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07 16:21 수정 : 2006.06.07 16:21

이순철 감독

엘지 트윈스, 결국 이순철 감독이 사임하고 양승호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남은 06 시즌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해태 시절부터의 타이거즈 팬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엘지 트윈스 팬들이나 트윈스 선수들에게는 잘 된 일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젊은 타자들과 투수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충격적이라고 할만한 내용의 현수막이 잠실 응원석에 걸렸고, 그 충격의 여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이순철 감독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2년 6개월만에 감독에서 물러납니다. 해태시절부터의 타이거즈 팬으로서는 '인간 이순철'이 욕을 먹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안타깝고 아쉽지만, 그냥 야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인 나는 '감독 이순철'을 옹호하기는 어렵습니다.

팀의 주축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선수단 장악을 위해) 갖가지 명목으로 밀어내어버린 것은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이야기고 일단 이분은 감독직을 수행하는 마인드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프로야구 감독은 'manager'입니다.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영어로 코치라고 쓰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만을 볼 것이 아니라, 몇달 단위, 몇년 단위의 긴 안목을 가지고 팀을 운영해야 하는 '운영자'가 프로야구 감독인 것입니다.

엘지 트윈스 전 감독들 중, 이광환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사의 '업적(?)'을 남겼는데요. 그것은 스타시스템, 특히 '투수 분업화 시스템'의 정착입니다. <선발-셋업맨-마무리>의 시스템이죠. 요즘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 시스템은 80년대 말 까지만 해도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동열의 무적 해태를 상대하며 혼자 15이닝을 막아낸 박충식의 전설은 지금도 전율을 일으키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이건 당시의 프로야구의 후진성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젠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프로야구에선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고교야구에선 아직 이런 일은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 같군요. 정영일의 경우를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현재 프로야구의 '팀 운영'의 기본 모델을 제시한 사람이 전 엘지 감독인데요. 그때 이후 중간계투와 마무리투수의 운용은, 한 시즌 더 나아가 몇년을 생각하는 팀 운영에선 정말 중요하고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전성시대의 투수혹사는 선발투수의 투수혹사였다면, 90년대 이후 최근 한국프로야구의 투수혹사는 불펜투수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김응룡, 김성근, 김인식 등 원로 명장급 감독들이 늘 지적받는 부분이 이것인데, 불펜투수의 혹사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감독은 아직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싶습니다.

기아 타이거즈의 현 서정환 감독도 투수혹사로 악명이 높았던 분인데, 임창용의 삼성 시절, '애니콜'이라는 별명을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 없지요. 그러나 2006 서정환은 90년대의 일에서 학습효과를 얻었는지, 세심하게 투수들을 관리해주고 있습니다. 서감독은 지금의 임창용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쩌면 그도 안타까워하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제는 80~90년대식으로 투수들을 굴렸다간 팬들이 가만있지 않지요. 이제는 팬들도 선수들도 지도자들도 과거와는 마인드가 다릅니다.

과거와 다른 마인드, 이것은 투수운영 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케미스트리에도 관련된 이야기가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 해태식' 관리는 좋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습니다. 타이거즈 팬들도, 과거 해태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해태식' 팀 운영을 바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응룡씨가 감독에서 물러나고 사장으로 앉았을 때, 저는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는 상징 비슷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엘지 트윈스의 감독 이순철씨는 'manager'로서의 태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팀 전력이 약하다면, (무리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다양한 작전들로 성적을 적당히 괜찮게 유지하고, 트레이드로 약점을 보완하면서 길게 보면서 팀 리빌딩을 진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팀 리빌딩이라고 해서 나이든 선수들을 전부 내보내고 젊은 선수들로 채워넣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늘 중요한 것은 짜임새입니다. 아무리 포텐셜이 좋은 선수들을 채워넣는다고 해도, 경험을 전수해 줄 중고참급 선배 선수가 없어서는 곤란하고, 팀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독려해줄 고참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프랜차이즈 스타의 가치는, 팬들의 지지도와 인기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현재 기아 타이거즈는 차근차근 팀 리빌딩을 해나가고 있는 모습이라 보기에 좋습니다.

감독 이순철은 팀 리빌딩에 실패했습니다. 리빌딩은 개혁이어야하지 급작스런 혁명은 아닙니다. 애초에 리빌딩을 시도하긴 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만, 이상훈, 유지현, 김재현 등 엘지 트윈스의 오랜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좋지 못한 모습으로 보낸 것, 그리고 (능력이 검증된) 김용수 코치를 자신의 팀 장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밀어낸 것 이런 일들은 애초에 자신 나름대로 '팀 관리'를 위해 벌인 일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고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고, 결국엔 안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지난 2년 6개월간, 감독 이순철은 성적으로도, 성적 아닌 다른 부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도 많은 프로야구팬들이 기억하고 있을 일이지만, 우규민 선수가 타구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을 때 감독 이순철은 그저 덕아웃에서 팔짱만 끼고 보고 있었습니다. 많은 타 팀 팬들이 '좋은 선수다', '탐나는 투수다'라고 칭찬한 젊은 유망주 우규민, 그러나 엘지 트윈스 감독 이순철은 '투수도 아니다'라고 혹평한 그 우규민입니다. 그때 많은 엘지 팬들, 많은 야구팬들은 어이없어하고 황당해했습니다. 선수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즉시 병원으로 보내야 마땅한 일인데도 우규민은 다시 공을 던졌습니다. 선수가 던지겠다 해도 감독은 선수를 강제로 병원에 보내야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우규민을 '투수도 아니다'라고 혹평한 이순철은 '이순철 너는 감독도 아니다'라는 비난을 들어도 마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규민은, 06 상반기 이순철이 가장 열심히 등판시킨 불펜투수입니다. 일단 구위가 좋은 투수이니까요. 그런데, 구위가 좋은 불펜투수라고 해서 이길 때나 질 때나 등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젠 야구팬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불펜 투수의 운용은, 승리계투조와 패전처리조가 따로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순철 감독의 투수운용은, 이 상식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한 경기에 투수 대여섯명 나온 경기가 숱하게 많고, 어떤 때는 일곱명 나온 경기도 있고, 한 이닝에 투수가 몇명씩 나온 경기도 있었습니다. 마치 한국시리즈 7차전처럼 운영한 경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 식의 운영을 계속하다가는 여름 이후에 드러누울 투수들이 꽤 생기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06시즌, 가장 질 나쁜 투수운용을 보여준 감독이 바로 이순철 감독입니다. 아직까지 이런 투수혹사가 가능하다니 이순철 감독은 선수단 관리 면에서나 투수 운용 면에서나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타팀 팬 입장에서야 어쩌면 고마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보약' 하나 생기는 거니까요. 그러나, 한국프로야구 전체를 본다면 가능한한 빨리 이순철 감독이 사임하거나, 이순철 감독이 올바른 팀 운영을 해주는게 좋은 일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서, 한국 프로야구의 흥행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이순철 감독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더 큰 책임은 엘지 트윈스 프런트에게 있는 것이겠지요.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선수 이순철은, 그야말로 최고급의 선수였습니다.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춘 (이종범 이전의) 당대 최고의 리드오프였지요. 인간 이순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내가 본 것은 선수 이순철과 감독 이순철일 뿐이지요. 선수 이순철에 대해서는 박수쳐줄 수 있지만, 그리고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만, 감독 이순철은 '최악의 감독들'에 넣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감독 이순철'이 아니게 되었군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마음 편하게 몸 편하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