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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5 21:56 수정 : 2006.11.05 21:57

우성용이 5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자신의 통산 100호골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아내 김정화, 아들 창봉, 딸 소윤 등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남 일화 제공

선천성 심장 이상 이겨낸 소윤이
아빠 ‘생애 첫 득점왕’으로 보답

“잘 버텨준 딸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그런 딸에게 좋은 아빠, 훌륭한 축구선수 아빠가 돼주고 싶었어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려면 3개월이 남은 때였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전국이 들썩이던 시점. 아기가 잘 자랐는지 보기위해 으레 가던 정기검사였다. “아기 심장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우심방, 좌심방 그런거 있잖아요? 그중 한쪽이 작다는 겁니다.” 딸 소윤(5)이는 태어난 지 2개월만에 1차 심장 수술을 받았다. 6~7개월 간격으로 2, 3차 수술이 이어졌다. “병실에서 마취 주사를 맞히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의사에게 딸을 넘겨줬어요. 딸이 눈물을 흘리다 힘없이 나를 보는데 ‘살고싶어요. 아빠’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마취 때문인지 고개가 푹 떨어지더라고요. 아내도, 나도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어린 딸은 참 잘 견뎌냈다. 병실에서도 밝게 지냈다. 먹는 것도 잘 먹었다. 2004년 여름. 4차 수술을 받은 소윤이의 병세는 몰라보게 호전됐다. “의사도 딸이 잘 먹으니까 회복도 빠른 것 같다더군요. 이제 3~4개월에 한번씩 정기검사만 받으면 될 정도로 좋아졌어요.”

이젠 아빠 우성용(33·성남 일화)이 힘을 낼 차례였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두자릿수 골을 넣었던 그는 지난해 주전에서 밀려 3골에 그쳤다. “올해 재기하지 못하면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겨울훈련 때 몸을 만들었죠.” 지난해 우성용을 벤치로 밀어냈던, 하지만 그가 존경한 선수였다는 김도훈(36) 코치의 도움도 컸다. “몸싸움. 스크린 플레이 등 골넣는 방법을 많이 가르쳐줬어요.”

우성용은 5일 끝난 프로축구 정규리그에서 15골로 득점 선두를 굳게 지켰다. 2위 뽀뽀(13골·부산)는 플레이오프 출전이 좌절돼 더이상 경기가 없고, 3위 김은중(9골·서울)은 뒤로 한참 처져있다. 플레이오프에 오른 우성용이 딸에게 완쾌 기념 선물로 주고싶었던 ‘생애 첫 득점왕’을 손에 쥔 것과 다름없다. 외국인 골잡이를 제치고 국내 선수가 득점왕이 되는건 2003년 김도훈 이후 3년만이다. 그는 역대 네번째로 통산 100호골 고지를 밟아 내년에 김도훈의 최다골(114골) 기록도 넘볼 수 있게 됐다. 우성용은 가족에게 고마움을 돌렸다. 자신을 믿어준 동갑내기 아내(김정화)와 아빠처럼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축구클럽에 나가기 시작한 아들 창봉(8), 그리고 씩씩한 소윤이. “딸이 ‘우리 아빠 축구선수다’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한데요. ‘니네 아빠 못하더라’라는 말을 듣게하면 안되잖아요.” 팀 훈련을 마친 뒤 저녁 늦게 집 근처에서 만난 ‘키다리’(191㎝) 우성용은 큰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 말을 남기고 가는 그의 얼굴이 편해보였다. “소윤이가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줘요. 애교를 부리더라고요.”

죽전/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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