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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에게 한국야구의 매운 맛을 보여준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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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있다. 양국의 최고 지도자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둘러싸고 감정적 차원에서 가시돋힌 설전을 벌이고 있다. 양국 우호를 상징하는 정상회담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이다.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 영유권 분쟁 등의 요소가 어우려져 형성된 냉기류이다. 또 북한과 대북정책에 대한 인식차이도 양국의 간격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비정부차원의 우호는 괜찮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를 계기로 활성화한 민간차원의 교류는 정치적 알력에도 상승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 양국을 오가는 사람의 수가 1만명을 넘은 지가 오래 됐고, 3월1일부터 시작한 한국 사람의 일본 입국비자 면제 조처는 양국사람의 왕래를 더욱 촉진할 것이다. 겨울연가(일본에서는 `후유노 소나타)와 대장금으로 일어난 한류 문화 열기와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일관계는 위에는 차고 밑은 뜨거운 `비엔나커피'와 같은 꼴이다.
그러면, 2006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3번이나 맞붙은 한-일야구 대결은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나의 답은 `좋은 영향을 준다'이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야구를 우습게 알았다. 마치 축구에서 한국이 일본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축구과 한국과 거의 막상막하의 경기력을 가지고 있거나 오히려 더 위의 실력이 있는 지금도 일본 축구가 한국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한국에 고비고비마다 엄청나게 당한 역사가 있는데다가 아마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한국이 전국민의 열광적인 응원물결 속에 4강에 진출한 데 비해 일본은 16강에 머무른 것도 이런 인식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축구와는 달리 야구에서만은 한국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만하다. 일본이 프로야구를 도입한 것은 한국보다 46년이나 빠른 1935년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가 `30년 동안 다른 나라가 우리를 못이기도록 하겠다'고 한 발언이 결코 무리가 아니다. 또한 지난해 기준으로 따져 볼 때 일본의 고교야구팀은 4137개인데 비해 한국은 겨우 57개에 불과하다. 일본은 인구 2만명 이상의 시에는 정규 야구경기장이 설비돼 있다. 한국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농구와 축구를 하고 논다면, 일본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야구 배트와 공을 가지고 논다. 7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좋아하는 야구스타가 있을 정도로 야구는 일본의 국민스포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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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2차례나 한국에 진 뒤 `fuck'이라는 쌍욕을 내뱉고 있는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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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한국대표팀이 일본대표팀을 2번이나 뭉개버렸으니, 그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는가? 그것도 제대로 된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진정한 대표팀의 대결에서 말이다. 두 번 연속해 진 뒤 일본야구의 자존심인 스즈키 이치로가 `내 야구인생에서 최대의 치욕'이라고 말하고, 도전자의 입장에서 꼭 이기겠다고 칼을 간 것은 이런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일야구 대결은 일본야구 관계자들 뿐 아니라 일본 사회가 한국의 야구를, 더 나아가 한국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을 경쟁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았던 일본 쪽은 한국에 두 번이나 패하자, 한국 야구의 힘을 분석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언론들도 한국이 어느덧 일본야구의 목밑까지 따라왔다면서 `등잔 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허술함을 자성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한-일야구 대결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데이터와 치밀한 작전을 중시하는 야구에서 치밀한 경기운영과 무실점의 완벽 수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팀의 단결력을 보여준 한국팀의 능력은 그대로 한국인, 한국제품에 대한 그것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한-일야구 대결 이후 세계 일류 수준에 있는 삼성전자의 휴대폰이나 현대차의 자동차가 일본에서만 잘 팔리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 분위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한-일 야구 대결이 양국 국민들이 보다 상대편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보다 깊게 아는 기회를 마련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는 긍정적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서로가 상대방을 선의의 경쟁자로 의식하면서 서로의 실력을 벼르는 자세로 임한다면 두 나라가 가까이 있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발전의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우리도 한-일대결에서 3번 싸워 2번 이겼으니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겼다거나 이상한 대진방식의 희생양이라는 점만 강조하기보다는, 일본의 야구에서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되새기며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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