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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윤(20)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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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쓰배서 이창호 이기고 첫 우승
소년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공부하자’며 바둑을 접었다. 그 길로 갔더라면 한국 바둑의 차세대 간판 대신 평범한 대학생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운명의 계시였을까? 시험삼아 1년 만에 출전한 어린이바둑대회 우승이 인생을 바꿨다. 스무 살이 된 청년은 세계기전 첫 제패로 바둑천하를 다투는 영웅들의 쟁패에 본격 합류했다.
중원싸움 즐기며 뒤집기 잘해
정체불명의 ‘UFO 바둑’ 별칭
‘국내용’ 꼬리표 단 3위 톱기사
“이제 부담감 털고 바둑 둘 것”
가장 오랜 국제기전인 후지쓰배 우승(6일)을 일군 강동윤(20) 9단을 지난 10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곱게 자란 티가 완연한 미소년의 얼굴은 밥 먹듯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승부사 같지가 않다. 상대의 아픈 약점을 ‘콕콕 찌르고’, ‘난해한 수’로 정신을 빼놓는다는 그의 기풍은 깃털 속에 숨겨둔 ‘칼’일 것이다. 세계기전 첫 타이틀을 딴 소감을 묻자, “덤덤하다”고 한다. 전화로 통화한 어머니는 “농담도 잘하고, 잘 웃긴다”고 했다. 본인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간혹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계했다.
내면이 깊은 강동윤에게도 17살의 이창호 9단, 19살의 이세돌 9단이 이룬 국제대회 첫 우승을 20살에 해낸 기쁨이 크다. 상금 1500만엔(1억9000만원)을 챙겼기에, “요즘 동료 기사 만나면 밥값은 내가 낸다”고 말했다.
국내 랭킹 3위의 톱 기사임에도 ‘국내용’ 꼬리표가 붙어 마음이 상했지만, “이제 부담감 없이 편하게 둘 것 같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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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윤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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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를 꼭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판단을 위해 가장 적절한 수준까지만 한다”고 설명했다. 효율과 결합한 헷갈리는 바둑, ‘정체불명의 유에프오(UFO) 바둑’(권갑용 사범의 말)을 두기에 ‘외계인’이라는 별칭이 딱 어울린다.
강동윤은 후지쓰배 우승 소감에서 “5살 때 바둑을 시작하면서부터 존경해온 이창호 사범을 물리쳐 기쁘다”고 했다. 정말 그는 큰 산을 넘었다. 한번 물꼬를 텄기에 우승 사냥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8월 예정된 한-중 천원전 대결은 위상이 달라진 강동윤의 첫 국외 나들이다.
강동윤은 “우승 뒤 성적이 나빠지는 기사도 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성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도도한 물결을 탄 스타 기사의 자신감이 단아하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사이버오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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