소리도 살짝 높은 편이라 위압감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농담도 잘하고, 웃기도 잘 웃어 다들 그를 좋아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내 초코파이 먹은 새끼 누구냐.”

관물대를 열어보던 그는 전에 없이 낮은 톤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당시 인기 많던 드라마 <올인>을 보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의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듣긴 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새끼가 내 초코파이 먹었냐고!”

그림 김보통

신경질적으로 관물대 문을 닫으며 그가 다시 한번 말했다. 조교가 들으면 안 되기에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고이 간직한 초코파이가 사라진 것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다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선뜻 이해 가지 않을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 배경이 군대라고 하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신병교육대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질 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단것’이 주는 기쁨은 비중이 매우 컸다.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 혹은 불교 신자로 살아온 사람이 이번 주말에 어떤 종교시설에서 더 많은 간식을 주는지로 손바닥 뒤집듯 개종을 하는 곳이니까.

“니가 먹고 까먹은 거 아이가.” 해군 동기가 말했다. 평생을 부산에서 자랐는데 수영은 잘 못한다고 했다.

“그걸 내가 까먹겠냐?”

‘태권도’가 말했다. 그렇지. 까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관물대에 고이 간직한 초코파이는 아마도 지난주 종교 행사에서 받아 온 것을 아껴둔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힘겨워도 내게는 초코파이가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을 것이다. 매일같이 관물대를 열어 변함없는 초코파이를 확인하며 든든한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나에게 친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어 자유를 박탈당한 채 욕구를 억누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들은 모두들 태권도의 초코파이의 무게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 결백했다.

“동기끼리 설마 훔쳐 먹겠냐? 그냥 잊어.” 이름이 ‘소령’인 동기가 말했다. 아직 이등병도 되지 않았는데 혼자 소령 진급했냐고 조교들이 매일 놀렸다.

“관물대 까 봐.” 태권도는 단호했다. 기어코 동기들의 관물대를 열어서라도 자신의 초코파이를 찾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한 듯했다.

“왜? 초코파이에 이름 적어놨냐?”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하얀 피부에 눈이 움푹 들어가 러시아인처럼 생겼던 것만 기억나는 동기가 말했다.

“적어놨어.” 태권도는 말했다. 모두가 정적에 잠겼다. 송혜교와 이병헌만이 떠들고 있었다. 아무도 웃지는 않았다. 태권도의 간절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윽고 모두 잠자코 관물대를 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태권도의 초코파이는 없었다. 저마다 숨겨놓은 초코파이가 하나씩 나올 뿐이었다. 서로가 비슷한 처지였다는 것만 확인했다. 태권도는 힘없이 “미안” 하고 말했다. 상심에 빠진 태권도에게 초코파이를 양보하는 동기는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고이 간직했던 초코파이를 추리닝에 숨겨 화장실에서 먹었다. 내무실에서 먹는 건 태권도에게 너무 잔인한 일일 것 같았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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