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6 09:29
수정 : 2018.06.18 13:56
나는 떡볶이를 먹지 않는다. 떡집 아들이라, 떡이 공짜인 세상에서 나고 자랐기에 돈을 주고 떡을 사먹는 데 거부감이 있다. 이는 부모님이 떡집을 그만둔 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았다. 단지 그것 때문에 떡볶이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슬픈 사연이 따로 있다.
중학생 때였다. 학교 친구 셋이 집에 놀러 왔다. 우리는 ‘아무래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 누군가’라는 무익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 굳게 믿던 나이였다. 그 허망한 상상은 이후로도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집에는 팔다 남아 얼려놓은 떡들이 냉동실에 가득했지만, 아무도 내켜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떡을 먹다 보니 친구들도 물린 참이었다. 그래서 떡볶이를 사먹기로 했다.
마침 옆집 간판 가게 아주머니가 부업으로 좌판을 펴놓고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몇 번 사먹어 봤는데 맛이 좋았다. 당시만 해도 떡볶이를 곧잘 먹곤 했다. 종종 돈을 모아 떡볶이를 사러 갔다. 아주머니는 눈이 좋지 않아 매우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날은 안경에 김까지 잔뜩 서려 있었다. 평소보다 배로 많이 담아 주며 아주머니는 “맛있게 먹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희희낙락하며 돌아와 둘러앉아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떡볶이 맛에 감탄했다. 형이 숨겨둔 에로 영화 비디오를 찾아내 종종 시사회를 열던 친구는 “최근 먹어본 것 중에 최고다”라고 말했다. 그는 키가 큰 아이 중 하나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하얀 피부에 곱상하게 생겼는데, 여유증이 있는 듯 가슴이 고깔콘 모양으로 뾰족하던 친구는 “그러게, 어묵도 많이 들었네” 하며 동의했다. 그는 제법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낌새라 말했다. 머리가 심각한 직모여서 늘 고슴도치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듯했던 친구는 한술 더 떠 숟가락을 가져와 국물을 떠먹기 시작했다. 그는 꽤나 예쁘장한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말했는데, 키가 크며 공부를 잘하고 예쁜 아이는 동일 인물이었다. 결국 모두가 같은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던 것이다. 친구들은 착각에 빠진 채 숟가락을 들고 와 경쟁적으로 떡볶이 국물을 떠먹었다.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짐작도 못한 눈치였다.
그때였다. 고슴도치 머리의 친구가 말했다. “이건 뭐지? 콩인가?”
친구들은 먹던 것을 멈추었다. “떡볶이에 콩이 왜 들어가느냐?” “아냐, 봐봐” 그렇게 말하며 친구는 숟가락으로 콩 같은 검은 덩어리를 건져냈다. 정말 콩처럼 보였다. ‘맛의 비법이 콩인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콩이 딱 하나만 들어 있을까? 의문은 금세 풀렸다. 간단했다. 그것은 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파리네.”
파리였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숟가락 위에 올려진 양념 된 파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렇게 두꺼워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두꺼운 안경을 쓴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얗게 서려 있던 김 때문에 눈동자도 보이지 않던 안경. 그래서 떡볶이 통에 빠진 파리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잠시 동안의 침묵 후, 친구는 천천히 숟가락을 움직여 파리를 그릇 밖으로 덜어 내었다. 그러더니 “어차피 몰랐을 때는 맛있게 먹었잖아”라며 다시 떡볶이 국물을 퍼먹기 시작했다.
그 의연한 모습에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퍼먹고 깨달은 경지를 이렇게 깨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국 우리는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었다. 하지만 그 뒤로 다시 떡볶이를 먹은 적은 없다.
깨달음은 한번으로 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여자아이는 한 남자아이와 사귀기 시작했는데, 마찬가지로 키가 크고 공부를 잘하며 잘생긴 친구였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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