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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01 23:34 수정 : 2006.04.02 00:04

개막전에서 130미터짜리 홈럼을 치고 볼을 쳐다보는 이승엽.

이승엽이 첫단추를 잘 뀄다. 일본 최고의 인기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긴 뒤 3월31일 벌어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개막전에서 솔로홈런을 쏴 올렸다. 퍼시픽리그의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꿰차지 못했던 그가 주전 1루수에 4번타자로 나와 2타수 2안타, 3타점, 5득점을 올리며 최고의 출발을 했다. 1934년 창단한 요미우리자이언츠 팀에서 외국인으로는 3번째의 4번타자(70대)로 기용된 것이 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요미우리로서도 이승엽 덕분에 5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맛봤다. 일본의 일부 스포츠신문에서는 벌써부터 이전에 외국인 4번타자(1981년 로이 화이트, 87년 워렌 크로마티)가 있었을 때 개막전을 이기고 리그 우승까지 갔던 역사를 끄집어내며 `올해 자이언츠의 승리는 떼어놓은 당상'이란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안심하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에 들떠서도 안 된다. 냉정하지 않으면 `첫끝발이 개끝발'이 될 수 있다.

먼저 야구팬의 절반 이상을 팬으로 가지고 있는, 사실상의 일본 국가대표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왜 이승엽을 4번타자로 기용했는가를 생각해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요즘 상업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프로축구와 케이원에 젊은 층이 몰리면서 야구 인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 더구나 마쓰이 히데키, 스즈키 이치로 등의 스타들이 대거 미국의 메이저리그로 빠져나가면서 야구인기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 중계=대박'이라는 공식도 몇 년 전부터 깨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를 중계만 해도 20%이상의 시청률(일본은 민방이 5개이므로 20%는 엄청난 시청률임)을 쉽게 기록했다. 따라서 광고수입을 올리려는 방송사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중계권을 따려고 줄을 섰고, 이를 요미우리신문의 계열방송인 <니혼테레비>가 독점하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최근에는 20%를 넘는 경우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조락했다. 올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픈게임 관객 동원도 예전의 2~3만명 대에서 뚝 떨어져 1만명 대가 태반이었다.

이승엽이 개막전 수훈선수 인터뷰를 마친 뒤 관중석에 마스코트를 던져주고 있다. 왼쪽 옆의 선수가 같이 수훈선수로 뽑힌 우에하라 고지 투수.

여기서 시장 상황을 반전시켜줄 카드로 이승엽이 등장했다. 그가 잘 난 것도 있지만, 이 시점에 그를 이용하면 장사가 더 잘 될 것이라는 판단이 더욱 앞섰다고 봐야 한다. 오 사다하루 일본야구대표팀의 홀런기록(1시즌 55개)를 깬 `아시아 홈런왕(56)이라는 상품성은 이미 롯데 머린스에서 소진됐다. 또 일본 야구인들은 이승엽의 56개 홈런을 구장의 조건, 투수의 실력 등을 감안해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승엽은 시즌 오픈 전에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5개의 홈런과 10타점을 올리며 홈런, 타점 2관왕에 올랐다. 이승엽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라 다쓰나리 감독이 그를 4번타자로 시키겠다고 한 것은 WBC에서 이승엽의 활약과 맞물려 있다. 더구나 이승엽의 홈런으로 일본이 역전패한 쓰라린 기억을 일본 야구팬이라면 다 가지고 있다. 단박에 일본 전국구 인물로 떠오른 이승엽을 내세우면, 그가 잘 하든 못 하든 장사는 되겠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이승엽이 잘 하면 잘하는 대로 요리우리 자이언츠가 선택을 잘 한 것이 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일본의 훌륭한 투수가 이승엽을 잘 요리했다고 일본 팬들이 자위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카드로 떠올랐다고나 할까?

둘째는 잘 하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꺼뻑 죽지만, 못하면 사정없이 내치고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 일본의 문화이다. 한마디로 일본 사람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속성르 가지고 있다. 한 예를 들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축구 예선 때 일본 축구전문가들의 반응을 보자. 이들이 일본이 잘 나가던 초반에는 한국보다 일본이 한 수 위라고 하다가, 한국의 진출이 먼저 확정되는 순간 "한국이 먼저 가는 것은 당연하고, 일본이 2위라도 해서 가야 한다"고 주저없이 물러섰다. 이승엽도 롯데 머린스 시절에 이미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2군행이라든가, 엔트리 제외 등을 통해 이런 문화를 조끔은 맛봤을 것이다. 요미우리 구단은 이승엽이 계속 좋은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롯데보다 훨씬 가혹하고 가차없이 내칠 것이다. 어제 성적이 좋았다고 오늘도 내일도 잘 해주겠지라는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더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그동안 한국 야구선수들의 무덤이었다.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등이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돌아왔다. 한 재일동포는 "요미우리는 한국에서 제일 잘 하는 선수를 데려다가 2군에 두거나 기용하지 않는 것을 즐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제일 훌륭한 선수가 요미우리에서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칫 삐걱하면 이승엽도 그와 같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세째는 야구는 1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한 시즌에 146경기를 치른다. 그 과정에는 골도 있고 산도 있을 것이다. 골이 생길 때는 엄청난 비난이, 산에 올라갈 때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칭찬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복없이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이다. 시작이 좋으니까 끝도 좋을 것이라고 자만하거나 느슨해지면 곧 반격이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 사람들은 이승엽을 통해 한국야구의 우수성을 인식하려고 하기보다 이승엽을 격파해 일본야구가 한국야구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이승엽이 첫 경기에서 잘 했으니까, 이승엽을 쓰려뜨리기 위한 각 구단의 연구와 분석이 더욱 철저해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종범의 경우처럼 빈볼을 던지는 등 추악한 전술도 쓸 것이다.

이런 도전을 견디느냐 못견디느냐는 오롯이 이승엽의 몫이다. 일단 이승엽이 첫 경기 이후 자만하지 않고 겸허한 자세를 보인 것은 좋은 자세이다. 다만, 인터뷰에서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하라 다쓰나리, 마쓰이 히데키 등을 거명하며 "요미우리의 역대 4번타자를 욕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한국인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킨 장훈을 거명하지 않은 것은 불만이다.

이제 이승엽은 일본 야구의 한 복판(도쿄돔)에 섰다. 그것은 롯데 머린스 시절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무대이다. 한마디로 일본야구팬의 절반 이상이 하루하루 그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본다고 보면 된다. 한국야구의 자존심 뿐 아니라 한국의 자존과 우수성을 일본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승엽은 긴장을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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