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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전 에스케이 감독이 직접 미트(장갑)를 이용해 위치를 잡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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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야구지도자 아카데미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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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전 에스케이 감독이 직접 미트(장갑)를 이용해 위치를 잡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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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서두르면 안됩니다. 천천히, 그래야 정확해집니다.” 섭씨 영하 10도 안팎의 칼바람 추위가 몰아치는 경기도 구리 엘지트윈스의 연습구장인 챔피언파크. 한국야구위원회 육성위원회(위원장 이광환)가 야심차게 마련한 유소년지도자 아카데미 이틀째인 12일 실기강의에서 조범현(46) 전 에스케이 와이번스 감독이 몸을 던지며 직접 시범을 해보인다. 포수 부문 강의를 맡은 조 감독은 “어렸을 적부터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자세를 익히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지도자가 빨리 하라고 재촉하다보면 자세가 나빠질 수 있고, 실수까지 생기면 의욕도 사라지게 된다”고 포수의 송구동작을 하나하나 설명해나갔다.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3루쪽 번트 타구를 1루로 던질 때 정면으로 또는 몸을 한바퀴 돌리며 던지는 두가지 동작이 있는데 차이점을 아십니까?” 조 감독의 질문에 유소년지도자들은 “정면 포구는 정지된 공, 구르는 공은 몸을 돌면서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등의 대답이 나왔다. 조 감독은 (프로)선수를 시켜 수십차례 두가지 송구를 해봤지만, 시간차이는 없었으며, 오른손 투수의 정면포구 뒤 송구는 슬라이스성 구질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몸을 돌리게 되면 송구 목표지점에 대한 시야가 없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두가지 모두 가능한데, 선수마다 좋아하는 방식이 다른 점을 존중해 가르치면 된다고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조 감독은 “지도자들이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이를 분명하게 이해시키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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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전 에스케이 감독이 포수 강의도중 유소년지도자들에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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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전 에스케이 감독이 가슴으로 공을 받아내는 자세를 직접 시범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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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부터 돌려라! 우용득(56)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타자 강의를 맡았다. “상체만 쓰는 타격은 힘도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프로 선수들도 이런 잘못된 동작을 많이 하지요. 하체가 완벽하게 리드를 하면서 상체가 따라가줘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라, 힘이 없어 하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전 뒤에 남는 발을 덜 꺾게 하는 것은 어떤가요?” 한 지도자의 질문에 우 감독은 “요령은 될수 있지만 원칙은 아니라는 것을 지도자가 알고 있는게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프로와 아마추어 지도자의 대화가 거듭되는 순간, 어린이들을 위한 적합한 야구이론이 나올 법도 했다. 김건우(43) 육성위원은 “이번에 부문별로 진행되는 내용들을 글로 정리하면 아주 훌륭한 교재가 한두권은 나올수 있었을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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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용득 전 롯데 감독이 타격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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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용득 전 롯데 감독이 타격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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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 송구도 동작을 크게 엘지 등 현역 시절 가장 빠른 송구로 이름을 날렸던 권두조(55) 전 쌍방울 코치는 무용담을 끄집어냈다. 그는 “미트(장갑)에서 가장 빨리 공을 빼내는 건 아마 내가 최고였을 것”이라며 “빼내자마자 팔을 뒤로 젖히지도 않고 바로 송구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동작이 시간이 지날수록 팔꿈치와 어깨에 무리를 주게 돼 부상으로 연결된다면서 큰 동작을 그리며 송구를 하도록 일선에서 지도하라고 당부했다. “동작을 크고 우아하게 하면, 정확하게 멀리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부상도 예방할수 있지요.” 유격수나 2루수가 2루에서 병살플레이를 할 때 베이스를 밟는 요령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1루에서 주자가 뛰어오더라도, 이를 피하려고 루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시간도 빼앗기고, 자세도 나빠지니, 루에서 공 1~2개 범위 안에서 안정된 자세로 즉시 송구하고 난 뒤 주자를 피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수비는 훈련의 반복 밖에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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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조 전 쌍방울 코치가 내야 수비에 관한 실전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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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이순철(45) 전 엘지 트윈스 감독은 주루, 이충순(60) 전 쌍방울 코치는 투수, 박용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은 외야를 맡아 각각 강의를 진행했다. 이순철 감독은 “지도자들이 알긴 아는 것 같은데,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는 것같다”며 “어느 정도의 수준을 알고 있는지 그래서 질문을 계속 던지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충순 코치는 “이런 교육이 일선 지도자들에겐 절실히 필요했다”면서 “지금 2박3일 정도의 일정을 하루 정도 더 잡아 좀더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해볼 일”이라는 의견을 이광환 위원장에게 건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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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조 전 쌍방울 코치가 내야 수비에 관한 실전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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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습회 더 늘려달라 39년째, 사실상 한 평생을 유소년야구지도에 몸바쳐온 경기 의왕시 부곡초등학교의 지희삼(61) 감독은 “늦긴 했지만, 너무 좋은 교육기회”라면서 “1년에 한번 하는 것을 최소한 두차례 정도 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중학교에서 8년간 코치생활을 하다 지난해부터 전남 화순초등학교 야구팀을 맡은 김규연(31) 감독은 “프로에서 이렇게 앞장서니, 아마추어야구에 큰 힘이 된다”며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계속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의 초등학교와 리틀야구 감독 등 126명의 지도자가 참가한 이번 강습회는 모두 무료로 진행됐다. 지방에서 올라온 지도자들은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묵었고, 버스도 3대나 동원됐다. 한국야구위원회는 이번 아카데미를 위해 3천여만원의 예산을 썼다. 처음엔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참가했던 일선 지도자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던 내용들이 하나둘씩 바로 잡히면서 아카데미는 미래 꿈나무들에게 전달될 새로운 지식들이 습득되는 ‘산 교육장’으로 바뀌어갔다. “지도자가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어린 선수들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다”는 이광환 위원장의 말이 일선 지도자들에게도 실감나게 다가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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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강의를 맡은 이충순 전 쌍방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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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의 극성이 선수 장래 그릇 쳐 유소년 지도자들은 유소년야구의 문제점으로 시설부족, 선수부족 등 야구환경에 대해 지적했지만, ‘부모들의 과잉 열기’도 꼽았다. 한 지도자는 “왜 내 아이는 다른 선수가 하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느냐며 따져묻는 일이 많다”며 “선수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른데 그런 점을 이해하지 않고 아이들을 무모한 경쟁터로 내몰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아카데미 첫날인 11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유소년 선수에 대한 심리적 이해와 접근’에 관한강의를 맡았던 박미경(37·강서솔병원) 서울보건대 겸임교수도 유소년스포츠에서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학부형들의 과열경쟁으로 선수들이 혹사당하는 일이 허다하며, 이에 반대하는 지도자들은 심한 경우 일자리를 잃기도 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강압적인 훈련풍토, 유소년선수의 운동부상 등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점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는 “결국 이런 왜곡된 운동환경이 겹치면서 위계질서가 매우 강해지는 중학교 1학년 시기에 운동을 그만두는 숫자가 가장 많다”며 “중고교까지 운동선수를 하고, 유소년지도자까지 된 사람들이야말로 혹독한 경쟁 사회에서 이겨낸 대단한 이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박 교수는 그래서 야구를 비롯해 유소년스포츠의 올바른 풍토 조성을 위해선 학부모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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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서울보건대 물리치료학과 겸임교수가 유소년선수의 심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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