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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19 09:30 수정 : 2018.07.19 09:41

전시장 모습. 사진 이우성 제공

전시장 모습. 사진 이우성 제공
세 명의 친구가 여행을 갔다. 한 명은 사진가고, 또 한 명은 설치미술가고, 다른 한 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뭘 ‘크리에이티브’하게 ‘디렉팅’하는지 모르겠지만, 짐작하건대 세 명 다 창의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을 해온 것 같다. ‘삶’ 역시 그렇게 창조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고. 아무튼 셋이 여행을 갔다. 미국을 횡단하는 로드 트립! 길 위를 달리는 여행. 최종 목적지는 나이아가라폭포. 와, 그냥 이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문장 아닌가!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 떠났다고 하는데,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었을 것 같진 않다. 저마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여행 내내 그러한 이유들이 그들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 주머니 안엔 물음표가 가득 차는 법이니까. 그게 여행의 본질이겠지.

전시장 입구에 빨간색 네온사인 작품이 걸려 있다. ‘엑시트(EXIT)’라고 적혀 있다. 이 단어가 무엇을 환기하는지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였던 나이아가라폭포를 담은 영상도 입구 쪽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이 전시는 세 명의 친구가 자신들의 여행을 끝에서 시작으로 다시 돌아보는 과정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은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영상, 그리고 어떠한 순간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설치 작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찾아보면 알겠지만 이른바 ‘인증샷’ 찍을 공간이 많고, 다분히 관객 친화적이다.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사진 찍어서 개인 계정 ‘에스엔에스’에 올리러 가는 전시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외면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이 전시의 가장 명확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저 세 명의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있다. 여행 중에 느꼈을 감정들, 마음속에 간직한 비밀들을 차분하게 펼쳐 놓는다. 그들이 골라낸 것들이 무엇인지 곰곰이 관찰하다 보면 이 전시는 온전히 나의 이야기,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바뀐다.

이 전시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좋은 예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감히 판단하기에, 어떠한 위대한 작품도 우리 삶에 놓인 물음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 흔적보다 위대하지는 않다. 길 위를 지나 폭포를 찾아가는 내내 세 명의 친구들 혹은 그들 각각이 해야만 했던 고민들은 우리가, 우리 시대 청춘들이 사소하게 직면하는 크고 작은 난관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보고 이해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위로 받는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힘을 내!” 따위의 말이 아니라 “나도 너만큼이나 위태로워”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은 결국 끝이 나며, 우리 모두는 언제나 현실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행은 ‘환상’과 동의어가 아니다. ‘현실’이 ‘불행’과 동의어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이다.

세 명의 친구 목정욱, 이원우, 허재영의 여행 <엑시트(EXIT), 또 다른 시작>은 서울 한남동 디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에서 9월2일까지 계속된다.

이우성(시인·미남 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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