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이승엽, 일본진출 3년6개월만에 쾌거
장훈·백인천 이어 한국인 세번째…3안타 3타점
아시아 홈런왕이 팀에서 처음 6번타자로 밀렸던 것은 22일 전인 지난 6월9일이었다.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그의 자리에 3살 아래인 포수 아베 신노스케를 대신 넣었다.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교류전에서 ‘4번’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홈런왕은 분풀이라도 하듯 이날 안타 3개를 쳐냈다. 그런데 4번 자리에 처음 선 아베는 홈런 2개를 포함해 4타수 2안타에 5타점 2득점으로 펄펄 날며 마치 홈런왕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했다.
이승엽(31·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일본프로야구 올 시즌은 이렇 듯 힘든 시기의 연속이었다. 2년 연속 교류전 홈런왕이었던 그의 올해 교류전 성적은 홈런 3개에 타율은 0.223(94타수 21안타). 타점도 7개에 그쳤다. 교류전은 그에게 더이상 예전의 영광을 되살려줄 무대가 아니었다.
교류전은 그렇게 끝났고, 다시 열린 센트럴리그 3경기째인 1일 히로시마 시민구장. 이날도 여전히 6번 타석엔 25번 등번호를 단 이승엽이 섰다. 지난해 퍼시픽리그 홈런왕에서 이적해온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1회 솔로포(시즌 19호)를 쳐내며 기선을 잡았다. 이승엽이 첫 타석에 선 것은 1-0으로 앞선 2회 1사에서였다. 상대 투수는 1년차인 좌완 아오키 다카히로(26). 아오키가 힘껏 던진 초구는 시속 140㎞대의 한복판에 몰리는 직구였고, ‘홈런에 굶주렸던 라이언 킹’이 기회를 놓칠 리 만무였다. 방망이에 맞고 튕겨져 나간 타구는 오른쪽 담장을 향했고, 우익수 히로세 준이 펄쩍 뛰어오르며 담장에 달라붙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비거리 1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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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1일 히로시마 도요카프와의 원정경기 2회초 첫 타석에서 일본리그 개인통산 100호째 2점짜리 홈런포를 작렬시키고 있다. 히로시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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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고 일본무대에 선 지 3년6개월, 432경기 출장 끝에 100호 홈런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의 홈런을 합치면 통산 424개. 올 시즌 15호 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데뷔 첫해인 2004년 14개, 이듬해 30개로 상승세를 탔고, 요미우리로 이적한 작년엔 41개를 쳐내며 4번타자 자리를 굳혔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어깨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고전하다 마침내 100호 홈런을 기록함으로써 한·일 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긋게 됐다. 이승엽의 432경기 100홈런 페이스는 일본의 유명한 홈런타자인 오사다하루(563경기) 나가시마 시게오(504경기) 마쓰이 히데키(468경기)보다 모두 이른 것. 일본 프로무대 역대 250번째로 대기록에 이름을 올린 이승엽은 한국인 출신으로는 장훈(504개) 백인천(209개)에 이어 3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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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연도별 홈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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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은 이날 5타수 3안타(1홈런, 2루타) 3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을 펼쳤고, 타율도 0.252에서 0.257로 끌어올렸다. 요미우리는 9회초 이승엽의 적시타 등을 앞세워 4점을 뽑아 9-6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한편, 타이론 우즈가 21호 홈런포를 친 주니치의 이병규는 야쿠르트전에 1번 선두타자로 나서 5타수 1안타 1득점, 타율 0.265를 기록했고, 팀은 6-7로 졌다.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담담한 이승엽 “특별한 의미 안둬” “한 가운데로 몰리는 직구는 풀스윙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방망이를 조금은 앞에서 휘둘렀는데 타이밍이 좋아 펜스를 넘어갔다. (일본 100호 홈런에 대해선)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이승엽이 일본 통산 100호 홈런을 친 뒤 요미우리 홈페이지(http://www.giants.jp)를 통해 밝힌 소감이다. 이를 보면 그에게 여전히 중요한 관심사는 치기 좋은 구질을 골라내는 것이며,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100홈런 자축’과 같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날 경기를 마친 현재 이승엽의 타율은 0.257로 팀 타율 0.285에도 훨씬 못미친다. 홈런수에서도 15개로 팀내에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19호) 아베 신노스케(18호) 다카하시 요시노부(18호)에 3개 이상 뒤처져 있다. 이미 6월 초순부터 타순이 6번으로 밀려난 뒤 좀처럼 타격감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그의 이런 부진에 대해 요미우리 코칭스태프들이 언론을 통해 “팀 타자들과 좀더 친숙하게 지내면서 타격기술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눠보라”는 권유까지 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승엽의 슬럼프가 심리적으로도 깊어져 있다는 반증이었다. 이런 와중에 이승엽이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쳐 일본 진출 100호를 기록했지만, 얼굴 표정이 그리 밝진 않아 보였다. 먼저 홈을 밟은 니오카가 두손을 들어 이승엽을 맞이했고,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엉덩이를 쳐주며 기뻐했지만 세번째 타석에서 병살타를 칠 때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역대 일본프로야구에서 250번째, 현역 외국인 타자로는 8번째, ‘6번 타순의 100홈런 달성’이라는 기록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만큼 이승엽에게 100홈런이 부활의 신호탄이 될 지 관심사다. 특히 그가 부상과 타격감 회복을 통해 4번 타순에 복귀해 팀 타선의 정상화는 물론 팀 우승에 기여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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