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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8 09:55 수정 : 2018.10.18 10:05

그림 김보통

보통의 디저트

그림 김보통
‘숨도’라는 곳이 있다.

서강대 옆 숨도 빌딩 1층에 있는 카페 이름이기도 하고, 7층에 있는 문화공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7층 숨도에 모두 세 번 갔다. 처음은 약 2년 전, ‘미소 서식지’라는 이름으로 공유 사무실을 여는데 개관축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갸우뚱했다. 내가 뭐라고 개관축사를 해달라는 것일까. 하지만 갔다. 부르면 간다. 나야 가는 이유를 모르지만, 부르는 사람에겐 이유가 있을 테니.

건물의 한 개 층이 통으로 트인 공간에 책상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회의실과, 통화를 할 수 있는 공간,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돼 있었다. 당시의 대표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길 바라 작가님을 불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이유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 어중간한 위치에 도달했으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이곳에서, 매일 매일 고통과 고뇌와 시련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과 후회를 겪으실 겁니다.” 강연 시작, 나는 말했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사람도 있었고, 피식 웃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 마세요.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모두 겪는 과정입니다. 시도와 실패는 보이지 않거든요.” 이후의 이야기는 시답잖다. 하지만 나는 전문 강연가도, 성공한 사람도 아니니 시답잖은 이야기밖엔 해줄 것이 없었다.

두 번째는 그 뒤로 일 년 뒤, 야심 차게 시작했던 ‘미소 서식지’가 문을 닫고 새롭게 ‘숨도 아카데미’로 문을 여니 역시나 개관 축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사이 대표가 바뀌어 있었다. “지난 번 매일 고난과 절망의 날들이 찾아올 거라고 했었는데, 정말 찾아오다니”하고 나는 말했다. 사람들은 “하하하” 웃었다. “다음엔 좋은 일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이상 마치겠습니다.” 박수와 함께 아쉬운 시간이 마무리 됐다. 돌아오는 내내 ‘이번엔 잘 됐으면’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지난 주, 세 번째로 숨도를 찾았다. 숨도 아카데미가 곧 영업을 종료하기에 폐관 기념사 비슷한 것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전에 만났던 대표는 “모두 제 탓인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일 년 전의 야심만만하던 표정은 조금 사라진 채였다. 어떤 날들을 보냈을까. 나로서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나부터 매일 고뇌와 절망 속에 하루를 보내느라 헤아릴 여력도 없었다.

“숨도에 올 때마다 망하는 바람에 오는 게 두렵습니다.”

이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은 뒤 당황하던 사람들은, 내 말에 조금 웃었다. “하지만 우리가 망하는 건, 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인 거지 우리 탓이 아니에요. 미디어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 싱글싱글 웃으며 노력해서 성공했다 말하지만 마이크가 쥐여 줘야 하는 건, 그럼에도 망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이에요. 정말 망한 건, 평범한 노력으로는 살기 힘든 우리 사회예요.” 장장 한 시간 반 가량 이어진 횡설수설의 끝. 나는 말했다. “여러분. 우리 아무렇게나 살아, 아무거나 됩시다. 그리고 어디선가 꼭 만나요. 앞으로도 소소하게 망하고, 소소하게 살아갑시다.” 이 말을 할 땐 울고 있었다. 무언가가 되지 못해, 이루지 못해 지금도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수많은 아무개가 떠올라 자꾸만 눈물이 났다. 글로는 멋지게 썼지만 질질 울었다. 그래도 그 말이 하고 싶었다.

강연이 끝나고, 가뜩이나 튀어나온 붕어 눈이 더 부은 상태로 있는 내게 오늘을 위해 제주도에서 반차내고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한 분이 선물을 주셨다. 공항에서 산 과자라고 했다. 집에 와 까보니 포장지엔 마카롱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름은 아망테(이탈리아 아몬드 쿠키)였다. 게다가 모양은 마카롱도 아망테도 아니었고, 먹어보니 마거릿 같은 식감에 두 종류의 크림이 들어있었다. 맛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정말로 아무래도 상관없다. 숨도 아카데미는 그렇게 문을 닫는다. 역시 상관없다. 우리는 모두 아무나 되어,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것이니까.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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