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26 13:59
수정 : 2006.04.26 14:08
|
지난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장 전광판에 나타난 박찬호선수의 소개.
|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선수의 선전을 기원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 이제 선발 세경기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박찬호 선수가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즌을 시작했다고 보여집니다. 8과 2/3이닝 9안타 4실점이면 패전이라 아쉽지만 의미있는 성적입니다.
게다가 보치 감독이 박찬호 선수를 믿어준다는 것을 그나마 희망적으로 보고 싶군요. 9회에 박찬호를 다시 올렸다는 것은 박찬호에게 신뢰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지만요. 2003년 아메리칸리스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끝까지 페드로를 믿었던 그래디 리틀 감독(현 LA 다저스 감독)이 아직도 그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어쨌거나 샌디에이고로서는 박찬호의 부활이 절실한 시점이죠.
완투를 놓친것도 아쉽지만 5회 에스트라다에게 맞은 2루타로 2실점 한 것이 계속 아쉽군요. 한 점 정도로 막았으면 훨씬 재미있는 승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짧은 희생플라이를 경계해서 그랬는지 외야수들의 위치가 조금 앞쪽이었던 같습니다. 역시 포수가 잘 치는 날은 이기기 어렵지요.
물론 앞선 타자 션 그린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준 장면도 아쉬웠고(오늘 허용한 유일한 볼 넷이기에 더욱 더!), 초반 득점의 찬스에서 병살타 두개로 무너진 공격진도 아쉽고, 이즐리의 오심도 아쉽고, 투수인 브랜든 웹에게 마지막 안타를 맞은 것도 아쉽습니다. 9회 무사 1, 2루에서 진루타 하나 못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조심스럽게 올해 박찬호 선수의 성공을 예측(?)했었습니다. 나름대로 올해는 좀 좋아지지 않겠는가 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결혼이라는 심리적 안정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동안 지켜본 바로는 박찬호 선수는 상당히 섬세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파워 피처였음에도 힘으로만 윽박지르는 스타일 (대표적인 선수가 왕년의 최동원)은 아니었죠. 심리적으로 몰리면 제구가 흐트러지고 가끔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결혼 이후, WBC와 최근의 경기를 보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여유로움이 보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중압감, 고액연봉을 받았지만 몸값을 못한다는 비난, 이런 심리적 부담을 덜고 가족과 올해 태어날 2세를 위해 조금은 즐길 수 있는 마음으로 공을 던진다면 아마 더 좋은 성적을 내지 않을까 합니다.
두번째는 박찬호 선수가 아주 대표적인 슬로우 스타터라는 점이지요. 박찬호 선수의 2004년까지의 월별 승수를 보면 대충 패턴이 나타납니다.
5월 14승12패
6월 14승11패
7월 15승9패
8월 16승10패
9월 18승14패
결국 시즌 시작 3개월 정도 후에 몸이 최고조에 올라오고 마지막에는 약간 지치는 느낌이죠. 박찬호의 전성기라고 불리웠던 1997년부터 2001년까지만 놓고 보면 7월 성적 15승 7패로 승수가 패수의 두배가 넘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WBC가 있었던 덕분에 훨씬 일찍 몸을 만들었죠. 거의 시즌 시작이 3월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렇다면 발동이 걸리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죠. 문제는 체력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물론 걱정되는 점도 있습니다. 제일 큰 걱정은 마이크 피아자의 샌디에이고 입성인데, 포수로서는 물론이고, 타자로서도 상대 투수에게 주는 약간의 심리적 효과이외에 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파워 피처에서 기교파(?)로 변모해가는 박찬호에겐 여러가지로 불리합니다. 지난 아틀란타전에서 아담 라로쉬의 몸에 맞는 공을 알아채지 못한 것도, 그리고 공을 제때에 잡지 못하고 더듬어 1실점을 준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죠.
또 한가지는 바로 위에서 말한 기교파로의 변신, 즉 파워 피처로서는 이제 힘이 부쳐보인다는 점이죠. 아직까지 90마일 초반대(150km)까지는 던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과거의 박찬호를 기억하는 팬으로서 예전의 파워 피칭을 보기는 어렵더군요. 게다가 기교파-아직 기교파로 변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로의 변신을 꾀한다면 매덕스의 제구력이나, 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 하다못해 과거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의 호시노 노부유끼의 "아리랑 볼"같은 확실한 무기라도 있어야 하거든요.
오늘도 5회의 2안타 2실점이 모두 2루타였지만 유난히 올해 장타와 외야 플라이가 많은 것 (첫선발이었던 아틀란타전 7안타중 5안타가 장타였고 오늘도 8회까지 6안타 중 3안타가 2루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제 박찬호 선수가 그동안 (풀타임 선발투수로 10년, 메이저리그 진출 13년) 대한민국 공인 국가대표 메이저리거로서의 중압감을 털어버리고 즐기면서 야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마 그게 박찬호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의 투구를 지켜보는 팬들도 더 이상 한국 대 미국의 국가대표 대항경기가 아닌 한 선수의, 또는 한 팀의 팬으로서 경기를 지켜보고 성원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시 한 번 박찬호 선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