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8 23:58
수정 : 2007.07.1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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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춘천 의암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첫 2군 올스타전에 앞서 북부리그 2군 선수들이 사인볼을 팬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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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이 있었다. 배트보이도 있었다. 손수 흙을 고를 필요도 없었다. 선수들은 그냥 더그아웃에 앉아 동료들의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거나, 팬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그라운드로 뛰쳐나가면 됐다. 더군다나 조명이 환히 켜진 야간 경기였다. 2군 경기에선 결코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18일 강원도 춘천 의암야구장에서 프로야구 사상 첫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퓨처스 올스타전이 열렸다. 같은 시각 멀리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인도네시아와 일전을 벌이는 바람에 관중 동원이 우려됐지만, 3500여명의 열성 야구팬이 몰렸다. 남부리그 내야수 전현태(한화)는 이 모습을 보고는 “이 정도면 만원 관중”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2군 경기는 거의 관중이 없는 데서 펼쳐진다.
이 팬들 중에는 남부리그 내야수 유용목(삼성)의 어머니 어순임(46)씨도 있었다. 강원도에 네 개밖에 없는 고교야구팀들 중 강릉고 출신인 유용목은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고향에서 경기를 펼쳤다. 물론 그의 어머니도 이 경기를 처음 보는 터였다. 유용목은 “소속팀이 멀리 있어서 그동안 어머님이 경기에 못 오셨다”고 했다. 유용목은 7회초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도루까지 성공시키며 프로야구 선수로 성장해가고 있는 막내아들의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줬다.
이날 북부리그 선발 이대환(상무) 또한 춘천고 출신이었다. 그는 “고향인 춘천으로 와서 이런 구장에서 경기를 펼치니 좋다. 그동안 2군에서는 팬들과 만날 시간이 없었는데, 이렇게 선발로 나와서 만나게 되니 영광스러울 뿐이다”고 했다. 하지만 이대환은 고향 사람들 앞에서 긴장을 했는지 선두타자 김문호(롯데)에게 홈런을 내줬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또 다른 사연이 펼쳐졌다. 박종훈 두산 2군 감독과 에스케이 새내기 외야수 박윤 부자가 북부리그 한팀에서 경기를 펼친 것. 박윤은 북부리그가 1 대 3으로 쫓아간 무사 2루서 중전안타를 쳐내면서 추격점수를 뽑아냈다. 3루 주루 코치로 나서 아들의 적시타 모습을 지켜본 박 감독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운 채 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박윤은 7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좌전안타와 폭투로 3루까지 진루한 뒤 안치용의 우익수 희생뜬공 때 홈을 밟아 동점까지 만들었다. 이 사이 박윤은 잠깐 3루에서 아버지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박 감독은 앞서 열린 올드스타팀과 연예인 야구팀 ‘조마조마’ 친선경기에 출전해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기록면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앞섰다.
이날 출전한 40명 선수들 중에는 이여상(삼성) 류재원(기아) 등 신고선수(일종의 연습생)들과 최형우(경찰청)처럼 2005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입대해 내년 제대 뒤에는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하는 선수도 있었다. 며칠 뒤면 다시 관중 없는 곳에서 한낮의 강렬한 태양을 받으면서 뛰어야 하지만, 이날만큼은 그들도 팬들이 환호하는 프로야구의 스타였다. 팬들의 환호성을 가슴에 품고 다시 1군의 꿈을 꿀 그들이었다.
두 팀은 3 대 3으로 비겼고, 3타수 3안타(1홈런)를 친 남부의 채태인(삼성)이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춘천/김양희 기자, 이재휘 인턴기자
whizzer4@hani.co.kr
‘야구 벽지’ 춘천 응원으로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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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리그 올스타 지도자와 선수로 출전한 박종훈(두산 2군 감독·왼쪽)과 박윤(SK 2군 외야수)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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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말 뒤 열린 홈런 레이스. 타석에 선 선수의 방망이 위치에 따라 외야 관중자리도 바뀌었다. 왼손타자가 들어서자 오른쪽 외야석에 홈런 볼을 잡으려는 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파울 볼 하나하나에 쏠린 관심도 대단하다. 텔레비전에서 본 “아주라(애들 줘라)”도 따라해본다.
연고팀 없는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2007 퓨처스 올스타전에 모인 사람들은 모처럼 맛본 야구 재미에 한여름 더위를 잊었다. “10년 만에 야구장에 왔다”는 남상현(42)씨는 야구가 처음인 아들딸에게 장면장면을 설명하기 바쁘다. 처음엔 고개만 갸웃거리던 딸 민우(11)양도 시간이 지나자 “아웃! 아웃!”, “넘어갔다!”며 목청을 높였다. 남씨는 “춘천이 작은 도시라 프로팀이 생기기 힘들겠지만 제대로 된 야간 경기를 볼 수 있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에스케이(SK) 와이번스 김광현의 열성팬이라는 소해림(19)씨는 “멀리 문학까지 가야 볼 수 있던 선수들을 여기서 보게 돼 기쁘다”고 “앞으론 2군 경기도 자주 와야겠다”고 말했다.
‘유망주들에 대한 동기 부여’를 목적으로 열린 이날 올스타전은 1군을 꿈꾸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야구 벽지’였던 춘천 시민들에게도 희망을 선물했다. 최동원 한화 2군 감독은 “2군 선수들에겐 화려한 성적보다도 팬들의 관심이 더 힘이 된다”고 이날 올스타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경백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는 “예상외로 팬들이 많이 오셨다”며 “특히 어린 팬들이 많아 희망이 보인다”고 흐뭇해했다. 춘천/박현철 기자, 이재휘 인턴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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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프로 2군 올스타전 전적
남부 3-3 북부
*춘천의암(3500명) <홈>김문호(1회1점) 채태인(4회1점·이상 남부)
특이사항
-남부 채태인(삼성) 최우수선수(3타수3안타1홈런)
-북부 박윤(에스케이) 우수타자상
-북부 이현승(현대) 우수투수상
-북부 조평호(현대) 홈런레이스 첫 챔피언
-남부 김문호(롯데) 1회초 선두타자 홈런
-북부 안치용(엘지) 1회말 선두타자 안타
-남부 류재원(기아) 첫 몸 맞는 공
-남부 유용묵(삼성) 첫 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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