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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재연 눈앞 승리에만 급급 선수생명
나몰라라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인공 투수인 ‘까치’ 오해성은 “이 상태로 계속 던지면 선수생명이 끝난다”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승리를 위해 어깨뼈가 깨지는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현실로 재생되고 있다. 12일 밤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고교야구대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야구장. 서울고 임태훈과 광주 동성고 한기주는 투수전의 진수를 선보이며 연장 12회까지 0의 행진을 이어갔다. 관중들은 이들이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숨을 죽였다. 서울고 2학년 임태훈은 12회까지 삼진 7개를 잡으며, 고교 최고의 투수 한기주에 맞섰다. 임태훈의 투구수는 12회까지 무려 153개. 그러나 연장 13회에 들어선 임태훈은 오른팔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극한상황에 빠졌다. 직구는 엄두도 못낸채 변화구만 던졌다. 김병효 감독은 1사 2루에서 임태훈을 다른 투수로 교체했다.
그런데 교체된 투수가 볼넷을 허용하자, 감독은 3루를 지키던 임태훈을 다시 등판시켰다. 감독의 지시에 임태훈은 무거운 발걸음을 마운드로 옮겼다. 그는 결국 다음 타자에게 결승타를 얻어 맞고 고개를 떨궜다.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야구인은 “애를 완전히 죽이는구먼…”하면서 혀를 찼다. 이날 열일곱살 임태훈이 던진 공은 자그마치 167개. 한기주도 122개나 던졌다. 프로야구에서는 투수 보호를 위해 보통 100개 안팎에서 투수를 바꿔준다. 전날 동산고 투수 류현진과 덕수정보고 투수 김영민도 연장 접전을 펼치며 각각 9이닝 동안 무려 152개와 137개의 공을 던졌다. 고교야구 유망주가 혹사당해 이름없이 사라져간 사례는 많고, 현역 프로선수 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계약금 5억원을 받고 삼성에 1차 지명된 대구상고 출신 이정호(23)는 프로 4년 동안 고작 1승에 그치다가 올해 현대로 트레이드됐다. 지난해 고교야구 ‘최대어’로 계약금 6억원에 롯데에 지명된 효천고 김수화(19)도 2군을 전전하고 있다. 김상훈 〈에스비에스 스포츠〉 해설위원은 “고교 때 한번 혹사당하면 대학이나 프로에서 구위를 절대로 회복하지 못한다”며 “감독들의 근시안적 사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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