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3.29 11:54 수정 : 2018.03.29 15:59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옛 분당 메모리얼파크(남서울공원묘지) 안 ‘봉안당 홈’의 서가형 봉안단(안치단). 이병학 선임기자

라이프 레시피
화장률 83%…봉안당·수목장 시설 변화 바람
고인 위주 공간에서 유족 위한 휴식처로
서재·도서관 같은 분당 ‘봉안당 홈’ 눈길
양평 국립수목장림에선 캠핑페스티벌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옛 분당 메모리얼파크(남서울공원묘지) 안 ‘봉안당 홈’의 서가형 봉안단(안치단). 이병학 선임기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 <귀천> 끝부분)

누구나 온 곳으로 돌아간다. 부유한 이도 가난한 이도, 잘난 이도 못난 이도 소풍을 마치고 돌아간다.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으면 족한 것이다. 죽음은 가슴 아프고 두렵고 힘겨운 것이지만, 결국 남은 이들의 몫이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삶을 잘 마무리하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며 정리할 것 정리하고, 자신이 죽은 뒤의 일처리까지 미리 선택하는 일이다. 주변 일을 깨끗이 정리한 뒤, 영정사진이나 장례 방식 등을 스스로 고르고, 사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보낼 편지 등을 미리 작성해 놓기도 한다.

매장이냐 화장이냐의 선택은 죽음을 앞두고 본인이 선택 가능한 대표적인 장례 절차다. 봉분으로 남을 것인가, 납골 항아리로 남을 것인가, 한 그루의 나무로 남을 것인가.

화장은 이미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1994년 20.5%에 불과하던 화장률이 2004년 49.2%로 절반 가까이로 늘어났고, 2016년엔 82.7%를 차지했다. 화장이 보편화하면서 봉안당(납골당)이나 수목장을 포함한 자연장 방식과 시설도 다양해졌다. 특히 이런 시설들이 죽은 이만을 위한 공간에서 남은 이들을 더 배려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의 봉안당·수목장 시설들은 고인의 안식을 위한 시설에 치중해, 방문객을 위한 배려는 적었다. 무겁고 두렵고 찜찜하게 여겨지던 추모 공간이, 떠난 사람을 기억하며 편하게 쉬고,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휴식·치유(힐링)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봉안당 홈’의 외부 모습. 이병학 선임기자
‘봉안당 홈’의 본관 로비. 이병학 선임기자
지난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송파공원 ‘봉안당 홈’을 찾았다. 분당 메모리얼파크(옛 남서울공원묘지) 안에 최근 새로 들어선 봉안당 시설이다. 아파트 단지를 축소해 놓은 듯한 12개의 거대한 원형 탑이 이채롭다. 각각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타워형 봉안당이다. 본관 2층 로비는 고급 호텔 로비나 오래된 카페 분위기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둥근 서가에 진열된 책들과 고풍스러운 장식들이다. 마치 도서관이나 널찍한 서재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말 비영리재단법인 송파공원이 선보인 봉안당 ‘홈’이다.

“세계 최초의 서재형 봉안시설입니다. 기존 봉안당의 딱딱한 분위기, 획일화된 형식을 탈피해, 유족들에게 편하고 친근한 분위기로 다가가는 방식을 고민한 끝에 나온 시설이죠.”(송파공원 노상명 과장)

서가형 봉안단(안치단)에는 ‘하늘에서 바람 속에서’ 등의 제목이 적힌, 두꺼운 책들이 꽂혀 있다. 가죽 양장본 서적 형태의 유골함과 유품함이다. 기존 봉안당의 ‘유리 벽 속의 유골 항아리’와는 다른 형식이다. 고인의 삶을 한권의 책으로 담아내자는 뜻이라고 한다. 고인 1위마다 두권의 책이 제공된다. 유골함과 유품함이다. 유품함에는 고인의 사진, 고인의 손때가 묻은 안경·펜·휴대폰·반지 등 유품과 고인이 생전에 남긴 글, 고인에게 전하고 싶은 글을 적어 담을 수 있게 했다. 열쇠는 유족들이 보관하며 언제든 찾아와 열어볼 수 있다.

봉안당 홈’의 서가형 봉안단에 안치된 서적 형태의 유골함과 유품함. 이병학 선임기자
유품함에는 고인의 사진, 유품, 비망록 등을 넣을 수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본관 건물엔 무료 카페가 마련돼 있다. 차를 받아 들고 곳곳에 배치된 탁자·의자에 앉아 차분히 고인을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가방·와인·악기 들이 전시된 작은 가게 형태의 진열대도 있다. 방문객을 위해 수시로 전시물을 바꿔 선보인다.

고인을 모시는 시설이 남은 이들을 위한 휴식 장소로 변화하는 모습은 최근 빠르게 확산되는 수목장림에서도 나타난다.

나무 밑에 고인의 유골을 묻는 수목장은, 유골을 묻고 잔디로 덮는 잔디장, 꽃밭으로 장식하는 화초장, 바위 밑에 묻는 바위장 등과 함께 자연장으로 분류된다. 1993년 스위스에서 시작돼 세계 각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명패 외에 석물이나 팻말 등 시설물을 없애거나 최소화한다. 유골함도 흙으로 빚거나(토기) 나무, 부직포 등으로 만들어 시간이 지나면 고인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친환경 장사법이다. 전국 자연장 시설은 2011년 37곳에서 2016년 106곳으로, 5년 만에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양평군 양동면의 수목장림 국립하늘숲추모원. 산림청 제공
수목장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2014년 고려대 산학연구단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장사 방법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은 수목장(44.2%)이었고, 납골(봉안)이 37.0%로 뒤를 이었다. 선호하는 수목장 위치로는 자연풍치림(자연경관이 좋은 숲. 55.1%)을 가장 많이 꼽아, 도시 근교(19.2%), 연고지(16.3%)를 크게 앞섰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목장림 중 대표적인 곳이 산림청 산하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경기도 양평의 국립 하늘숲추모원이다. 국내 유일의 국립 수목장림이다. 전체 55㏊ 넓이에 48㏊ 넓이의 수목장림을 갖췄다. 추모목으로 지정된 것은 소나무·잣나무·굴참나무·산벚나무·층층나무 등 6315본이다. 이 가운데 4000여본은 이미 입주가 됐고, 나머지 2000여본을 가족목과 공동목으로 분양 중이다. 입주비(15년 이용)도 저렴해, 공동목이 나무와 위치에 따라 71만1000~73만5000원, 가족목은 220만5000~232만5000원이다. 처음 계약 기간은 15년이지만, 세차례 연장이 가능해 60년까지 이용할 수 있다.

국립하늘숲추모원의 산책로. 산림청 제공
개원 시기에 따라 11개 구역으로 나뉜 하늘숲추모원은, 유족들이 자연으로 돌아간 고인을 기억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쉬고 놀다 갈 수 있는 자연림 공원이라 할 만하다.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 산책로에 엠티비(MTB) 코스, 캠핑장(3.6㏊)까지 갖춘 휴양림이다. 지난해부터는 봄철에 국립 하늘숲추모원 캠핑페스티벌도 열고 있다. 건강, 힐링이 주목받는 시대에 발맞춰 수목장림을 방문객을 위한 레저 공간으로 개방한 것이다. 유족들로선 고인을 추모하면서 숲도 즐기는 1석2조의 나들이 코스로 떠오른 셈이다.

하늘숲추모원이 호응을 얻음에 따라 산림청은 2022년까지 국립·공립 수목장림을 5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들 시설에도 유족들을 위한 다양한 휴식 시설 및 야외활동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 우선 강원권·대전충청권·광주전라권·대구경북권에 1곳씩 국립 수목장림을 추가 운영하고, 공공기관이나 산림전문법인 등에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수목장림을 늘려갈 방침이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