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3.25 18:01 수정 : 2006.03.25 18:01

공자의 말씀 중에 삼인행이면 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특별하게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위에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배울 만한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하물며 배울 만한 사람을 찾아 다닌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널려 있는지 모른다. 가까이서 찾지 않고, 있는 사람도 내치는 풍조가 문제이지, 정말 찾아서 배울 사람이 많다.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의 선전을 계기로 인화를 앞세운 김인식의 리더십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김인식 감독 외에도 우리 사회가 본 받아야 할 스포츠계 감독들이 많다. 그중의 한 사람이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한새팀의 감독인 박명수(44)이다.

박 감독은 2001년 우리은행(당시 한빛은행) 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2006년 겨울리그까지 10번의 정규리그(겨울, 여름/2004년은 아테네올림픽 때문에 여름리그가 없었음)에서 모두 4차례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일궈냈다. 특히 2003년부터는 6번의 리그에서 4차례 우승과 1차례 준우승을 거두는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가히 `우승 제조기'라고 할 만하다.


그를 만난 것은 단 한 번도 하기 어려운 리그 우승을 그렇게 자주 하는 데는 무언가 특이한 점을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고, 25일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우리은행체육관에서 인터뷰를 했다.

정말 그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

첫째 그는 `남보다 먼저'를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려면 자기가 먼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 감독으로 부임해 선수들을 모아놓고 "사람은 1.생각도 없고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 2.생각은 있으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3.생각도 있고 행동도 하는 사람의 세 부류가 있다"면서 "나는 세번째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일성을 던졌다고 한다. 또 집에서는 못질을 안 해 어디에 못이 있는지 모르지만, 체육관 안에서는 자잘한 못의 위치도 모르는 게 없다고 한다. 남보다 생각이 앞서고 행동도 앞서니 다른 사람이 안 따를 수가 없다.

둘째, 그는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전문 분야는 전문가에게 믿고 맡긴다. 처음 사람을 믿기는 어렵지만, 이 사람이다 싶으면 그 사람에게 전적인 권한을 주고 믿는다. 우리은행 선수들은 체력이 강하기로 유명한데, 이는 국가대표 단거리육상 감독 출신의 이준 체력담당 고문을 영입해 그에게 체력 및 재활훈련을 전담하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고문 외에도 코치 2명, 트레이너, 매니저, 통역, 홍보, 체육관 관리인 등 10여명의 보좌를 받고 있지만,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기보다 이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줘 체계적으로 일이 이뤄지도록 관리만 한다.

세째,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는 "남과 같아서는 이길 수 없다"면서 항상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그의 노트북에는 무려 200여가지의 전술 패턴이 그림으로 기록돼 있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지만, 엑셀을 익혀셔 저장해 놨다고 한다. 또 이를 출력해 노트에 붙여놓고 연습에 이용한다. 그의 책장에는 2004 아테네올림픽 때 찍어온 각국 대표팀의 경기 시디가 100여개 있다. 그것을 틈만 나면 보면서 연구하는데 벌써 5번 이상씩 봤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WNBA, 국내 경기도 모두 비디오 등을 구해 본다. 체력훈련, 전술 등에 대한 외국서적도 항상 찾아보고 메모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의 이런 학구열은 운동선수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그가 중고교에서 운동을 할 때부터 몸에 밴 것이다. 그는 중고교 때 운동이 끝나면 꼭 수업에 참여하려고 했고, 대학 때도 놀려는 친구들을 몰고 강의실에 가곤 해 `공부하는 운동선수'로 알려졌다고 한다.

네째, 과학적이고 합리성을 중시한다. 우리은행체육관에는 남자프로팀도 부러워할 정도의 훌륭한 체력훈련실과 재활실이 있다. 그는 체력을 중시하는데, 그냥 `100바퀴 뛰어!'식의 무대뽀 체력훈련이 아니다. 농구선수에 맞는 순발력, 근지구력 등 다양한 근육훈련을 포함한 과학적인 훈련을 한다. 특히 이준 고문이 이끄는 재활은 일본선수도 찾아와 재활을 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 이 때문에 중고교 선수들에게 `박 감독 밑에서 3년만 버티면 경기를 뛸 뿐 아니라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고 한다. 그의 농구에 대해 일부에서는 `체력농구'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그는 "운동의 3요소인 체력 정신력 기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임을 숨기지 않는다. 체력이 강하면 정신력이 강해지고, 그래야 비로소 기술이 붙는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다섯째, 그는 선수 기용을 하면서 이름보다 연습 참가도를 중시한다. 한 예로, 이경은이라는 유망주가 있는데, 고교 졸업식 때문에 연습을 쉬고 친구들과 놀겠다고 해 `연습에 안 나오는 것은 자유지만 경기에는 기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다음 날 경기에 기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습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거나, 감독의 방침에 반발하는 선수는 에이스라도 기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또 모든 포지션을 2명 이상씩 경쟁체제로 만들어 서로 열심히 하도록 자극을 준다.

여섯째, 연습은 심하게 하지만, 실전은 자율을 중시한다. 그는 연습 때 스스로 준비한 200여가지 패턴을 부지런히 적용해 연습을 시킨다. 하지만 정작 경기 때는 패턴보다 자율을 중시한다. 그는 패턴은 상대에게 읽히면 막히지만, 선수가 그때그때 발휘하는 창조성은 막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수한 패턴 연습은 경기에서 창조성을 뽑아내기 위한 과정의 의미인 셈이다. 그는 경기에서는 선수들에게 첫째 속공, 둘째 제2공격, 세째 자유공격, 네째 포메이션, 다섯째 패턴을 하도록 주문한다고 말했다.

일곱째, 카리스마를 발휘하려면 철직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농구판에서는 `평생 여자팀 감독이나 해먹어라'가 큰 욕이라고 한다. 그만큼 까다롭고 예민한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선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칙을 가지고 선수를 따라오도록 하면 됩니다." 그만큼 나의 원칙이 확고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도 마음고생이 많다. 연대와 고대, 아니면 현대 삼성 출신이 아니면 `서자' 취급을 받는 농구판에서 그는 비주류인 경희대 출신이다. 더구나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시기와 질투가 배로 돌아온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팀을 가고 싶었는데, 자기보다 실력이 아래인 연고대 출신에 밀리는 것을 보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역설적으로 농구판의 비주류이기 때문에 더욱 강해졌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슬프다.

이름과 끈이 아니라 실력이 인정받는 사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선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이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